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던 포크록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나이트클럽 등지를 중심으로 디스코(Disco)가 점차 유행하기 시작했다. 디스코는 펑키한 비트감과 중독성 있는 그루브 덕분에 가볍게 소비하기 좋은 음악으로 인식되어 단기간에 큰 사랑을 받게 된다.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는 형형색색의 단색 조명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미러볼 아래, 노래와 춤으로 하나 되는 디스코의 마력은 성별과 인종 차별을 뛰어넘게 하는 평등과 자유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흑인 음악인 리듬 앤 소울과 백인 음악인 소울의 만남으로 탄생했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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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바에서 동성끼리 춤을 추는 그 자체가 메인스트림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소수자들의 문화가 수면 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 때문에 극우파들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춤을 추기 위한 음악’ 또는 ‘자가복제로 유행하는 단순한 음악’으로 여겨지던 디스코는 당시 주류 음악이던 록 마니아들의 공격을 받아 한순간에 매장되는 ‘디스코 파괴의 밤(Disco Demolition Night)’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구성을 달리한 포스트 디스코의 형태로 메인스트림에 다시 오르면서 지금 일렉트로니카의 기반을 다졌고, 누 디스코로써 새롭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현재에는 댄스 팝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디스코는 아쉽게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악’이었던 적은 없는 것이다.

현재의 디스코는 오로지 음악적 특징이 강조되어 팝에서 하위 장르로 소비되거나 당대 디스코~포스트 디스코를 대표하는 가수의 음악을 오마주 하는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뮤지션 혹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디스코 활용법과 2018년에 발표된 그들의 대표 음악을 소개해본다. 내한을 앞두거나 이미 올해 초 한국 공연을 매진시킨 뮤지션들도 소개하니 반갑게 맞아보자.

 

Kacey Musgraves ‘High Horse’

이번 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하지만 그래미 심사위원의 취향으로 쉽게 예측된) 올해의 앨범상은 컨트리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의 4집 <Golden Hour>에게 돌아갔다. 그는 전통적인 컨트리의 고향 내슈빌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메이저 데뷔부터 파격 그 자체였다. 팝 음악과 조화를 강조하면서도 곡에서 마리화나 흡연과 동성 간의 키스를 언급(곡 ‘Follow Your Arrow’)하여 컨트리 지지층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오히려 해당 장르를 즐겨 듣지 않는 리스너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현재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컨트리에 캐치한 팝과 디스코를 본격적으로 적용시켜 다양한 악기와의 협업을 유도한 4집의 수록곡, ‘High Horse’는 업템포에 기계적인 일렉 기타 스트럼과 나긋한 밴조와 어쿠스틱 기타가 어울리는 독특한 트랙이다. 거만한 자들은 조심하라는 위협적인 경고를 담은 가사는, 펑키한 디스코 사운드 아래 찰랑거리는 시원한 보컬과 함께 묘한 설득력을 가진다.

 

Mitski ‘Nobody’

인디 록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미츠키(Mitski)는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운 감정의 소용돌이와 일본계 미국인 혼혈로서 겪어야 했던 주변의 시선을 노래한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사실적인 접근과 깊은 표현력 그리고 해체의 욕구를 자극하는 복잡한 구성으로 펼쳐내며 탄탄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아웃사이더의 감정선을 전했던 지난 곡을 지나, 2018년을 대표하는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된 그의 5집 <Be the Cowboy>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주체적인 여성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그려냈다. 뭉근히 끓어오르는 전개에 디스코의 드라마틱함을 더한 수록곡 ‘Nobody’는 이전 그의 작품처럼 캐치하고 강렬한 편곡이 주를 이룬다. 연인의 부재에 쓸쓸해져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곡의 화자는 가벼운 일탈에서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로맨시스트이다.

