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튼 마살리스, 테런스 블랜차드와 함께 모던 재즈 트럼펫을 대표한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는 1960년대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 1990년대 재즈의 부활을 주도한 스타였다. 에리카 바두와 노라 존스를 배출하여 스타 뮤지션의 산실로 유명한 텍사스의 아트 전문학교 부커 T. 워싱턴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이 학교를 방문한 윈튼 마살리스의 레슨을 받고 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일찍이 재즈 스타로 발돋움했다.

Roy Hargrove Quintet(2018)

데뷔 초기 그의 연주 스타일은 정통 하드밥 스타일로 리 모건(Lee Morgan)과 우디 쇼(Woody Shaw)를 생각나게 한다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정통 재즈를 고집했던 그의 멘토 윈튼 마살리스와는 달리, 그는 재즈에 머무르지 않고 소울과 힙합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를 추구했다. 그의 일생을 다섯 가지의 키워드로 알아보았다.

램지 루이스의 <Legends of Jazz>에 출연한 로이 하그로브(2006)

 

쿠바음악 밴드 크리솔(Crisol)

밴드 Crisol의 <Habana>(1997)에 수록한 ‘O My She Yeh’

로이 하그로브는 27세이던 1996년, 하바나 재즈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11일간 쿠바에 머물며 그곳의 음악에 푹 빠졌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네 명의 쿠바 뮤지션, 네 명의 미국 뮤지션, 두 명의 푸에르토리칸 뮤지션으로 구성된 실험적인 11인조 프로젝트 밴드 크리솔(Crisol)을 구성하여 이탈리아의 Umbria Winter Jazz Festival에 참가하였다. 이곳에서 실황으로 녹음된 앨범 <Habana>는 1998년 그래미 최고 라틴앨범상을 받으며 그의 첫 크로스오버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네오소울과 힙합 집단, 소울퀘리언즈(Soulquarians)

소울퀘리언즈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네오소울과 얼터너티브 힙합 뮤지션들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Electric Lady Studio)에 모여 함께 음악적 방향성을 모색한 뮤직 그룹으로, 퀘스트러브(Questlove), 디안젤로(D’Angelo),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제이 딜라(J Dilla) 등 다양한 스타일의 뮤지션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로이 하그로브도 멤버로 참여하여 그래미를 수상한 디안젤로의 <Voodoo>(2000), 에리카 바두의 플라티넘 앨범 <Mama’s Gun>(2000)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소울퀘리언즈 관련 애니메이션 영상

 

허비 행콕, 마이클 브레커와의 재즈 트리오

왼쪽부터 마이클 브레커, 로이 하그로브, 허비 행콕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탄생 75주년을 기념하여 2001년 11월에 뉴욕의 매시홀에서 허비 행콕(피아노), 마이클 브레커(색소폰)와 함께 연주한 공연 실황을 <Directions in Music Hall: Live at Massey Hall>이란 제목으로 출반하였다. ‘Celebrating Miles Davis & John Coltrane’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념비적 음반은 2003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재즈 연주 앨범상을, 거기에 수록한 ‘My Ship’은 최우수 솔로연주상을 거머쥐며 2관왕이 되었다. 앨범 제목대로 재즈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음반으로 평가된다.

<Directions in Music Hall>에 수록한 ‘My Ship’ 실황

 

재즈 힙합 그룹, RH Factor

The RH Factor <Hard Groove>에 수록한 ‘I’ll Stay’. 디안젤로가 피처링했다

로이 하그로브가 힙합 음악의 팬이며 힙합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한다는 소문은 일찌감치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구체화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밴드가 The RH Factor였다. 세션 뮤지션으로 이름을 떨치던 두 명의 색소폰 연주자와 세 명의 키보드맨 그리고 두 명의 기타리스트를 불러모아 재즈, 힙합, 펑크, 소울, 가스펠 음악을 섞은 자칭 하드 그루브(Hard Groove)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은 <Hard Groove>(2003), <Strength>(2004), <Distractions>(2006) 음반을 냈는데, 여기에는 디안젤로, 에리카 바두 같은 저명한 네오소울 뮤지션들이 피처링하여 주목을 받았다.

 

로이 하그로브 퀸텟

<Earfood>(2008)에 수록한 R&B 스타일의 오리지널 ‘Strasbourg Saint Denis’

오랜만에 정통 재즈로 돌아온 그는, 자신과 케미스트리가 맞는 색소포니스트 저스틴 로빈슨, 피아니스트 제랄드 클레이턴과 함께 재즈 퀸텟을 구성했다. 이들과 함께 낸 음반 <Earfood>(2008)는 이듬해 빅밴드 구성으로 출반한 <Emergency>(2009)와 함께 로이 하그로브의 마지막 음반이 되었다. 그의 발목을 잡은 신부전증이 악화하여 투석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그 역시 팻츠 나바로, 클리포드 브라운, 리 모건, 우디 쇼 등 한 시대를 풍미한 트럼펫 레전드처럼 50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신장 기능의 이상을 발견하고 14년 동안 병원에서 투석 치료를 받으며 음악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지난해 11월에 뉴욕의 병원에서 49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를 발굴하고 그의 멘토가 되어준 윈튼 마살리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내가 처음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 그는 경이적인 청각, 대단한 기억력과 엄청난 트럼펫 연주력을 가진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중략)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슬픔을 억누를 수 없지만, 로이가 남긴 삶과 유산에 의해 다시 기운을 내게 된다. Rest in Peace Baby.

- 윈튼 마살리스의 추모글 중에서

 

로이 하그로브 페이스북 

 

메인 이미지 출처 – WR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