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19년 개봉한 <살인마 잭의 집>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그의 필모그라피는 상업영화 정반대 편에서 늘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논쟁작들로 가득하다. 매 작품 선보이는 주제의 파격과 과감한 표현으로 인해,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매번 끝까지 보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괴롭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줄거리와 영상, 그러나 한편으로 온갖 과시적인 미학 장치들로 가득 찬 그의 작품 세계는 과연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선물 받은 카메라로 11세부터 영화 만들기를 시도했던 라스 폰 트리에의 20대 시절 초기 단편 두 작품으로 이를 짐작해보자. 다행히(?) 아직은 보기에 훨씬 덜 괴로운 영상들이다.

* 아래 영상은 신체 노출 장면이 있습니다.

 

<멘테 – 축복받은 자>

Menthe - la bienheureuse | 1979 | 29분 29초

라스 폰 트리에의 인생 두 번째 작품. 그가 23살 때 만들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도미니크 오리가, ‘폴린 레아주’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O 이야기>(1954)를 기반에 두었다. 주인공이 자신의 과격한 욕망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한 소설처럼, 영상은 텍스트의 온도와 문체를 절제된 흑백 화면과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전달한다.

자신의 깊은 욕망 및 피학적 성욕에 몰두하고 이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가 <님포매니악>(2013)에서 다룬 성욕, 고통, 강박 등의 주제가 결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낯선 주제를 정적인 화면과 사티의 ‘짐노페디’ 같은 아름답고 익숙한 음악과 병치하는 표현은 지금도 그의 전매특허다. 젊은 나이의 라스 폰 트리에가 이 같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인 덴마크가 20세기 당시 문화 자유주의가 가장 급진적으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상곡>

Nocturne | 1980 | 8분 27초

어둡고 흔들리는 화면. 신경을 날카롭게 긁으며 고조되는 음악과 함께 창문을 깨고 누군가 여성의 집에 침입한다. 알고 보니 이는 꿈. 빛에 극도로 예민한 탓에 어두운 조명 아래 선글라스를 낀 채 생활하는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 친구와 통화한다. 그는 당일 아침 코펜하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는 비행기 표가 있지만, 왠지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친구는 여행을 꼭 다녀오라며 부추기고 결국 그는 밖을 나서고, 이후 <멘테 – 축복받은 자 >의 마지막 장면처럼 날아가는 새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짧고 단순하지만 모호한 의미가 동시에 담긴, 마치 시적인 서사 안에 극적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하는 이 단편은, 라스 폰 트리에가 24살 때 만든 작품이다. ‘뮌헨 영화학교 영화제(Festival der Filmhochschulen in München)’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국내에는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2012) 때 소개되기도 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라스 폰 트리에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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