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Tansaekhwa)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이미 주목받았다. 단색화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나 도날드 저드, 아그네스 마틴 등 미니멀리스트의 작품과는 다르다. 작가들은 서양 추상표현주의의 캔버스와 오일, 이젤을 수용하되, 수묵화, 서예, 마대, 한지, 고령토 등 한국적인 매체와 테크닉, 그리고 한국적인 정신을 유지하였다. 오늘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단색화 작가 이우환, 김환기 등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화가가 있다. 스스로 서정성을 지닌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화가 우병윤을 소개한다.

화가 우병윤

우병윤은 서울을 기반으로 8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단색화 작가다. 그는 과거 일에 치여 스스로를 잊어가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자가치유적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작업세계를 가지기까지 초기 2년 정도 철학과 드로잉, 예술사를 독학하였으며, 그만의 방식으로 미술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차분한 빛깔이 분위기를 한결 가라앉히고, 캔버스 위로 재료의 촉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의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볼 수 있는 글 역시 그림과 맥락을 함께 하는데, 이는 작품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무제ㅣ Mix media on paper l 2017
봄의 소리ㅣ Mix media on paper l 2018
빛ㅣ Mix media on paper l 2018
빛의 시 l Mix media on canvas l 2017

그는 스스로 자제하는 표현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단색화와 서구의 미니멀 아트의 차이는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로, 이성과 합리주의적인 사고가 아닌, 무위자연하고 수기치인한 여백의 정신을 빛깔과 촉감으로 옮겨내는 것이라 말한다. 연작으로 해나가고 있는 합치(Signal Nature)는 그림을 단순히 결과로서의 그림으로만 보지 않고 정서와 정신을 담아내고 닦아 나가는 과정을 위한 도구이자, 캔버스의 화면이 인위(내면)와 자연(주변)을 조응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작업이다. 자연(주변)이 보내는 모든 감각과 의미, 계속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정신을 비워 변환된 신호(영감)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또 ‘내’가 자연에 보내고 싶은 반성적 마음(내면)을 계속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언어가 아닌 것으로 변환하여 자연에게 보내는 소통의 도식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이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속에서 ‘생겨나고 돌아간다’라는 동양의 세계관과 ‘하늘과 땅이 더불어 조화한다’라는 한국 고유의 정서처럼 모든 문명율과 자연율이 자연스럽게 조화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것이 잃어버린 과거와 미래를 되찾고 꺼져 가는 생명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정신이라 믿는다. 그는 자연스러운 그림이 될 때, 비로소 그림이 생명력이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Signal nature(합치) #18-10-06 l mixed media l 72.7x60.6(cm)
Signal nature(합치) #18-10-07 l mixed media l 100.0x80.3(cm)
Signal nature(합치) #19-09-02-Red l mixed media on wood l 192.2x130.3(cm)
Signal nature (합치) #18_9_03-1_blue l mixed media l 90.9x72.7(cm)
Signal nature(합치) #19-08-01-Green
Signal nature(합치) #18-10-05-yellow l mixed media on wood l 116.8x91.0(cm)

그가 속해 있는 무씨(MUSEE)라는 공간은 없을 무(無)에 보다(SEE)라는 의미로, 없는 것을 보려고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씨는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의 친구가 만들고 처음부터 함께 해나가는 공간으로, 회화, 그래픽, 영상, 전시 등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 창작 활동을 시도한다. 무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 6년이 되었으며, 본질적인 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고 말하기 위해 여전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져 가고 있는 유기적 생명체이기도 하다. 이번에 서교동에 새롭게 오픈하는 하우스 무씨에서는 빈티지 서적과 의류를 소개하고,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팝업, 소규모 전시를 진행하는 등 더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고요 l 72.7x60.6(cm) l mixed media l 2018
고요 l 72.7x60.6(cm) l mixed media l 2018
심상ㅣ Mix media on paper l 2018
유기적 관계 ㅣ pen on paper l 2017

 

현재 오픈 예정인 하우스 무씨(MUSEE)

 

앞으로 그는 단색화의 정신이 개개인의 마음에 조금 더 스며들고, 일상에 녹아들게 하는 것에 일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선대가 만들어 놓은 단색화의 결을 잇고, 우리 고유의 결과 정신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꼭 홈페이지를 방문해보기를 바란다. 작품과 함께 쓰인 글을 읽었을 때, 비로소 그의 작업의 과정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진 ©우병윤, 출처- 우병윤 작가 홈페이지

 

우병윤 작가 인스타그램
하우스 무씨 인스타그램

 

Writer

낭만주의적 관찰자. 하나의 위대한 걸작보다는 정성이 담긴 사소한 것들의 힘을 믿는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으며, 종종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물건을 만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간, 예술로 삶을 가득 채우고자 한다.
박재성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