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키무키만만수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인터뷰가 무척 반가울 것 같다. 뮤지션 이민휘는 앞서 2011년, 2인조 여성 인디 밴드 무키무키만만수로 데뷔했다. 그는 무키무키만만수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이듬해 발표한 1집 <2012>에는 ‘안드로메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처럼 이들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난해하고 튀는 곡도, ‘2008년 석관동’이나 ‘식물원’처럼 서정적인 곡들도 고루 섞여 있었다.

2016년 11월, 이민휘는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라는 이름을 떼고 본인의 이름으로 첫 번째 솔로 앨범 <빌린 입>을 발표했다. 한결 차분해지고 농밀해졌으며, 한 편의 영화나 연극처럼 큰 스토리가 느껴지는, 몹시 인상적인 앨범이다. 노래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궁금했다. 무키무키만만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그간의 활동과 앨범 <빌린 입>에 관한 이야기들을 몇차례의 서면인터뷰로 주고받았다.

 

▲ 무키무키만만수가 2012년에 발표한 1집 앨범 <2012> 커버. 사진 이차령


뮤지션 ‘이민휘’를 얘기할 때 여성 듀오 ‘무키무키만만수’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때는 ‘만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였죠. 돌이켜보면 감회가 어떤가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멋있는 밴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개성이 강하게 느껴지거나 저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면 재미를 느끼는데, 무키무키만만수는 그 점에서 참 재미있는 밴드였습니다. 당시 음악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밴드에 대해 ‘이게 음악인지 아닌지’, ‘퍼포먼스인지 음악인지’, ‘소음인지 음악인지’와 같이 음악학에서 논의되는 주제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걸 보는 것도 공짜로 필드워크 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고요. 다만 너무나 앙상한 구성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했기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고, 때문에 누군가가 따라 하기도, 제가 다시 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무키무키만만수 ‘방화범’ 라이브 영상 [바로가기]

 

무키무키만만수 때로부터 이민휘의 음악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나요?

둘 다 1집만 나온 상태이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무키무키만만수 때는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던 반면, 솔로 앨범은 한 가지 주제로 묶어서 작업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사실 제 음악이 시간상으로 변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빌린 입>에서 동명의 타이틀 곡을 비롯한 몇 곡은 무키무키만만수 활동 전에 쓴 곡이고요.

 

▲ 무키무키만만수 시절 만수(보컬/기타)와 무키(보컬/장구)

 
그동안 <파스카>(2013),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히스테릭스>(2014), <나의 연기 워크샵>(2016) 같은 독립 영화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어요. 영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연극을 하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연극 음악은 해준 적이 있었지만 영화 음악에는 별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달파란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데모를 드릴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로 <고지전>을 도와드리면서 영화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며 민휘 씨 목소리가 들릴 때 참 좋았어요. 몽롱한 듯 차분한 보컬, 후렴구의 폭죽 소리가 영화 분위기를 하나로 압축한 느낌이 들어서 황홀했고 그만큼 여운도 크게 남았습니다. 작업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장건재 감독님이 제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던 <주님의 학교>(2013)와 <파스카>(2015) 음악을 좋게 듣고 연락을 주셨어요. 너무 느끼하지 않은 멜로 영화라 부담 없이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일본 시골의 조용한 정취를 느끼며 일본어 가사를 부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 이민휘 ‘한여름의 판타지아’ [바로가기

 

ⓒ김보리

 
민휘 씨가 음악인의 길을 결심한 것은 언제인가요?

6살 때입니다. 귀가 좋은 편이라 피아노 학원에서 입시생 언니오빠들이 치는 걸 듣고 따라쳤는데, 그걸 본 학원 선생님이 전공을 권유했어요. 어린 애들이 으레 그렇듯 저도 어른들이 칭찬해주니 좋아서 그때부터 ‘아,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생각했고요. 그래도 중학교 때는 하기 싫어서 피아노를 발로 차서 구멍 내고 피아노 보면대를 이로 물어서 이빨 자국 내고 그랬어요(웃음). 그때 때려치우겠다는 제 얘기를 무시하고 계속 시켜 주신 어머니께 지금은 무한 감사드립니다

 

음악적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감을 얻으면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미지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어떻게 써야겠다고 대충 느낌이 오면 먼저 오선지에 스케치를 합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연주를 하면서 음악을 쓰면 음악이 손이 익숙한 쪽으로 가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음악과 개인 작업을 할 때 작업 방식이 좀 달라요. 영화 음악을 할 때는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음악이 나오는데 개인 작업은 기분이 너무 안 좋을 때만 곡이 나와요.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아서 이제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음악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나요?

