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애를 한다. 사랑과 연애과 곧 동일하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랑하는 여성들은 곧 연애를 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회가 딸들에게 자유연애를 ‘허락’한 지 채 50년이 되지 않았고, 여전히 연애하는 여성의 생각과 성생활을 감추고 싶어 한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구원받은 ‘신데렐라’가 되는 판타지성이 역력한 연애 서사 말고,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모텔을 나와서 푸석한 얼굴을 마주하며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는 모습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연애의 한 모습이다.

이 글에서는 연애와 성생활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낸 세 가지 웹툰을 소개한다. 로맨스가 이렇게 한 줌도 없어도 되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보다 보면 웹툰 속 여성들의 모습에 무릎을 탁 치며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조아해 <가고싶다>

조아해 작가의 웹툰 <가고싶다>는 연애와 더불어 ‘섹스하는 20대 여성’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그려낸다. 이 웹툰에 한가지 의의를 더한다면, 섹스를 키워드로 한 만화들이 ‘19금’ 딱지를 달고 남성의 성적 판타지만을 충족시키는 경향이 짙은 상황이지만, 이 웹툰은 20대 여성의 성생활이 ‘일상툰’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는 것이다.

<가고싶다> 메인 이미지

웹툰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아’는 남자친구와의 성생활에 전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관계 도중, 조아가 하는 일은 아픔을 참고 거짓된 신음과 표정을 꾸며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혹시 이 남자가 모텔비 뽕을 뽑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휘말린다. 연애를 하는 조아는 남자친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커플들과 함께 방이 나올 때까지 호텔 로비에서 대기하며 현타를 느껴야 하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상황 속에 던져진다. 20대 조아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남자들을 만나지만, 사랑과 연애, 섹스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괴리감에 괴로워한다. 멀리서 나를 보러 와주었기에, 모텔비를 내주었기에, 맛있고 비싼 밥을 사주었기에, 라는 여러 이유를 들어 그는 모텔에 가야 하는 이유를 더듬더듬 찾는다. 물론 그중에는 ‘사랑해서’라는 이유도 크게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분명 있기에 조아는 갈등하며 슬퍼하고, 때론 분노한다.

<가고싶다> 1화 중에서

<가고싶다>는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툰’으로 불리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 웹툰을 그린 조아해 작가는, 설마 이 만화가 ‘공감툰’으로 불릴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드러냈고, 수많은 여성들이 관계 후에 뒤돌아 누워 홀로 욕구를 풀어낸다는 사실을 더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섹스하는 여성은 관음의 대상이 아니다. 비난의 대상도 규탄의 대상도 아니다. 연애하는 여성은 섹스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하는 여성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생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웹툰 <가고싶다>는 19금 일상툰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레진코믹스 <가고싶다> 페이지 

 

 

미깡 <하면 좋습니까?>

<술꾼도시처녀들>로 큰 인기를 끌었던 웹툰 작가 ‘미깡’의 최근작, <하면 좋습니까?>는 비혼, 기혼, 이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 20~30대 여성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 ‘결혼’에 대한 이슈를 여러 상황과 캐릭터를 통해 다양하게 그려낸다.

<하면 좋습니까?> 메인 페이지

이 웹툰은 무작정 기혼자를 불행한 사람으로 그리거나, 비혼자를 행복한 사람으로 미화하여 그리지 않는다. 대신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통렬하게 고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여성이 결혼을 고민하는 것으로 웹툰의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판타지와 리얼리티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현실 여성, 커플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면 좋습니까?> 25화 ‘괜찮은 거야?’ 중에서, 이미지 출처 – 미깡 작가 인스타그램 

결혼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벤트’가 아닌, 나의 삶을 송두리째 운명의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이라는, 그 무게감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특히 이 웹툰의 댓글창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데, 이를 읽어보는 것 또한 다른 사람들이 결혼, 기혼,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된다.

다음 웹툰 <하면 좋습니까?> 페이지 

 

 

송아람 <자꾸 생각나>

‘장미래’는 만화가를 꿈꾸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는 화려하게 데뷔하고 싶고, 화려한 연애와 멋진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두고 이미 데뷔한 만화가 ‘도일’에게 호감을 느낀다. 장미래는 자신의 상황이 로맨틱해 보이길, 그리고 특별하길 꿈꾸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자꾸 생각나> 표지

장미래에게 도일은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형이자, 구질구질하고 자극 없는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게 해 줄 돌파구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미부여와는 상관없이, 도일의 연애는 영 퍽퍽하고 단조롭기만 하다. 각자 연인이 있었기에, 이 둘의 눈을 피해 ‘스릴 있게’ 만나는 것이 자극제가 되었던 것일까. 전 연인들이 정리됨과 동시에, 미래와 도일의 관계는 갑자기 무미건조해진다. <자꾸 생각나>는 연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특별한 순간과 그 특별함이 식어버림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미움들. 이 순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특별한 연애’를 하고 싶은 장미래의 시선을 통해 이를 더욱 통렬하게 담아낸다. 때로는 치졸하고 지질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처연한 연애. <자꾸 생각나>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송아람 작가는 첫 장편 그래픽 노블 <자꾸 생각나>를 발판삼아 고부간의 갈등을 그린 <두 여자 이야기>로 세계적인 만화축제인 ‘앙굴렘 만화축제’ 경쟁 본선에 오른 바 있다. 송아람 작가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여전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펜 끝에 담아낸다.

 

사랑과 연애, 섹스가 어긋나는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다. ‘사랑하는데’ 나는 왜 이런 기분을 느낄까,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이 웹툰을 보길 추천한다. 이 웹툰들은 모든 연애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은 당연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질문들은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닌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