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음악이 비밥으로 진화하면서 누아르 장르의 영화 음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어두운 불빛, 담배 연기, 범죄,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배경음악으로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매일 밤 재즈클럽에서 연주곡 수에 따른 수입에 만족해야 했던 재즈 뮤지션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하여 새롭게 뜬 영화음악 시장으로 진출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Ascenseur pour l'échafaud>의 배우 잔느 모로

재즈의 영화음악 진출 반세기 동안 수많은 명곡이 탄생했는데,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재즈 영화음악 다섯을 뽑았다. 이들은 영화 자체보다 거기에 수록된 영화음악으로 더 유명한 사례로 손꼽힌다.

 

마일스 데이비스 <Ascenseur pour l'échafaud>(1958)

프랑스 루이 말 감독의 스릴러 영화 <Ascenseur pour l'échafaud>(영어: The Elevator to the Gallows,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즉흥연주로 더 유명하다. 재즈 평론가 필 존슨은 “이제까지 들어본 중 가장 외롭고 슬픈 트럼펫 소리”라 평한 바 있다.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재즈 팬이었던 장 폴 라프노(Jean-Paul Rappeneau)가 1957년 11월 파리 공연 중이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제안했고, 이를 수락한 그는 네 명의 사이드맨과 함께 파리의 스튜디오에 나타나 영화의 줄거리를 들은 후 즉흥적으로 전곡을 한 번에 레코딩하였다.

<Ascenseur pour l'échafaud>의 예고편

 

유세프 라티프 <스파르타쿠스>(1960)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초기 대표작이자 아카데미 4관왕을 안은 <스파르타쿠스>의 타이틀송으로, 음악감독 알렉스 노스(Alex North)가 작곡하였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유세프 라티프(Yusef Lateef)가 오보에(Oboe)로 연주하여 자신의 <Eastern Sounds>(1961)에도 수록하기도 했다. 알렉스 노스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다양하게 표현되기를 원하여 테너 색소폰 외에도 동서양 악기 연주에 모두 능한 유세프 라티프를 초빙했다. 영화 개봉 당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최근에는 누자베스의 ‘The Final View’에 샘플링되어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조명되었다.

Yusef Lateef ‘Love Theme from Spartacus’(1960)

 

허비 행콕 <Blow-up>(1966)

이탈리아의 명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가 영어로 제작한 첫 영화 <욕망>(Blow-up)은 아카데미 2개 부문 후보로 올랐고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냉소와 허무로 가득 찬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로, 허비 행콕을 위시하여 프레디 허버드, 조 헨더슨, 론 카터 등 블루노트의 간판 재즈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영국 뮤지션들과 녹음을 했으나, 허비 행콕이 이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여 미국 블루노트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 녹음하였다.

<Blow-up> 타이틀송

 

버나드 허먼 <택시 드라이버>(1976)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네오 누아르 명작으로, 음악감독 버나드 허먼(Bernard Hermann)의 유작이 되었다. 그가 작곡한 재즈 음악은 불면증을 가진 극 중 인물 ‘트레버’의 외롭고 몽환적인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적격이었다. 메인 타이틀곡의 알토 색소폰은 당시 할리우드 세션맨으로 활동하던 톰 스콧(Tom Scott)의 연주다. 영화음악 감독으로 유명한 버나드 허먼은 다음 작품을 상의하던 중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택시 드라이버> 메인 타이틀송

 

데이브 그루신 <Fabulous Baker Boys>(1989)

제프 브리지스와 미셸 파이퍼가 떠돌이 라운지 밴드의 피아니스트와 싱어로 등장하는 음악 영화로,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이 음악을 맡았다. 자신이 대표로 있던 GRP 레이블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데이브 그루신은 영화음악 외에 피아니스트 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의 대역 연주까지 책임졌다. 이듬해 오스카, 골든글로브의 영화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빌보드 재즈앨범 3위에 오르며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는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노래를 불러 예쁘장한 외모의 B급 배우라는 오명을 벗고 할리우드의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했다.

<Fabulous Baker Boys> 메인 타이틀곡
여성 보컬리스트를 영입하기 위한 오디션 장면. 뒤늦게 나타난 미셸 파이퍼가 멋진 보컬을 들려주는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