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 블레이 via ‘medium

깡마른 체구에 빗자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의 카리스마. 재즈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 재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 리더 중 한 사람. 칼라 블레이(Carla Bley) 이전에는 재즈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여성은 주로 보컬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정규교육 없이 현대 재즈 신에서 가장 특출한 작곡가이자 리더로서 성별을 넘어 수십 년 가까이 인정받으면서 살아있는 전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가볍지도 난해하지도 않은 흥미로운 작곡, 빅 밴드 사운드의 이채로운 활용 등 칼라 블레이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무대다. 칼라 블레이, 스티브 스왈로우(베이스), 덴마크 라디오 빅밴드 ‘Roller Coaster’ 2017년 라이브 영상

 

재즈계 입문

지휘에 열중하는 칼라 블레이 © Philippe Taka via ‘musicaficionado

1936년 5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칼라 보그(Carla Borg)다. 3세 때부터 5세 무렵까지 교회에서 합창을 지휘하고 피아노를 가르치던 아버지께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칼라 블레이는 오로지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

그가 재즈를 만난 건 17세 무렵이다. 어린 칼라 블레이는 재즈에 반해 혈혈단신 뉴욕으로 건너갔고, 재즈 바에서 담배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열정 넘치고 당돌했던 그는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며 꾸준히 곡을 썼고,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곡을 연주해달라며 악보를 건네기도 했다. 당시 막 자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캐나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폴 블레이는 그런 칼라 블레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이내 1957년 결혼하게 되었다.

폴 블레이가 연주한 칼라 블레이의 ‘Seven’(1993), 두 사람은 2년 만에 결별했지만 폴 블레이는 이후에도 꾸준히 칼라 블레이의 곡을 연주하며 존경을 표했다

폴 블레이의 격려와 도움으로 본격적으로 작곡을 연마한 칼라 블레이는, 자신의 곡을 조지 러셀, 아트 파머 등에게 소개하며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막상 폴 블레이와 일찌감치 헤어지고 1964년 트럼페터 마이클 맨틀러와 만나 자신의 첫 밴드인 재즈 컴포저스 오케스트라를 함께 결성하며 작곡가로서 한 차원 성숙한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1967년 부부가 되었다.

칼라 블레이(피아노), 마이클 맨틀러(트럼펫), 카린 크로그(보컬) ‘Lovely Footage Anyway’

 

레이블 설립

34세의 칼라 블레이 via ‘musicaficionado

칼라 블레이의 밴드는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아지트’를 표방하며 기존 프리재즈의 엘리트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클래식, 오페라, 교회음악, 록, 팝,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를 흡수한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당시 개리 버튼, 찰리 헤이든을 소개받아 작곡을 맡았던 그는1968년 남편으로부터 재즈 오페라 앨범 작곡 의뢰를 받아 3년에 걸쳐 악보 159페이지(파트별 악보 707페이지)에 달하는 대곡 <Escalator Over The Hill>을 완성한다. 극음악, 프리재즈, 록, 인도음악 등 여러 스타일이 결합한 웅장하고 역동적인 음악이었다.

스티브 겝하르트가 다큐멘터리 영상에 담았던 <Escalator Over The Hill> 실연 리허설 영상

이후 칼라 블레이는 구겐하임 펠로우쉽(Guggenheim Fellowship) 작곡 부문(1972), 프랑스 재즈디스크 오스카(1973)를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부부는 독립 레이블 WATT를 설립해 직접 앨범을 제작하고 유통해보기로 한다.

WATT에서 처음 발표한 음반 <Tropic Appetite>(1974) 수록곡 ‘What will be left between us and the moon’, 제목의 의미처럼 이국적인 사운드와 자유분방한 진행이 돋보인다

 

계속된 도전

칼라 블레이 via ‘BBC

레이블을 설립한 이상 칼라 블레이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칼라 블레이 빅 밴드(Carla Bley Big Band)를 결성해 록과 현대 재즈를 결합한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고, 여전히 대편성 밴드로 풍성함과 아기자기함을 고루 갖춘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칼라 블레이 ‘Musique Mecanique I’ <Musique Mecanique>(1979) 수록곡, MIDI가 등장하기 전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상을 상상으로 펼쳐낸 진보적인 음악이었다. 이 곡은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한 프랑스 영화 <데를리 런>(1983)에 고스란히 쓰였다
<Social Studies>(1981)에 수록된 ‘Reactionary Tango’는 칼라 블레이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탱고 리듬 위로 악기들의 창의적인 솔로 파트가 연이어진다

1985년부터는 1960년부터 알고 지냈던 오랜 음악적 동료 스티브 스왈로우와 본격적인 공동 작업을 펼쳤다. 공동 리더작을 연달아 발표했고, 1986년에는 딸이자 역시 뮤지션인 카렌 맨틀러와 스티브 스왈로우의 앨범만을 위한 방계 레이블 XtraWATT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칼랍 블레이는 소편성 연주에 집중했는데, 이는 레이블의 재정 악화로 빅밴드 활동이 힘들어졌던 탓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때 발표한 <Sextet>(1986)은 그의 가장 인기있는 앨범이 된다.

<Sextet>에 수록된 칼라 블레이의 최고 히트곡 ‘Lawns’. 3개의 코드만으로 작곡했지만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트리오 활동

칼라 블레이 트리오. 왼쪽부터 스티브 스왈로우, 앤디 셰퍼드, 칼라 블레이 via ‘pastdaily
칼라 블레이 트리오 최근 모습 via ‘starticket

1991년 마이클 맨틀러와 이혼하고 스티브 스왈로우와 새 관계를 시작한 칼라 블레이는, <Big Band Theory>(1993)로 그래미 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1996년에는 재즈를 중세 교회 음악과 접목한 <Carla Bley Big Band Goes To Church>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하는 등 명성을 재확인했다.

한편 1995년에는 스티브 스왈로우, 앤디 셰퍼드(색소폰)와 트리오를 편성해 유럽 순회공연을 펼쳤는데, 세 사람의 인연은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어져 2002년과 작년에 우리나라를 찾기도 했다.

칼라 블레이 트리오 ‘Ups and Downs’(1957) 1992년 영국 브레콘 라이브 영상
칼라 블레이 트리오 ‘Andando El Tiempo’(2016) 2015년 프랑스 파리 라이브 영상

그의 협업 음반은 100여 개, 오케스트라와 밴드 리더로 작업한 음반은 31개에 이른다. 비평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칼라 블레이가 재즈에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고 리더로서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던 비결로, 그가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사실을 꼽는다.

실제로 칼라 블레이는 특별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를 즐겼다. 빅 밴드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편성 인원이나 사운드의 규모에 집착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음악을 꼭 재즈로 분류할 필요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늘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부했고 무엇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즐겼다.

2018년 82세의 칼라 블레이 via ‘TheNewYorker

 

메인 이미지 출처 – Conceti A 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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