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르츠>

2018년 가을 세상을 떠난 키키 키린의 나레이션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이 영화는 65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일상을 찬찬히 훑는다. 젊은 시절부터 쭉 지켜온 주택과 건물에 대한 할아버지의 신념, 남편에 대한 할머니의 애정 등이 장면 곳곳에 녹아 있어, 이를 보는 것만으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일본에서 1년간 장기 상영되며 흥행까지 성공한 이 영화가 한국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90세 할아버지와 87세 할머니는 집 앞 마당에 꽤 큰 텃밭을 가꾸느라 거의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한다. 70여가지 작물을 키우면서 작물 앞에는 각각 팻말을 붙여 놓았는데, ‘작약, 미인이려나?’, ‘밀감, 마말레이드가 될거야’ 등 제목 하나하나가 모두 유머 넘친다. 또한 부부는 새들을 위한 수조도 한 켠에 마련하여 목마른 새들이 물을 마시거나 더위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게 배려한다.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을 꿈꾸며 자신의 주변부터 하나씩 바꾸어 갔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주민들과 힘을 합쳐 황량한 땅에 나무를 심고 자연을 가꿨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환자들과 의료진 및 직원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는 신경정신병원 건물을 디자인했던 일이다.

텃밭에서 수확한 후 기뻐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남편이 하는 일을 반대해 본 적이 없고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을 기꺼이 즐긴다. 평생 가장 큰 기쁨이 남편 아침 차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앉아서 받아먹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서 일하며 할머니가 하기 힘든 일을 솔선수범해서 한다. 또한 할머니에게도 예의를 차려서 깍듯이 대한다. 작금의 시각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해로한 부부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서로에게 충실한 삶을 보면서 그저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바웃 슈미트>

2003년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잭 니콜슨 주연의 <어바웃 슈미트>는 정통 힐링 영화이기보다 코믹적 요소를 가미해 노년, 퇴직, 배우자의 죽음, 소외감 등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린 서글픈 영화다. 영화는 보험회사 중역인 워렌이 퇴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퇴직 후의 무료하고 허전한 삶에 괴로워하던 그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다가 우연히 탄자니아에 사는 소년의 양부가 되고 매달 후원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곧 아내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딸은 워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 엄마와는 가까웠지만 아버지와는 대화가 거의 없던 딸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결혼을 반대하며 간섭하려 드는 아버지를 단호히 거부한다. 장례식 후 워렌은 딸의 결혼을 말리기 위해 딸이 사는 곳으로 가서 반대해보려 하지만 결국 허락하게 되고, 결혼식에서 돌아온 후 탄자니아 소년의 편지를 받은 워렌이 울면서 영화는 끝난다.

Via IMDB
Via 레터박스

워렌의 은퇴 후의 삶은 직업인, 남편, 아버지로서 살아오던 그의 이전 삶을 모두 앗아간 채 그를 그저 무료한 늙은이로 전락시킨다. 사회가 고령화 되면서 떠오른 노인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현재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바라보는 세대는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워낙 치열하고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에 은퇴 후를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멀거나 가까운 미래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자기만의 회의와 의문이 일찌감치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은퇴한 노인의 외롭고 허무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보다 우리 모두의 실존에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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