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같은 영화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두 편의 작품이 서로 다른 분위기임에도 같은 제목을 공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제목은 영화 전체를 함축하기에, 제목이 같은 영화라는 건 일정 부분 비슷한 요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목을 비롯해 묘하게 비슷한 점이 있고, 그러나 작품 전체로 보면 다른 개성을 지닌 동명의 영화들을 살펴보자. 

*이 글은 원제가 아닌 한국어 제목을 기준으로 한다.

 

<비열한 거리>

1973년작 마틴 스콜세지‧1994년작 제임스 그레이

<비열한 거리>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유하 감독이 연출하고 조인성이 출연한 2006년 작품일 거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비열한 거리>는 마틴 스콜세지가 1973년에 연출한 <비열한 거리>와 제임스 그레이가 1994년에 연출한 <비열한 거리>다.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Mean Streets)>의 원제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살인이라는 단순한 예술(The Simple Art of Murder)>에 나온 문장(But down these mean streets a man must go who is not himself mean, who is neither tarnished nor afraid)에서 인용했고, 제임스 그레이의 <비열한 거리(Little Odessa)>의 원제는 영화의 배경인 뉴욕 리틀 오데사를 뜻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탈리아계, 제임스 그레이는 러시아계로 두 감독 모두 뉴욕 출신이다. 두 사람이 각각 연출한 <비열한 거리>에는 각자의 출신 성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두 작품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이방인의 정서가 드러난다.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에서는 ‘찰리’(하비 케이틀)가 ‘자니’(로버트 드니로)를 돕고, 제임스 그레이의 <비열한 거리>에서는 킬러인 ‘조슈아’(팀 로스)가 임무 수행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 리틀 오데사에 와서 동생 ‘루벤’(에드워드 펄롱)을 챙기는데 그 정서의 바탕에는 이방인들 간의 유대가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는 그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부터 호흡을 맞춰온 하비 케이틀이 주연을 맡았고, 훗날 그의 페르소나가 되는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찰리는 자기 앞가림도 못 하지만 주변을 챙겨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문제만 일으키는 자니를 돕는다. 찰리는 자니를 도울수록 점점 출세와는 멀어지고, 신이 아닌 이상 비열함이 넘치는 거리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건 거대한 오만처럼 느껴진다.

제임스 그레이는 24살에 찍은 데뷔작 <비열한 거리>로 제5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으며 대중과 평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조슈아는 킬러로 살아가던 중에 오랜만에 고향 리틀 오데사에 와서 동생 루벤과 재회하지만,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에서 자신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걸 느낀다. 제임스 그레이는 <비열한 거리>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

1979년작 이마무라 쇼헤이‧2002년작 박찬욱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 공개됐을 당시에 많은 이들이 이마무라 쇼헤이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떠올렸다. 정작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공개된 2002년에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을 봤다고 한다. 즉, 두 영화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두 영화는 묘하게 비슷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두 영화 모두 ‘복수’를 소재로 건조하게 전개되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작품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살인 뒤에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변으로 닦는 장면이나,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장면 등 인물의 악한 본성이나 복수심 등의 감정을 대사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 속 ‘에노키즈’(오가타 켄)는 절대 악에 가까운 개인이고, 박찬욱의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시스템 안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이들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은 60년대 실제 연쇄살인범을 모티브로 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에노키즈는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된 후에 자신의 범행과 삶에 대해 진술한다. 에노키즈가 연쇄살인범이 된 이유에 대한 몇 가지 단서가 등장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살인에는 별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는 건 다르게 말해서 누구나 그처럼 될 수 있다는 뜻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악한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은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와 함께 ‘복수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청각장애인 ‘류’(신하균)는 누나(임지은)의 수술비용 때문에 그의 연인 ‘영미’(배두나)와 함께 유괴를 하고, ‘동진’(송강호)은 자신의 딸을 유괴한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움직인다. 류는 세상의 변두리에 방치된 사회적 약자로, 그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공장노동자인 류는 세상에 복수하려 하는데, 정작 그가 비극을 안겨준 대상은 비슷한 계급에 속한 기술자 출신 동진이다. 명백한 피해자가 생기는 세상의 시스템은 변할 생각을 안 하고, 그 안에서 약자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피아니스트>

2001년작 미카엘 하네케‧2002년작 로만 폴란스키

칸영화제는 2001년과 2002년, 2년 연속으로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의 영화에 열광했다. 제54회 칸영화제에서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는 심사위원대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차지했고, 제55회 칸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피아니스트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원작으로 하고,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의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두 작품의 차이라면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는 주요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고,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는 피아노 교수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완벽주의자 같지만 사실 강압적인 어머니(애니 지라르도)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부분에서 억압된 사람이다. 그는 우연히 만난 청년 ‘월터’(브누와 마지멜)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다가오려고 하자 경계한다. 에리카는 어머니의 욕망에 따라 피아니스트가 되지만, 정작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실현해본 적이 없는 미성숙한 사람이다. 그가 사랑을 이뤄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슈베르트와 슈만의 곡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법이 아닐까.

로만 폴란스키는 실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피아니스트>에는 그가 직접 겪은 전쟁의 잔혹함이 녹아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는다. 스필만이 겪는 고통을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많은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느낄 수 있다.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까지, 그 사이에 있었던 전쟁은 그의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괴물>

1982년작 존 카펜터‧2006년작 봉준호

존 카펜터의 <괴물>과 봉준호의 <괴물>은 두 편 모두 괴물이 등장하지만 장르로 보자면 존 카펜터의 작품은 SF호러, 봉준호의 작품은 드라마에 가깝다. 존 카펜터가 괴물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심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면, 봉준호는 괴물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두 작품의 배경은 다르지만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존 카펜터의 <괴물>은 남극 탐사대 기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봉준호의 <괴물>은 개방된 공간인 한강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존 카펜터의 <괴물>은 1951년에 크리스찬 나비 감독이 연출한 <괴물>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남극 탐사대 기지에 노르웨이 탐사단에게 쫓기는 개 한 마리가 찾아오는데, 알고 보니 이 개의 정체는 괴물이다. 인간을 그대로 복사하는 능력을 가진 괴물 때문에 탐사대 사람들은 서로를 괴물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존 카펜터의 <괴물>은 지금 봐도 수준 높은 특수효과를 자랑하는데,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수준이다. 괴물의 등장을 시작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공포가 큰 영화다. 괴물보다 서로 간의 의심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연출 덕분에 후대의 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고, 지금까지도 SF호러의 걸작으로 뽑히고 있다.

봉준호의 <괴물>은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강두’(송강호)의 가족 앞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고, 괴물이 강두의 딸 ‘현서’(고아성)를 납치하자 가족이 다 함께 현서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다. 강두의 가족은 소시민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현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괴물만큼 벅차게 느껴지는 건 사회다. 괴물이 탄생하는 과정부터 현서와 재회하는 순간까지, <괴물>은 불합리한 사회구조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