 

Christine and the Queens ‘Girlfriend’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변해, 가슴 아프고도 섬세한 감정선을 펼치며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프랑스의 팝 뮤지션 크리스틴 앤 더 퀸즈(Christine and the Queens)는 알앤비와 힙합을 적절히 분배한 팝 스타일을 지나 본격적으로 복고를 시도하며 제2의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중 2집 <Chris>에서는 기존의 불확실하고 어딘가 소극적이었던 캐릭터를 해체하고 적극적이고 담대한 모습으로 새로운 페르소나를 펼쳐냈다. 판섹슈얼임을 밝히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비롯한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갖고, 관계에서 지배적인 여성이 되거나 발칙한 욕구 그 자체를 추구하기까지 한다. 이를 대표하는 곡 ‘Girlfriend’는 수동적이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자유로운 디스코의 분위기에 물들였다. 마치 프린스, 마이클 잭슨의 디스코 황금기를 재현하듯, 날이 선 기타 리프와 네온사인의 은은한 불빛을 표방한 신스 사운드로 쓸쓸하면서도 낭만이 여전한 당대의 도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Tom Misch ‘Disco Yes’

기타와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하는 멀티 인스트루먼탈리스트이자 재즈에 조예가 깊어 차세대 펑크 뮤지션으로 불리는 영국 뮤지션, 톰 미쉬(Tom Misch)는 작년 내한 공연을 매진시키고 올해에도 다시 방문하며 국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춘 신인이다. 재즈에 힙합, 팝 사운드를 접목한 데뷔 앨범 <Geography>에서는, 이전에 그를 걸출한 비트메이커로 주목받게 했던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던 미니멀한 펑크 사운드를 더욱 강화한 음악을 들려준다. 디스코의 여러 내러티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그의 매력. 무기력하게 흐트러진 보컬은 잔잔한 어쿠스틱 넘버에 비트를 점차 쌓아 올린 방식으로 부드럽게 전개되거나, 아예 빅밴드 재즈를 표방하는 가운데에도 전혀 쳐지지 않으니 놀랍다. 수록곡 중 디스코 장르 그 자체를 찬양하는 곡 ‘Disco Yes’는 펑키한 베이스라인으로 댄서블한 팝을 표방한다. 곡은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2018 플레이리스트에 오르며 재조명받기도 했다.

 

Leon Bridges ‘If It Feels Good (Then It Must Be)’

레트로 소울의 클래식 그 자체와 빈티지한 60년대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한 데뷔 앨범으로 극찬을 받은 소울 뮤지션 리온 브릿지스(Leon Bridges)는 지난 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Traditional R&B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팔셰토로 연약하게 수동적인 사랑을 보이다가도, 날카롭게 자신감을 어필하거나 포근함으로 사랑을 전하는 등 상당히 넓은 보컬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2018년에 발표한 2집 <Good Thing>에서 조금 더 현대적인 R&B 혹은 펑크 사운드를 선보였다. 마치 퍼렐과 브루노 마스가 떠오르는 앨범의 대표곡 ‘You Don’t Know’를 비롯하여 곡 ‘If It Feels Good (Then It Must Be)’은 풍부한 기타 스트럼에 의도적인 호흡으로 펑키함을 한껏 살리고, 신스 멜로디의 매끄러운 강약 조절로 본격적인 팝 사운드를 시도했다. 80년대 포스트 디스코와 알앤비에서 영감을 받은 자체는 이전처럼 레트로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여러 시대를 알차게 오고 간다는 점에서 리온 브릿지스의 개성이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Parcels ‘Tieduprightnow’

유럽풍 디스코의 중심,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밴드 파슬스(Parcels)는 일렉트로니카에 낭만을 더한 재기발랄한 뮤지션이다. 60년대 비틀스의 더벅머리와 비치 보이즈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멜로디, 그러나 중독성 있고 직선적인 펑크 사운드는 80년대 클래식 디스코를 넘어 다프트 펑크의 누 디스코를 재현한 듯하다. 이러한 다채로운 모습에 대하여 밴드는 스스로를 ‘일렉트로 팝에 디스코 소울을 접목한 음악을 시도하는 뮤지션’이라 정의하였으며, 이는 곧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Parcels>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대표 트랙 ‘Tieduprightnow’가 디스코 그루브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나, 진취적인 전개를 통해 인생을 예찬하는 모습 역시 전설적인 디스코 뮤지션들을 오마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슬스 앨범의 다른 트랙은 현재의 강렬한 일렉트로니카에 레트로 사운드를 혼합 믹싱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이는 여타 다른 신생 밴드에서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메인 이미지 출처 - Festileaks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