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l for a Room Sculpture’(1978) 앞에 앉은 한나 윌키 HWCALA © Scharlatt VAGA, NY / ADAGP Paris via ‘awarewomenartists

19세기 후반까지 여성의 몸은 페미니스트조차 외면한 주제였다. 하지만 20세기 이르러 인간의 몸과 욕망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공론화되었고 여성의 육체 또한 자율성을 상실한 ‘대상’이 아닌 해방의 ‘주체’로 정의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한나 윌키(Hannah Wilke)는 이와 같은 흐름의 중심에 선 1세대 페미니스트 미술가다. 그는 여성의 주체적 시선과 정체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남성 중심 문화 아래 억압된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 아래 소개한 작품들은 신체 노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나 윌키와 그의 작품 'Ponder-r-rosa 4'(1975) in MoMa, via 'Timeline'

 

초기 작품

1940년 3월 7일 뉴욕에서 태어난 한나 윌키는 필라델피아의 타일러 예술 대학(Tyler School of Art)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이후 교직을 이수한 그는 맨해튼의 시각예술학교(the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조각 교수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나 윌키는 일찍부터 사람의 신체에 관심을 가졌다. 작품활동 초기인 1960년대 초, 그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가리지 않고 오브제로 삼았다. 그렇게 완성된 당시 작품들은 주로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학생과 젊은 청년들이 서구식민주의와 자본주의, 가부장제 문화 등 당대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든 ‘68혁명’을 기점으로, 사회에 페미니즘 의식 또한 고취되었고, 이와 같은 바람은 미술계와 한나 윌키에게도 이르렀다.

<무제>(1963-1966)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MoMa
<무제>(1960s)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MoMa

 

여성 성기

한나 윌키는 여성의 신체, 그중에서도 성기를 자기 작품 세계의 중요한 매체로 사용했다. 도자기, 금속, 천, 라텍스, 심지어 씹던 껌 등 다양한 재료로 여성 생식기의 형태를 만들고 전시했다. 이는 관습적으로 터부시되고 은폐되었던 여성의 성기가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임을 인지하는 행위이자 ‘여성성(femininity)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전까지의 연구나 예술작품 속에서 여성성이 남근이 부재한 결핍된 속성이라는 인식에 대항하고자 여성성을 남성성과 대등한 관계로 설정한 것이기도 했다.

<Gum>(1976) 중에서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Corcoran Art Gallery 소장 via ‘usbdate
‘Sweet Sixteen’(1977)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dreamideramachine

 

추잉검(chewing gum)

한나 윌키는 <S.O.S. 스타 만들기 오브제 시리즈, 성인용 씹기 게임(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An Adult Game of Mastication)>(1974-1975)과 <S.O.S. 스타 만들기 오브제 시리즈 #1(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1)>(1975)에서 특별히 추잉검을 재료로 선택했다.

이는 불분명한 형태와 쉽게 변질하는 속성, 음식물인 동시에 토사물이기도 한 모호한 성격 때문에 철학적으로 낮은 지위를 부여했던 추잉검에 대한 예술계의 인식을 전복하는 행위였다. 추잉검이 입의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존재하는 모든 구멍을 남근의 결핍으로 간주함에 따라 여성 성기의 상징이자 대상화의 도구였던 입을 스스로 운동성을 지닌 주체로 인식한 것이다.

‘Chewing Gum Sculpture’(1970-1979)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artnet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1>(1975)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Raeburn’s Ramblings

 

<S.O.S. 스타 만들기 오브제 시리즈>

“…전쟁 동안 유대인인 내가 만약 미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낙인찍히고 매장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한나 윌키, 출처 - 페기 팰런 <미술과 페미니즘>(2001))

<S.O.S. 스타 만들기 오브제 시리즈>의 ‘스타 만들기(starification)’는 한나 윌키가 만든 신조어다. 작품들 속에서 그는 자신을 마치 유명한 스타 혹은 남성잡지의 여성 모델처럼 연출한다. 동시에 마치 상처가 난 것처럼 성기 조각들을 붙인다. 이는 남성 시선에 의해 신체가 전유 되는 여성의 내적 상처를 구현한 것이며, 상처(scar)를 통해 스타(star)가 되고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현실을 담아낸 것이었다.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중에서(1974)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christies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중에서(1974)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Ronald Feldman Gallery

 

늙고 병드는 몸

1970년대 후반 이후, 한나 윌키의 작품 세계는 더 넓어진다. 그는 어머니의 유방암 투병을 함께 하며 작품을 남겼고, 뒤이어 자신의 림프종 투병 과정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앞서 여성의 몸과 여성성을 탐구해온 그에게는, 여성의 노화와 죽음 역시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오브제였다.

한나 윌키는 심지어 암 투병의 흔적이 남은 자기 몸을 비너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운명의 긍정이 고루 담겨있다. 작품 속에서 한나 윌키는 늙고 병들었지만, 여전히 미의 주체가 되고자 욕망하는 존재며, 그의 육체는 젊고 건강한 몸이 아름답다는 관습화된 미의 기준을 타파하고 삶의 순환을 담아내는 육체가 된다.

‘Portrait of the Artist with her Mother, selma Butter’(1978)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kathhoward
‘Intra Venus No.1’(1992)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Ronald Feldman Gallery
‘Intra-Venus No. 4’(1992-1993) Copyright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Timeline
‘Intra Venus No.6’(1992-1993)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artsy

 

한나 윌키는 아직 페미니즘 미술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여성으로서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사회 속의 여성이라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작가다. 당시 그의 신체 노출은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 혹은 나르시시즘이나 노출증으로 폄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윌키는 그러한 시선을 오히려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남성 중심 문화에서 늘 타자로 정의되어 온 여성의 위치를 재고하고 기존 미술사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언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What Does this Represent(pink)’(1978) Copyright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Timeline
‘Daughters’(1975-82) Copyright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via ‘Ronald Feldman Gallery

 

메인 이미지 한나 윌키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중에서(1974) © Marsie, Emanuelle, Damon and Andrew Scharlatt, Hannah Wilke Collection & Archive, Los Angeles.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ACs, London, 출처 – Ronald Feldman Gallery

참고자료
이문정 <여성 미술에 나타난 애브젝트abject의 ‘육체적 징후’somatic symptom와 예술적 승화 :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이론을 중심으로>(2012)
이수빈 <한나 윌키(Hannah Wilke)의 신체미술 : 여성 주체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나르시시즘>(2007)
차민정 <조르주 바타이유의 에로티시즘과 여성 이미지의 변화 : 살바도르 달리, 한스 벨머, 신디 셔먼, 한나 윌키를 중심으로>(2016)

 

한나 윌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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