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Cinema>(2014) 앨범 커버

 

아시아의 노라존스

조안나 왕(Joanna Wang). 왕뤄린으로도 불린다. 1988년생 대만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유명 음악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음악과 가까워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4살에 작곡을 시작하고 15살 때 만든 데모곡이 ‘T-Duds’에 유통되어 일부 레이블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로 그의 재능은 일찍이 발견되었다. 이를 계기로 16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각종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는 등, 나이에 비해 성숙했던 목소리와 함께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아시아의 노라존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는2008년 발표한 데뷔 앨범 <Start From Here>이 1위를 차지하며 20만장이 판매되었고 이어 같은 해에 싱가포르와 중국의 각종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독보적인 신예의 등장을 알렸다.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앨범 <Start From Here>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아버지의 손길이 많이 묻어 있지만 분명 그가 불렀기 때문에 더 빛날 수 있었다. 음악이 들리는 것을 넘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한 느낌은 조안나 왕이 뮤지션으로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는지를 증명해내기에 더할나위 없었다.

Joanna Wang ‘Lost in paradise’ (2008)

‘Lost in paradise’는 영어 버전과 만다린어 버전으로 <Start From Here>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걸맞게 잃어버렸던 낙원을 다시 발견하는 듯한 전주는 금세 현실감각을 마비시켜버릴 만큼 중독적이다. 그의 목소리는 휴양지와 도심, 노을과 새벽, 그 어느때라도 휴식을 안겨줄 것 같은 선율에 깊이를 더한다. 만다린어 버전인 ‘有你的快樂’는 대만에서 2002년 방영한 드라마 <애정백피서(愛情白皮書)>의 영상 클립으로 제작되어 영어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뜨겁고 짙은 한 여름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Joanna Wang ‘有你的快樂’ (2008) MV

 

내가 하고 싶은 음악

데뷔 초 그는 매력적인 저음과 고음을 요람처럼 편안하게 오가며 재즈에 최적화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발랄해지는 멜로디와 한결 홀가분해진 톤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그 폭이 꽤나 커서 눈을 감고 들으면 각기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웅산과 바우터 하멜, 선우정아를 모두 떠올리게 하는 그가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갖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데뷔 앨범이었다.

그는 원래 ‘오싹하고 으스스한 뮤지컬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부푼 꿈을 안고 17살에 대만 소니 뮤직과 첫 계약을 맺은 후 음악 작업을 시작했지만 원하는 작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그래서 그는 소니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후회와 두려움, 좌절과 흥분, 배고픔으로 회상한다. 19살 데뷔와 동시에 ‘대만의 노라존스와 리사 오노’라는 타칭을 얻었지만 의도치 않게 재즈 장르에만 국한되어버린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하던 음악과 다르게 흘러가는 자신의 이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는 다시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니 측으로부터 팔리지 않을 음악이라며 자작곡은 보너스 트랙으로 가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레이블과의 협의 끝에 자작곡이 포함된 앨범 <Joanna & 王若琳 The Adult Storybook>을 발매하지만 5년의 계약기간동안 여전히 제 2의 노라존스, 리사 오노 같은 타이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데뷔앨범을 제작해야 했던 이유와 그 과정이 그리 즐겁지 않았음을 여러 인터뷰 매체를 통해 종종 언급해왔는데, 7년전 그가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Reddit)에 직접 남긴 글은 그 시절에 대한 보다 솔직하고 자세한 심경이 담겨 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소니와 계약한 첫 2년은 내가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많은 ‘아니오.’와 ‘하지만’, 그러다 마지 못해 ‘네.’라고 말 한 후에 열아홉이었던 나는 촌스러운 머리와 옷, 화장을 했고 강요에 의해 녹음한 음악과 진부한 80년대 뮤직비디오로 데뷔했다. 데뷔하던 날 밤, 존경받을 나의 멋진 기회들이 파괴되었다는 걸 느끼고 관리가 안되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내 흐느껴 우는 소리가 조용한 코 골이 소리로 바뀔 때까지 울었다.”

-레딧에서 발췌

이후 그의 행보는 크게 달라진다. 누군가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고 보았겠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었을 테다. 그렇게 자작곡으로만 이뤄진 진정한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The Adventures of Bernie the Schoolboy>(2011)를 발매하게 된다.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모두 뮤지컬적인 서사가 담겨 있다. 모두 위에서 언급했던 ‘오싹하고 으스스한 뮤지컬 작곡가’같은 느낌이 담겨있는 수록곡들이며,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 속에서 짜릿한 비명을 지르며 작업했을 그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지는 앨범이다.

Joanna Wang ‘The Bug’ (2011) MV

 

Hello ‘Anyung’

2016년 발표한 싱글 ‘Hello Anyung’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안녕’이 맞다.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는 조안나가 작곡가들과 작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나왔다고 한다. 같은 해 한국 듀오의 R&B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넘치는 젊음’, ‘약간 변태적이지만 낙관적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떠올랐고 이는 곧 자신의 싱글 앨범으로 이어졌다.

앨범 컨셉은 ‘슈퍼 청춘 햄 아이돌 조안나 왕(super young ham idol Joanna Wang)’. 무엇이 가장 완벽한 소녀 아이돌인가를 고민하며 젊음이 넘치고 어딘가 변태 같지만 솔직해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가운데 ‘Ham’은 ‘Happy Accessible Music’의 약자라고. 덧붙여 싱글 앨범 작업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Coach & Sendo, 심은지, 마나부 마루타니, Command Freaks, Deez는 샤이니, 동방신기, 인피니트, 엑소 등 케이팝을 선도하는 아이돌과 작업한 이력이 있는 팀들로서 조안나 왕이 한국에서 받은 영감을 함께 풀어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Joanna Wang ‘Hello Anyung’

 

끝없는 음악적 탈피

데뷔 11주년이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 내킬 때마다 카메라를 켜고 편안한 차림에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 라이브 영상을 올린다. 어느새 그가 다루는 장르는 더욱 다양해지고 해마다 새로운 컨셉의 뮤직비디오 속 배우로 직접 등장하며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아직도 보여 줄게 많아 보이는 조안나 왕은 이제 더 이상 제 2의 누군가로 불리지 않는다. 지난 시절의 고난과 갈증에 보란듯이 오직 새로운 조안나 왕으로 끝없이 탈피하고 있을 뿐.

Joanna Wang ‘When I Nod’ (2015) MV
Joanna Wang ‘The Motorized Scooter Edo’ (2018) MV

 

조안나 왕 유튜브
조안나 왕 페이스북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