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주 최남단,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노게일스(Nogales)에서는 올해에도 이곳 출신인 찰스 밍거스의 생일에 맞춰 재즈 페스티벌(Charles Mingus Hometown Jazz Festival)이 열린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무료 페스티벌이지만, 시 당국은 기부금을 받아 올해 사후 40주년을 맞은 찰스 밍거스 기념공원을 건설할 계획이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같은 인기 비밥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며 파워풀한 베이스 연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밴드를 구성하여 빅밴드 재즈의 부활을 선도하는 명반들을 남겼다.

찰스 밍거스 기념공원 건설 및 재즈 페스티벌 소개 영상

그가 밴드 리더로서 남긴 50여 장의 앨범 중에서도 독특한 앨범 타이틀을 지닌 <Pithecanthropus Erectus>(직립원인, 1956), <Mingus Ah Um>(1959), <Charles Mingus Presents Charles Mingus>(1960), <The Black Saint and the Sinner Lady>(1963) 같은 앨범은 재즈 팬들이 반드시 수집목록에 넣는 명반으로 손꼽힌다. 밍거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베이스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작곡에 더욱 매진했고,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내세운 ‘Mingus Dynasty’ 같은 재즈 오케스트라나 고등학교 밴드의 레퍼토리에 오르는 수많은 오리지널을 남겼다.

집단 즉흥연주와 구성 음악으로 유명한 명반 <Pithecanthropus Erectus>의 타이틀곡

또한 그는 불같이 화를 내거나 타협을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로 ‘The Angry Man of Jazz’로 불리며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무대 위에서 동료 연주자들에게 자주 언성을 높이거나 심지어 그들을 무대에서 쫓아내기도 했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소동을 벌이는 관객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일도 허다했다. 재즈클럽에서 연주하다가 분을 참지 못해 2만 달러짜리 베이스를 부순 적도 있다. 우람한 체격의 그가 분노하면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동료 트럼보니스트 지미 네퍼(Jimmy Knepper)는 그의 주먹을 맞고 치아가 부러져 소송을 벌였고, 이로 인해 임대료를 내지 못한 밍거스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동료였던 에릭 돌피가 갑자기 사망한 후에는 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5년 동안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네 트랙으로 구성된 명반 <The Black Saint and the Sinner Lady>의 첫 번째 트랙 ‘Solo Dancer’. 12명의 빅밴드 구성으로 녹음했다

밍거스의 음악은 그의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닮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의 음악은 즉흥연주(Improvisation)와 작곡(Composition)의 경계를 오가며 수시로 스타일과 속도에 변화를 주었다. 관객들은 자신이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 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어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10분 이상의 긴 곡에 구간별로 기본 곡조를 작곡하고 나머지는 솔로이스트에게 즉흥연주를 맡기는 형식을 취하여 집단적 즉흥연주 또는 구성 음악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허나 그의 밴드 The Jazz Workshop의 이직률은 높았다. 밴드 멤버들은 수시로 변하는 밍거스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음악을 극대치까지 끌어 올려야 했고, 부응하지 못할 경우 해고되거나 다른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The Jazz Workshop이 아니라 The Jazz Sweatshop으로 고쳐 불렀다.

에릭 돌피와 함께 한 전성기 시절의 ‘Meditations on Integration’은 19분 동안 여러 가지 스타일을 한 곡에 담은 대작이다

그의 진지한 음악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그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졌다. 수입이 줄어들자 더 이상 밴드를 유지할 수 없었고 생활고는 그를 조기 은퇴의 길로 몰아세웠다. 그리고는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백악관에서 열린 재즈 연주회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카터 대통령과 포옹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말년에는 주로 집 안에 머물며 작곡에 마지막 혼을 불사르던 중, 기적을 찾아 최후의 치료를 위해 멕시코 주술사를 찾아가 그곳에 머물다 5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는 찰스 밍거스 영상

불교에 심취했던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화장 후 인도의 갠지스강에 뿌려졌고, 그의 마지막 작곡 노트는 사후에 다시 정리되어 출반되었다. 두시간 길이의 유작 <Epitaph>는 포드 재단의 후원으로 10년 만에 군터 슐러(Gunther Schuller)의 지휘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그는 생전에 이 곡이 출반될 수 있을 것이라 전혀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찰스 밍거스의 유작이 된 <Epitaph>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