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최는 1980년대 소련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스타 뮤지션. 한국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인 레닌그라드에서 자랐고 록 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활동했다. 1981년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데뷔해 1990년, 28세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며 수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영화 <레토>는 그가 음악 인생을 시작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1986년 빅토르 최

 

뜨겁고 아름다웠던 여름, <레토>

<레토> 스틸컷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레토>는 71회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사운드트랙 상을 거머쥐었으며, 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픈시네마 섹션에서도 상영된 작품으로, 지난 1월 3일 정식 개봉했다. ‘레토(leto)’는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하는 단어.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배경은 1981년 레닌그라드다. 빅토르 최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기 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음악 인생 초창기를 다룬다. 그가 ‘가린과 쌍곡선’이란 밴드로 활동하다 어떻게 ‘키노’라는 이름을 정하고 밴드를 결성했는지, 밴드의 탄생 비하인드도 확인할 수 있다.

<레토> 스틸컷

영화의 시작은 록 밴드 주파크의 공연 현장. 초반부터 영화는 변화의 바람이 불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당시 무명의 뮤지션이던 ‘빅토르’(유태오)는 이미 스타 자리에 오른 주파크의 리더 ‘마이크 나우멘코’(로만 빌릭)와 그의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를 비롯한 동료들을 만나고 빅토르의 재능을 알아본 마이크는 그가 음악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들이 첫 만남을 갖는 해변은 청춘의 자유와 낭만이 아름답게 구현된 장면. 영화는 ‘뮤직 드라마’라는 장르답게 서사에 충실하기보다는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키노와 주파크의 음악 외에도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나 이기 팝(Iggy Pop)의 ‘Passenger’,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 등 여러 명곡들이 흐른다. 흑백 영상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발랄한 컬러 콜라주가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데, 이런 신선한 스타일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저항을 노래한 젊은 뮤지션의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레토>에서 빅토르 최 역을 맡은 배우 유태오

약 2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 역에 캐스팅된 배우 유태오는 기자간담회에서 “잘 알려진 빅토르 최의 이야기보다는 젊은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위해 달리는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레토>는 전설적 스타를 무게감 있게 그리기보다는 암울한 시대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자유와 저항을 노래한 청춘의 모습에 집중했다.

 

<레토> 이후의 빅토르 최

<레토> 스틸컷

영화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빅토르 최의 이후 음악 인생은 9년간 계속됐다. 록 음악이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졌으므로, 밴드 결성 초창기에 그는 초기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알렉세이 르빈, 드러머 올렉 발린스키와 함께 지하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보컬과 리드기타를 맡은 빅토르 최는 곡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으며, 1982년 키노의 첫 번째 앨범 <45>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소련 당국으로부터 반체제 작품으로 지목돼 공연 금지를 당했지만 파급력은 상당했다. 어두웠던 시대 상황에서 키노의 노래에 담긴 반전 메시지가 큰 공감을 이끈 것. 키노는 1984년 두 번째 앨범 <캄차트카의 지배인>을 발매해 인기를 이어가며 꾸준한 작업을 했고, 기타리스트 유리 카스파랸, 베이시스트 이고리 티호미로프, 드러머 게오르기 구리야노프로 멤버도 교체됐다.

KINO ‘Blood Type’ 라이브 클립

키노의 가장 성공적인 앨범은 1988년 발표한 다섯 번째 앨범 <혈액형>이다. 동명의 타이틀곡은 ‘내 소매 위에는 혈액형 / 내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줘’라는 가사로 당시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다. 이 앨범을 통해 키노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빅토르 최는 같은 해에 개봉한 카자흐스탄 영화 <이글라>의 주연을 맡아 연기도 선보였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있는 추모벽

그가 라트비아의 투쿰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 1년 후인 1990년. 국내외에서 활발한 공연을 펼치던 그의 죽음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키노는 유작 앨범을 발표한 뒤 곧바로 해체했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최의 추모벽이 마련돼 있는데 29년이 흐른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찾는 장소. 빅토르 최의 모습과 그에 관한 기록이 남겨져 있고, 그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팬들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10명의 ‘일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에세이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와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