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영화 속 주인공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예술과 관련된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반짝이는 재능 덕에 누군가의 눈에 띄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꿈을 이룬다. 이런 아름다운 서사의 영화들은 종종 관객들로 하여금 꿈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품게 만든다. 지금 소개할 세 편의 영화는 그 희망이 얼마나 쉽게 밟히고 초라해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겨 준다. 재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들은 회피하려 했던 ‘진짜 현실’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평범한 자에겐 꿈을 이루기 위한 특별한 재능도, 경제적 여유도, 조력자도 없다는 걸.

*아랫글은 영화 내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사이드 르윈>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음악영화다. 코엔 형제(조엘 코엔, 에단 코엔)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가 작은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많은 음악 영화 속에서 ‘바(bar)’는 종종 기회와 만남의 공간으로 표현되곤 했다. <비긴 어게인>과 <스타 이즈 본>의 주인공들도 이곳에서 조력자를 만났다. 르윈 역시 노래가 끝난 후 한 낯선 사나이를 만나게 되지만, 도움을 받기는커녕 영문도 모른 채 두들겨 맞고 만다. 르윈이 보통 음악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시작이다.

아니나 다를까 직업도, 돈도 없는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의 상황은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다. 듀엣으로 노래하던 파트너는 자살하고, 솔로 앨범은 팔리지 않아 여러 사람의 집을 진전하며 삶을 연명한다. 그러던 와중 한 번 잠자리를 같이한 ‘진’(캐리 멀리건)에게서는 임신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르윈은 모든 상황을 제쳐놓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시카고로 떠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뉴욕의 작은 바에서 노래를 다시 부른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같은 이 영화는 마치 르윈의 삶이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의 굴레 안에서 끝없이 되풀이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 트레일러

<인사이드 르윈>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은 ‘포크’로 대변되던 시대였다. 현실의 어두운 이면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코엔 형제는 성공한 ‘밥 딜런’ 대신 주목받지 못한 뮤지션의 삶을 조명해냈다. 음악으로 가득 찬 낭만적인 시대에서도 누군가는 르윈처럼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소수만이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인사이드 르윈>엔 아름다운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지만, 어쩐지 그 선율을 맘 놓고 즐길 수 없는 이유다.

 

<프랭크>

<프랭크>는 뮤지션을 꿈꾸지만 한 곡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존’(도널 글리슨)의 무료한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는 동네를 거닐다 우연히 인디 밴드 The Soronprfbs (소론프르브스)의 키보드를 맡게 되고, 그곳에서 절대 탈을 벗지 않는 천재 뮤지션 ‘프랭크’(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난다. 프랭크의 천재성에 매료된 존은 비상금까지 다 써버리며 앨범 작업에 참여한다. 존은 프랭크처럼 멋진 곡을 만들어 멤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온통 구린 곡만 나올 뿐이다.

존의 인정 욕구는 SNS에 올린 앨범 작업 영상이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더욱 심해진다. 밴드가 축제에 초대받은 시점부터는 ‘인정 욕구’가 존의 진실된 ‘창작 욕구’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사회적 성공(인기)을 위한 그의 과한 욕심은 자신의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밴드 멤버들을 갈라놓는다. 어쩔 수 없이 존은 프랭크와 단둘이 무대에 오르게 되지만, 그의 곡을 들은 프랭크는 무대 바닥에 쓰러지며 말한다. “곡이 너무 구려….”

영화 <프랭크> 트레일러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프랭크가 아닌 존에 가깝다. SNS에서 자신을 포장하며 인정 욕구를 채워가는 그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는 영화 속 돈의 대사처럼 프랭크는 세상에 단 한 명뿐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고 싶다면, 누군가가 되려는 욕망을 버리고 ‘솔직한(FRANK)’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 보자. 어찌 됐든 ‘존’ 또한 그 자체로는 한 명뿐일 테니.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 하>는 무용수의 꿈을 갖고 뉴욕에 왔지만 몇 년째 연습생으로 머물고 있는 27살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의 이야기이다. 불안정한 생활에도 행복해 보이던 그의 삶은 아주 친한 친구 ‘소피’(믹키 섬너)와 멀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크리스마스 공연팀에서 퇴출당해 월세를 내지 못하게 되고, 남은 돈을 털어 파리에 가지만 아무도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직접 부딪히며 성장한 프란시스는 결국 무대 위 주인공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FRANCES HA’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워 보인다.

<프란시스 하>는 감독인 ‘노아 바움백’과 주연 배우인 ‘그레타 거윅’이 공동 집필한 작품이다. 영화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동경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면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안착한 그레타 거윅이 있다. <프란시스 하>는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꿈을 꾸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 정해진 것 없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자. “누구든 맘껏 흔들리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반짝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아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영화 <프란시스 하> 예고편

세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우리에겐 원하는 재능이 없을 수 있다. 언젠가 소중한 꿈을 포기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세상이 나만 빼고 돌아가는 것만 같을 때, 그냥 프란시스처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달려보자.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Writer

빛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 가끔 글을 쓰고, 아주 가끔 영상을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