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는 세상의 악과 부조리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어쩔 수 없이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창작물의 세계에도 히어로의 손이 닿지 않거나 그들이 제대로 벌할 수 없는 악당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안티 히어로다. 안티 히어로는 착하고 모범적으로만 행동하는 정통 히어로와 다르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사회 법이나 도덕을 무시하거나 과격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통쾌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대표적인 안티 히어로 캐릭터 넷을 살펴봤다.

* 본 글은 안티 히어로와 다크 히어로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통일하여 사용합니다.

 

퍼니셔(Punisher)

2019년 드라마 시즌2 방영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퍼니셔’(응징자)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전직 해병대 출신의 그는 갱단의 범죄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다가 그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복수심에 불타 홀로 범죄자들을 징벌하고 다니는 자경단이 되었다. 비록 초인은 아니지만, 엘리트 특수부대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았던 퍼니셔의 실력은 파트너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시시한 뒷골목 부랑배부터 크고 작은 범죄조직, 부패한 관료들까지 그의 응징 대상도 실로 다양하다. 특히 법망에서 벗어난 거물급이나 영악한 범죄자들까지 기어코 찾아내 벌한다는 점에서 범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퍼니셔는 앞서 무려 세 차례(1989년, 2004년, 2008년)나 영화화됐지만 전부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드라마 <퍼니셔>가 2017년 성공을 거두면서 퍼니셔는 작금을 대표하는 안티 히어로가 되었다. 드라마 <워킹 데드>의 ‘셰인’으로 유명한 존 번설이 퍼니셔 역을 맡아 특유의 불안한 내면을 지닌 과격분자 캐릭터를 열연했다. <퍼니셔>는 지난 1월 18일 넷플릭스에서 시즌2 방영을 시작했다.

<퍼니셔: 시즌 2> 예고편

 

콘스탄틴(Constantine)

2014년 드라마 시즌1 종영

<콘스탄틴>(2005) 스틸컷

퍼니셔가 마블을 대표하는 안티 히어로라면 ‘존 콘스탄틴’은 DC를 대표하는 안티 히어로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영화 <콘스탄틴>(2005)으로 유명한 캐릭터다. 과거 DC 코믹스 <헬블레이저> 시리즈, 현재는 그 설정이 리부트된 <콘스탄틴> 시리즈의 주인공이며, 직업은 마법사이자 퇴마사다. 그는 설정상 수십 명과의 맨몸 격투에서 이겼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뛰어나지만, 대체로 초자연적인 마법과 상황에 적합한 기지를 발휘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그가 겨루는 대상은 악마는 물론 천사도 포함된다.

2014년작 드라마와 코믹스의 콘스탄틴 비교, 코믹스 이미지 via DC Comics

콘스탄틴이 안티 히어로로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가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사실이다. 콘스탄틴은 수려한 말솜씨를 앞세워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친다. 수명이 다 끝났지만 매번 악마들을 속여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히어로들 앞에서도 사기를 치다가 발각되어 질책을 받을 정도다. 늘 더러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니며 골초에 입도 험하다. 작품성과 흥행은 나쁘지 않았지만, 캐릭터가 원작과 차이를 있었던 영화 버전과 다르게, 2014년 방영한 NBC 드라마는 캐릭터의 높은 싱크로율로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콘스탄틴>(2014) 예고편

 

헬보이(Hellboy)

2019년 영화 개봉 예정

리부트 예정인 <헬보이>(2019) 포스터

‘헬보이’는 북미 지역에서 마블과 DC에 밀리지 않는 영향력을 지닌 그래픽노블 출판사, ‘다크 호스’의 코믹스 캐릭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악마를 소환해 전쟁에 이용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이때 지옥에서 오게 된 어린 악마는 헬보이라는 이름으로 연합군 측 비밀조직에서 자라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헬보이는 거대한 체구에 몸은 새빨갛고, 큰 뿔과 꼬리, 소발굽까지 지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외모다. 기본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성격에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지만, 인간과 다르게 천천히 나이를 먹는 점과 특별한 출신 탓에 마치 사춘기 10대처럼 시니컬하고 반항적인 면모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헬보이>(2004) 스틸컷

헬보이는 앞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에 의해 성공적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당시 주연을 맡은 론 펄먼은 큰 키와 강한 인상에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로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의 인식 속에 헬보이 캐릭터를 각인한 바 있다. 영화의 성공에는 각종 크리쳐 연출에 능한 델 토로 감독의 공도 컸다. 올해는 <헬보이2: 골든 아미>(2008) 이후 11년 만의 헬보이 리부트 버전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디센트>(2005)로 뛰어난 공포 연출을 보여줬던 닐 마샬이 감독을, 이전 시리즈 당시의 론 펄먼보다 더 크고 젊은 데이빗 하버가 주연을 맡아 더욱더 원작에 가까운 캐릭터와 분위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헬보이>(2019) 예고편

 

덱스터(Dexter)

2013년 드라마 시즌8 종영

‘덱스터’는 수많은 안티 히어로 중에서 가장 떳떳하지 못한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다. 겉으로는 젊고 예의 바른 법의학자이자 지역에서 제일 유능한 혈흔 분석가이지만, 사실은 그가 자신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감춘 채 뒤로는 끊임없이 살인을 궁리하고 실행하는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살인마 캐릭터에게 관객이 몰입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덱스터는 어린 시절 모친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며칠 동안이나 살해 현장에 남겨졌던 경험이 있다. 이 트라우마를 계기로 그는 사이코패스가 되었고,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덱스터를 입양했던 경찰 해리 모건은, 덱스터의 살인 본능을 알게 된 후 그를 ‘괴물을 잡는 괴물’로 훈육한다.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로서 자신의 살인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교육받은 대로 흉악한 범죄자만을 살인하도록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통제하며, 세상 속에 평범하게 녹아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덱스터의 강박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연출과 캐릭터성을 보인 높은 작품성도 드라마의 인기에 큰 몫을 담당했다.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로, 살인 장면들을 은유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덱스터의 캐릭터성을 모두 담아내 호평을 이끌어낸 드라마 오프닝

 

모든 이미지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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