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대표적으로 “대중문화가 차별적인 여성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 세 편의 TV 시리즈는 일률적인 여성성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각기 다른 노력과 시도를 담은 문제작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편의 시리즈를 두고 평단과 대중의 평가가 엇갈렸다는 것.

 

<다이어트랜드> 2018년 1시즌 종영

2018년 여름 AMC에서 방영된 <다이어트랜드(Dietland)>는 사라이 워커가 2015년 출간한 동명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 시의적절한 위트와 유머, 통렬한 사회 비판 등 제작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통통한 체형의 원작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썼다는 이 이야기는 여성의 자기혐오를 조장하는 미디어 산업을 풍자한 다크 코미디입니다. <굿와이프>의 줄리아나 마굴리스가 10대 소녀들의 워너비이자 여성 패션 잡지 편집장 ‘키티’ 역을 맡았으며, 신예 조이 내쉬가 ‘키티’의 대필작가로 만년 다이어트 실패로 자존감 바닥인 ‘플럼’을 연기합니다.

<다이어트랜드>는 플럼이 우연한 기회로 각기 다른 두 페미니스트 집단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리며 여기에 플럼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상처받고 학대받은 여성들을 위한 공간, 칼리오페 하우스를 설립한 ‘베레나’가 플럼에게 행복은 외모와 체중과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일련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플럼의 뿌리 깊은 자기혐오는 쉽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플럼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다이어트랜드>는 단순히 패션, 뷰티 산업의 폐해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 불만족을 조장하는 미디어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랜드> 1시즌 예고편

많은 작품 속에서 뚱뚱한 캐릭터는 그저 웃음거리나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지지만, <다이어트랜드>의 원작자 사라이 워커는 대중문화 속 비만인에 대한 긍정적 모델의 부재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다이어트랜드>를 통해 인식 변화, 특히 비만인의 자기 비하적 태도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작품 속 자타공인 페미니스트 ‘줄리아’와 플럼의 첫 만남에서, 줄리아가 여성 소비자가 이상적인 미와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길 원하는 오늘날 미디어의 폐해를 설명하자, 플럼은 그것은 인간 사회의 본능이고, 사람들은 “예쁜 것들을 좋아하기 마련이다(People like pretty things)”라고 반박하죠. 이에 줄리아는 “너는 물건이 아니다. 너는 여자다(You're not a thing. You are a woman)”라고 말하는 이 장면, '플럼'이 페미니즘에 한 발 내딛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다이어트랜드> 1시즌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10부작)

 

<채울 수 없는> 2019년 2시즌 공개 예정

한편, 비만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또 다른 시리즈인 넷플릭스의 <채울 수 없는(Insatiable)>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이어트랜드>가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데 반해 <채울 수 없는(Insatiable)>은 비만인에 대한 다양성 존중 부족과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비난과 뭇매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두 시리즈 모두 대중문화 속 지배적인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차이를 보입니다.

<다이어트랜드>는 비만인 주인공이 자신의 몸 그 자체를 긍정하게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채울 수 없는>은 주인공 ‘패티’가 날씬해진 후에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설정으로 오히려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패티를 미인대회에 참가시키고자 ‘밥’은 그녀에게 “Trust Me, Skinny is Magic(날 믿어봐. 날씬한 건 마법이야)”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비만일 때의 삶은 불행하고, 날씬하게 되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채울 수 없는>은 다음 시즌을 확정했고, <다이어트랜드>는 1시즌으로 종영되었습니다.

알리사 밀라노, 데비 라이언 인터뷰 영상

사실, 이 드라마가 문제점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화려한 영상 비주얼, 통쾌한 복수를 그린 스토리텔링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성공 방식을 잘 따르고 있죠. 그런데 왜 그때는 괜찮았고 지금은 문제가 되는 걸까요?

<채울 수 없는>은 과체중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10대 소녀 패티가 여름방학 중 별난 사고를 겪으면서 다이어트에 성공, 날씬해진 몸과 예뻐진 외모로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도모한다는 내용입니다. 변호사이자 미인대회 코치인 ‘밥 암스트롱’은 패티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미인대회 우승자로 만들기 위해 나서게 되고요.

이 시리즈의 논란은 작품이 넷플릭스에 정식 공개되기 대략 한 달 전 예고편 영상이 나왔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작품의 ‘Fat-Shaming’(과체중인 사람을 비난하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 비하하는 행위)을 부추기는 내용을 지적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채울 수 없는>의 방영 취소를 요구했습니다. 설상가상 드라마가 공개되자 로튼토마토에서 12%라는 형편없는 평점을 기록, 2018년 최악의 드라마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채울 수 없는>의 다음 시즌을 확정했는데요, 이쯤 되면 “넷플릭스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평단이 드라마를 과하게 곡해한 걸까?” 의문이 들지만, 알고 보면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일반 대중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다크 코미디이기에, 작품의 메시지 역시 표면 그대로보다 조금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패티의 “Skinny isn't magic(날씬한 건 마법이 아니다). 외모는 날씬해도 내면은 여전히 뚱뚱한 패티니까.”라는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말이죠.

<채울 수 없는> 1시즌 예고편
* <채울 수 없는> 1시즌은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10부작)

 

<볼드 타입> 2019년 시즌3 방영 예정

20세기에 <섹스 앤드 더 시티>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볼드 타입(The Bold Type)>이 있습니다. <볼드 타입>은 코스모폴리탄지 전 편집장 조안나 콜즈의 경험을 바탕 삼아 세계적인 여성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는 세 여성의 커리어, 사랑, 우정 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라? 이런 이야기 많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볼드 타입>이 특별한 건 어디서도 쉬이 다루지 않았던,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의 이민 정책, 여성의 유방암 등 시의성 있는 이슈들을 과감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다양하고 현실적인 주제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풀어내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유쾌하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합니다. 극 중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친구들과 대화 나누는 것처럼 친근하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내 이야기 같은 과감하고 솔직하다는 점에 두 번 놀라게 됩니다.

<볼드 타입> 시즌1에서는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디며 고전 중인 ‘제인’과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중인 ‘캣’, 같은 직장 이사 ‘리처드’와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즐기며 이직을 고려 중인 ‘서튼’ 등 기성 사회에 도전장을 던지는 대담한 여성들의 각기 다른 출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질투 날 정도로 부러운 세 친구의 관계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페미니즘을 굉장히 넓게 다루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여러 분야와 관점에서 다양성이 존중받고 요구되는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곳이, 바로 여성 패션, 뷰티 산업을 대변하는 여성 잡지 편집부가 아닐까 싶은데요. <다이어트랜드>와 <볼드 타입>은 오늘날 여성이 마주하는 대표적인 문제적 화두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다이어트랜드>가 화려한 패션, 뷰티 산업에 대한 허상을 지적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면, <볼드 타입>은 패션, 뷰티 산업 내부에서 남성 중심의 시스템을 바꾸고자 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유연하면서도 비교적 현실성 있게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볼드 타입> 1시즌 예고편
* <볼드 타입> 1, 2시즌은 옥수수에서 구매, 감상 가능합니다.

 

메인이미지 볼드타입 스틸컷,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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