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워츠(Bill Wurtz)는 음악가다. 아니면 유튜브 영상 제작자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한 밈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빌 워츠는 계속해서 음악과 영상을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빌 워츠 Via GENIUS

유튜브만 두고 보면 그의 채널에는 몇백 개나 되는 영상과 음악들이 있다. 해당 콘텐츠들은 거의 다 채 1분도 되지 않지만 대부분 몇백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수많은 영상 중 단 2개만이 9분, 19분 길이의 영상인데, 현재 두 영상의 조회 수를 합치면 1억을 훌쩍 넘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빌 워츠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 음악들은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짧고 굵은 한 마디 정도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정말 랜덤하고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특유의 재지한 멜로디 덕에 단번에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이처럼 짧은 분량의 곡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던 빌 워츠는 자신의 수많은 음악을 어딘가 공개할 방법을 찾았고, 더 나아가 관심 있던 동영상 제작 작업에 기존의 음악을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엉뚱하지만 편안하며 중독성 있고, 무엇보다 짧고 굵은 그의 음악과 가장 맞는 영상 형식을 만들기로 한 것. 동시에 이에 적절한 플랫폼을 찾던 그는 2014년 드디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후 유튜브와 바인(Vine)에 동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 2013부터 2017년까지 트위터가 서비스한 6초 이하 짧은 동영상 공유 서비스
빌 워츠의 바인 중 <Do Re Mi>

처음은 바인이었다. 바인이 수초 분량의 영상들만 올릴 수 있었던 사이트였던 만큼 빌 워츠의 짧은 영상과 음악은 바인에 매우 적합했다. 더구나 특유의 중독성 있고 랜덤한 주제들은 나름 밈으로써 큰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충분했고, 실제로 이 당시 꽤 높았던 바인의 인기에 힘입어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한 문장의 노랫말과 한 마디의 멜로디, 그리고 특유의 영상미 덕에 <still a piece of garbage>나 <i don't want to go to school> 같은 바인 영상들이 바인에서 수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자연스럽게 빌 워츠의 유튜브 계정 또한 많은 구독자를 얻었다.

빌 워츠의 영상은 음악 특징들을 영상으로 그대로 옮긴 것처럼 잘 어울렸다. 특유의 재지하고 편안한 멜로디가 담긴 노랫말은 네온 빛 텍스트들이 다양한 빛깔의 도형들과 간단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음악에 맞춰 검은 바탕에서 둥둥 떠다니는 식으로 표현됐다. 여기에 더해 당시 베이퍼웨이브와도 어느 정도는 어울릴 법한 키치한 미감과 특유의 빠르고 정신없는 데다가 무척 난데없이 전환되는 편집 등은 빌 워츠만의 주된 영상 문법이 되었다. 여기에 뜬금없는 소재와 전개로 이뤄진 구성이나 느슨하게 등장하는 일종의 자기 비하 감수성까지 더해져, 빌 워츠는 난데없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면 무언가 편안하고 중독적인 영상과 음악들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들은 짧고 굵은 밈으로써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발휘하며, 바인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인터넷 곳곳에 넓게 퍼지게 된다.

음악 패러디 채널 'Imaginary Ambition'이 빌 워츠 특유의 스타일과 기법을 따라하는 영상

빌 워츠는 2013년 뒤늦게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지만, 바인에서의 인기 덕에 그는 2014년, 2015년을 지나며 빠르게 유명세를 얻는다. 여러 창작물을 표현하고 게시하는 방법을 마침내 찾아낸 만큼 빌 워츠는 계속해서 짧고 굵은 영상들을 여럿 만들었지만, 그는 동시에 훨씬 더 길고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야심 찬 생각을 갖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던 빌 워츠는 이전에 미국 역사를 바탕으로 삼아 그 특유의 음악과 스타일을 활용한 긴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인에서의 인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긴 길이의 역사 영상을 구상하던 빌 워츠는 마침내 일본 역사를 주제로 삼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별 이유 없이 그저 랜덤하게.

2016년 2월, <일본의 역사(history of japan)>(2016)이 마침내 유튜브에 공개된다. 제목 그대로 기원 전 40,000년경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일본의 역사를 하나하나 다루지만, 이것들을 내용으로 빌 워츠의 모든 특징들이 배가 되어 영상 속에 등장했다. 밈으로써만 받아들여졌던 기묘한 특징들은 오히려 우습고 엉뚱하며 무엇보다 매우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고, <일본의 역사>는 빌 워츠의 대표작이 되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일본의 역사>

<일본의 역사>로 바인 시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빌 워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와 영상을 만들었다. 이전처럼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곡도 있었고, 2~3분 여 정도 되는 곡들도 어느 정도 많아졌다. 그러던 2016년 6월, 빌 워츠는 유튜브와 바인에 영상 올리기를 중단한다. 자신의 음악과 영상처럼 갑작스럽고 난데없이 빌 워츠는 사라졌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인터넷의 사람들은 여태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해온 그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훨씬 더 이상하고 대단한 영상을 들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거의 1년 만에 빌 워츠가 새로운 영상을 들고 돌아온다.

2017년 5월, 그가 공개한 영상의 이름은 <전 세계의 역사, 아마도(history of the entire world, i guess)>. <일본의 역사>보다 두 배 넘게 더 긴 19분짜리 영상이었다. <일본의 역사>에서 빌 워츠의 모든 특징이 집대성을 넘어서 더욱 거대하게 재구축되었다면, <전 세계의 역사, 아마도>는 그렇게 다져진 세계를 양적으로 배 늘림으로써 폭발시켰다. 우주의 시작부터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지구의 현재까지의 모든 역사(아마도)를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들려주며, 빌 워츠는 전 세계의 역사를 가장 특이하게 이야기하는 데에 성공한다, 아마도.

<전 세계의 역사, 아마도>

그 이후로도 빌 워츠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짧고 굵은 음악과 영상을 만든다. 물론 이전처럼 몇 초짜리 영상을 매일매일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빌 워츠는 음악인이고, 영상 제작자이며 단순한 밈만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편안한 멜로디와 빠르고 정신없지만 묘하게 집중되는 편집, 이상하고 엉뚱한 노랫말과 영상 등은 유튜브를 비롯해 전 인터넷에서 빌 워츠 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스타일이 되었고, 이 스타일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의 콘텐츠들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올 때마다 몇백 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심지어 인터넷상의 콘텐츠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쇼티 어워즈(Shorty Awards)’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적절하게도, ‘최고의 이상함(Best in Weird)’ 부문에서. 시상대로 올라와 “감사합니다” 한 마디만을 짧고 굵게 말하고 바로 내려오는 모습은 그의 영상들과 닮았다. 짧고 굵게 웃기지만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는 영상들. 어쩌면 빌 워츠는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 번째 역사-다큐멘터리-음악-영상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Writer

어설픈 잡덕으로 살고 있으며, 덕심이 끓어 넘치면 글을 쓴다. 동시대의 대중 음악/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인디 게임, 인터넷 문화, 장르물 등이 본진(중 일부). 웹진 weiv에서 대중 음악과 비평에 대해 쓰고 있고,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창작/비평하고자 비효율적으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