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하나의 고양이 양식, 고양이 사회, 고양이 세계 전체를 창조했다. 잉글랜드의 고양이가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처럼 보지도 살지도 않는 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 <타임머신>, <투명인간>의 작가 H. G. 웰스

루이스 웨인(Louis Wain)은 고양이 그림을 수도 없이 그린 미술가로 유명하다. 그는 186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평생에 걸쳐 고양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재미있는 점은, 작품 초기 주로 사실적인 형태였던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그림이 날이 갈수록 기괴하고 독특한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과 의사들이 그의 정신병을 의심했을 정도다. 점차 흥미롭게 변해가는 웨인의 고양이 세계를 살펴보자.

루이스 웨인

어린 시절 건강 문제로 종종 학교에 가지 않았던 루이스 웨인은, 유년기 많은 시간을 런던 시내를 떠돌면서 보냈다. 아마도 이때부터 그는 많은 고양이를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루이스 웨인은 웨스트 런던 예술 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그곳에서 잠시 교사로 일하다가 이내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20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일찌감치 어머니와 네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지만, 다행히 그의 작품 활동은 큰 성공을 거뒀다. 1880년대 당시 웨인이 그린 것은 시골의 풍경과 삽화,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었다.

<Sojourners In A Strange Land>(1891) Via Via ‘antique maps and prints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동생 에밀리가 유방암에 걸려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것. 에밀리는 죽기 전 길에서 새끼고양이 ‘피터’를 구조했고, 투병 동안 피터로 인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루이스 웨인은 그런 피터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에밀리는 이 그림들을 출판하기를 권유했다. 에밀리는 비록 작품이 출판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웨인은 고양이를 계속해서 그리게 된다.

루이스 웨인이 그린 피터 Via 'Pinterest'

처음엔 고양이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그렸던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를 점차 의인화하여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고양이는 서서 걷는 것은 물론, 사람처럼 과장된 표정을 짓거나 행동했다. 이 같은 경향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A Kittens' Christmas Party)>(1886)의 경우,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소개됐다. 이 작품에는 많은 수의 고양이가 서로 초대장을 보내고, 음식을 함께 먹고, 게임을 하는 모습 등의 11가지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Kittens' Christmas Party)>(1886) Via 'Amzon Old Print'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중에서
<고양이의 악몽(Cat’s Nightmare)>(1890)
<The Naughty Puss>(1898) Via ‘Pennymead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는 점점 사람에 가까워졌다. 그의 고양이들은 손님에게 커피나 차를 대접하고, 총을 든 채 담배를 피우거나, 옷을 입고 노래를 하는 등 당시 인간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패러디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의인화된 고양이 그림들은 1901년부터 1915년까지 매년 <루이스 웨인 매뉴얼> 시리즈로 발간되기도 했다.

<Afternoon Tea>
<A Summer Tea Party>
<First World War Tommy In A Trench>
<Kittens and Lady>
<루이스 웨인 애뉴얼> 표지 모음

루이스 웨인이 단지 고양이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웨인은 각종 동물 자선 단체 및 국제 고양이 클럽에서 활동하고 때때로 위원회 총장과 의장 임무를 수행하는 등 고양이 동물권 향상에 직접 힘썼다. 하지만 그의 갖은 노력과 작품의 인기에도, 웨인은 재정적 어려움에 빠졌다. 겸손하고 순진한 천성 탓에 루이스 웨인은 쉽게 착취당했고, 그림에 대한 권리를 쉽게 팔아버려 자신의 그림이 손쉽게 복제 생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루이스 웨인은 이전에 없던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증세는 금세 심해졌고, 가족마저 웨인의 행동을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는 병원에 수용되어 1939년 사망하기까지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웨인이 정착한 냅스버리 병원은 정원과 많은 고양이가 있는 쾌적한 곳이었고, 그의 감정 기복은 점차 호전됐다. 이 시기 루이스 웨인의 작품들은 여전히 고양이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밝은 색상, 꽃, 복잡하고 추상적인 무늬가 특징이었다.

<무제>(1920s 추정) Via ‘Flickr
<무제> (1920s-1939)
<Sicilian>(1920s-1939) Via 'Wikiart'
<무제> (1920s-1939)
<Cat with Cat Necklace>(1920s-1939)

루이스 웨인의 후기 작품은 그가 살아 생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1960년대 사이키델릭 아트를 연상시킨다. 이 같은 신기한 화풍과 실제 웨인의 심리적 불안 증세를 두고, 많은 사람은 그의 조현병을 의심했다. 당시 루이스 웨인이 그린 일련의 그림을 두고, 예술가의 심리 상태가 악화되면서 작풍도 변화한다는 예시로 인용한 심리학 교과서도 등장했다. 일부 학자는 루이스 웨인의 조현병이 고양이의 배설물로 감염되는 톡소포자충에 의해 촉진되었다고 구체적인 추측까지 던졌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마이클 피츠제럴드 박사는 루이스 웨인의 증상이 아스퍼거 증후군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웨인의 화풍 변화는 흔히 조현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교 감퇴와 무관하다. 2012년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오플린은 루이스 웨인의 후기 작품이 정신병의 악화에 의한 것이 아닌, 의도적인 실험과 색상 사용에 의한 것임을 확증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과 헤 퍼드셔 (Herefordshire) 베링턴 홀 (Berrington Hall)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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