달파란 선생님입니다. 음악보다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들을 때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 싶은데 필요할 때는 번득 기억나는 참신한 조언을 많이 해 주십니다. 한국에 있는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도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다들 너무 잘해서요.

 

▲ 2016년 11월에 발표한 솔로 1집 <빌린 입>

 
앨범 <빌린 입>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볼게요. 먼저, 앨범 커버 사진을 직접 찍었다고 들었는데 무척 강렬합니다.

2010년 즈음 사진을 배우고 굉장히 열심히 찍었습니다. 그때 마장동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빌린 입>은 오랫동안 기획하고 생각한 앨범인데, 처음부터 이 사진을 커버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 말하지 못하지만 말하는 것, 말해야 함에도 말하지 않는 것. 앨범에서 말하는 여러 이야기를 이 사진이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린 입>은 CD 대신 12인치 바이닐과 디지털 음원으로만 앨범을 제작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하나의 주제로 묶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청자가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LP로 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신인(?)이기 때문에 음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디지털 음원으로 듣는 분들도 이런 의도를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플루트,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트럼펫, 비올라, 첼로 같은 악기를 사용했어요. 그래서인지 듣는 이를 심연으로 인도하는 듯한 진득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특별히 이 악기들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익숙한 악기들이라서 떠올렸을 수도 있고요. 보통 작업을 할 때 곡을 쓰면 ‘어떤 악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은 별 고민이 없었습니다.

 

 ⓒ김보리


결국 앨범은 한 곡이 한 챕터 역할을 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빌린 혀(입), 부은 발, 거울과 깨진 거울, 구원, 고백, 그리고 마침내 침묵까지. 이런 키워드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이 앨범은 닫힌 입을 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지만, 청자의 경험도 될 수 있도록 중립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모두 제가 살면서 겪었던 문제들과 관련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그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앨범으로 낼 용기를 낸 것이지만요. 추천사를 써준 이준하라는 친구가 이 앨범을 두고 ‘끝과 끝이 연결된 내부순환도’로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확합니다. 기승전결로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해석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습니다.

 

‘부은 발’에서 “진실을 말하면 이 산이 무너진다”는 가사가 와 닿았습니다. 현 시국이 생각나더군요.

이 곡은 제가 개인적으로 ‘타협했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을 시기에 뭔가에 졌다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와 무관하지 않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고아침 씨가 6번 트랙 ‘깨진 거울’ 보컬로 참여했어요. 목소리만 듣고는 뮤지션 이규호인 줄 알았습니다(웃음). 참여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는데 이규호 씨 죄송하고요(웃음). 남편이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나쁘지 않아서 언젠가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부르게 한 것은 가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깨진 거울’ 가사를 다시 보며 이래저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앨범에서 가장 밝은 곡을 꼽자면 ‘깨진 거울’이 아닐까 합니다. 기타 사운드나 보컬이 앨범 전체를 봤을 때 튄다는 느낌이 있는데 어떻게 만든 곡인가요?

일단 곡을 써 놓은 후에 편곡하는 과정에서 가사와 악기 구성이 바뀌었습니다. 파라솔이라는 밴드가 연주하면 좋겠다 싶어서 함께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앨범에 들을 거리가 다양한 걸 좋아해서 별 부담이 없었는데, 밴드 푸르내의 이경환이라는 친구가 끝까지 이 곡이 너무 튄다고 따로 내야 한다고 했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 이야기 구성상 가사 때문에 뺄 수가 없었습니다.

 

‘침묵의 빛’은 5분짜리 클래식이라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 곡을 마지막 트랙에 넣은 이유가 궁금해요.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앨범은 아니지만, ‘침묵의 빛’은 에필로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가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창이 되지만, 상이 명확하게 보이면 우리는 그것에서 한 가지만을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이민휘 ‘침묵의 빛’ MV [바로가기

 

사실 처음 들었을 땐 앨범 분위기가 무척 어둡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무거움이 어느새 편안하게 느껴지고, 어둠 안에 밝음이 공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실제 민휘 씨 성격도 음악과 닮았나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굉장히 밝은 사람입니다. 앨범에 들어간 세 곡 정도를 녹음해준 박열 씨가 제가 보컬 녹음을 할 때 ‘음악이랑 사람이랑 너무 달라서 사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처럼 제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성격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업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세계인지 살짝 말해주면 좋겠어요.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상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아요.

 

이민휘가 바라는 뮤지션 이민휘의 모습은요?

거짓말 안 하고 그냥 할 말 있을 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이민휘 ‘빌린 입’

 

이민휘 홈페이지 http://minhwee.kr

인터뷰
이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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