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넘도록 착실히 꾸려온 인생, 그리고 그 삶으로 쓴 시(詩)를 비춘 영화들이 찾아왔다. 어떠한 수식도 이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의 주인이자 시인인 할머니들을 담은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에 자랐고, 민족말살정책 때문에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칠곡 가시나들>

<칠곡 가시나들>은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노년의 현재’에 주목하는 영화다. 작품은 경북 칠곡에 사는 할머니들을 비춘다. 80세가 넘어 한글을 배운 이들은 거리의 간판, 담벼락의 스티커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한다. 교사 주석희가 할머니들을 만난 첫 번째 이유는 한글 교육이었다. 그렇지만 글이라는 세상을 만난 할머니들은 차츰 꿈이나 욕망, 호불호 등 조심스레 품어왔던 마음을 풀어놓는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이는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지원하고, 술을 좋아하는 이는 자주 막걸리와 요구르트를 사서 친구들과 나눠 마시며, “할머니 말 못 알아듣겠어요” 하는 손자 말에는 “나도 느그 말 못 알아듣겠다!”고 받아치기도 한다.

빨리 죽어야 데는데
십게 죽지도 아나고 참 죽겐네
몸이 아푸마
빨리 주거여지 시푸고
재매끼 놀 때는
좀 사라야지 시푸다
내 마음이 이래
와따가따 한다

- 박금분 <내 마음>

‘고생스러운 세월을 보낸 어머니’, 혹은 ‘과거를 곱씹으며 사는 노인’과 같은, 노년을 말할 때 쉽게 붙이곤 하는 획일적이고 간편한, 그래서 폭력적일지 모를 수식이 이 영화엔 없다. 김재환 감독은 ”노년에게도 현재의 욕망과 오늘의 설렘이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들을 바라봤던 시선이 노년을 왜곡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시종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다가도, 현상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감독의 문제의식 역시 드러나는 영화다. 2월 27일 개봉.

<칠곡 가시나들> 예고편

 

<시인 할매>

2월 5일 개봉한 영화 <시인 할매>는 시(詩)에 집중한다. 영화는 할머니들이 쓴 시와,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찬찬히 짚는다. 전남 곡성 서봉 마을에 자리한 ‘길작은 도서관’. 이곳의 관장 김선자는 책 정리를 돕던 할머니들이 책 제목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한글 교실을 연다. 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종이 위에 써 내려간다.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재란 결국, 절대 잊히지 않을 경험이나 감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엔 시집가던 날의 기분이나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처럼 강렬한 기억이 덤덤히 쓰였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 윤금순 <눈>

할머니들은 영화 내내 버릇처럼 “벌로(대강, 대충이라는 뜻의 사투리) 살았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시를 읽으면 1초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삶을 꾸려왔을 모습이 선연하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이들을 바라보거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할머니들이 80년 넘게 일군 일상을 담백하게 비추면서, 글을 배운 후 달라진 하루하루와 마을 풍경을 담는다. 특히 인물 클로즈업 신과 곡성의 계절을 한눈에 담아낸 드론 촬영 신이 대조될 때는 생경한 감동이 밀려든다.

<시인 할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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