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당당하고 섬뜩한 궤변이 있을까? 영화 속 살인마들은 말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 살인만큼은 정당하다고. 인류 최악의 범죄인 살인을 그럴듯한 예술 혹은 철학으로 믿고 포장했던 영화 속 살인마들의 변명 셋을 모아봤다.

 

<살인마 잭의 집>

잭 “살인은 숭고한 예술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비극과 밑바닥 인생, 그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의 내재한 악을 늘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독이다. 그가 <님포매니악 볼륨2>(2014) 이후 5년만에 발표한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이 감독 명성에 걸맞은 문제작인 것은 당연한 얘기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로 선한 인물이나 추격자의 시점에서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동일 소재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연쇄 살인마 ‘잭’(맷 딜런)을 1인칭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다. 잭의 독백과 줄거리 밖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노인 ‘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살인 행각을 고백하고, 살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결벽 강박증이 있는 소심한 건축가 ‘잭’. 그는 자신의 병을 떨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일상에 잠식되어 가지만, 어느 날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뒤 살인 행위에 매력을 느끼고는 점차 연쇄살인마의 길로 접어든다. 잭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여전한 강박증에 발목을 잡히고, 사람과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등 서툰 초짜 살인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이 잡히지 않게 되는 괴상한 행운이 연이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잭은 강박증을 극복하고,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살인이 숭고한 예술이라고까지 믿게 된다.

잭에 따르면, 예술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닌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절대적 논리 안에서 많은 사람이 위대한 예술로 믿고 추앙하는 ‘생명에 대한 찬양’ 정반대에 위치하는 ‘생명의 파괴’ 역시 하나의 예술이 된다. 건축가인 그는 동시에 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의지를 고스란히 따른 건축물이 가장 아름답다는 신념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잭은 살인을 하고, 자신의 집을 짓는다. 궤변과 모순으로 쌓아 올려진 그만의 핏빛 예술을.

 

<쏘우>(2004)

직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에게 새 인생을 살 기회를 주는 것”

2019년 <아쿠아맨>(2018)의 흥행과 <컨저링> 프랜차이즈의 성공 이전에, 제임스 완에게는 데뷔작 <쏘우>(2004)가 있었다. 비록 다른 감독들이 연출한 후속작들은 자극적인 살해 방식과 고어 장면에만 공을 들이면서 시리즈에 대한 평가를 한없이 떨어뜨렸지만, 참신한 캐릭터와 내러티브를 낳은 1편만큼은 대중과 비평을 가리지 않고 좋은 평을 받았다.

<쏘우> 시리즈 속 ‘직쏘’는 21세기 가장 유명한 살인마 캐릭터일 것이다. 직쏘는 사실 한 사람이 아니다. 최초의 직쏘인 ‘존 크레이머’의 뜻을 이어가는 복수 인물들의 단일 정체성이다. 이들은 연쇄 살인마지만 스스로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쏘는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범죄자, 치부가 큰 사람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어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교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대 직쏘 존 크레이머는 의사인 아내와 함께 마약 중독자 치료소를 운영하다가, 한 마약 중독자에 의해 아내가 유산하고, 자신마저 말기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을 느낀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후부터 괴상한 논리회로가 발동한다. 사람들을 죽이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게 하고는, 그것이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준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세븐>(1995)

존 도 “인간의 죄악을 경고하고 비추는 거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초기작품이자 1990년대 네오 느와르 장르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세븐>은, 살인마를 추적하는 두 형사의 관점에서 줄거리를 풀어간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은퇴를 일주일 앞둔 ‘윌리엄 서머셋’(모건 프리먼)과 뉴욕에 새로 부임한 열혈형사 ‘데이비드 밀스’(브래드 피트). 두 사람은 단테의 <신곡>에서 언급된 ‘7대 죄악’ 개념을 차용한 잔혹한 연쇄살인을 추적하다가 기이한 사건에 휘말린다.

줄거리 후반부 모습을 비치는 용의자 ‘존 도’(케빈 스페이시)가 사람을 죽이는 방식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7대 죄악 중 식욕(Gluttony)을 상징하는 고도비만 환자는 음식을 강제로 끊임없이 먹여서 죽이고, 교만(Pride)을 상징하는 미모의 여성은 코를 잘라내 흉측한 얼굴로 살아남을 것인지, 자살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나머지 각기 탐욕(Greed), 나태(Sloth), 색욕(Lust)을 대표하는 피해자들 역시 저마다의 방법으로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존 도의 살인에는 7대 죄악만이 아니라 <베니스의 상인>, <실낙원> 등 고전 문학 속 이야기가 살해 방식으로 차용되었다. 다시 말해 살인마 존 도의 목적은 단순한 살해에 있지 않았다. 그는 살인을 통해 제 뜻과 철학을 관철하길 바랐으며, 이 같은 그의 살인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존 도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살인을 변명한다. 세상이 너무 병들어서 정화가 필요하다고. 자신은 순교자로서 인간의 죄악을 경고하기 위해 모든 일을 벌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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