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문학과 출판 내에서 ‘퀴어 서사’가 예외였던 적은 없었다. 다만 2018년에는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하고 경쾌하게 ‘퀴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퀴어 서사는 다채롭고 풍부했으며, 이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더욱 빛났다. 이 큰 흐름을 ‘퀴어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양한 시도로 진행된 한국 문학과 출판 시장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출판사 ‘큐큐’

큐큐클래식1, 2 <레딩 감옥의 노래>, <텔레니>, 출처 - 큐큐 인스타그램

‘큐큐’는 출판사 ‘읻다’의 임프린트 브랜드로 시작한 퀴어 전문 출판사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행보라 그 귀추가 주목된다. 큐큐가 처음 선보인 ‘국내 최초 퀴어 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는 전 세계 LGBT 시인 서른아홉 명의 사랑 시 75편을 번역해 실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선택하고 편집하는 과정에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을 써낸 황인찬 시인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큐큐>는 동성애 스캔들로 파란을 일으켰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시집 <레딩 감옥의 노래>와 소설 <텔레니>를 차례대로 출간하며 독보적이고 참신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큐큐퀴어단편선1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출처 - 큐큐 인스타그램

그리고 2018년 여름, 국내 퀴어 소설집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가 출간됐다. 소설책 표지의 점자는 책 제목과 작품명, 작가명을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눈으로 책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이 손가락을 통해 이야기에 닿을 수 있었던 것처럼 퀴어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바란다’는 큐큐의 취지에 꼭 들어맞는 표지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등단한 국내 작가들의 퀴어문학 선집으로는 첫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진들 역시 화려하다.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이 이 책에 참여한 6명의 젊은 작가다. 그들은 단순히 타 출판사에서 볼 수 있는 서사 형식이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써냈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나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같은 고전 작품에서 보여준 당대 소수자들의 이야기나 퀴어 서사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작가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변주해 써낸 것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사랑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실체적이고 아름답다.

 

퀴어 매거진 <뒤로>

<뒤로> 세 번째 이슈 ‘반려동물’, 출처 - 뒤로 인스타그램

게이 매거진 <뒤로> 는 감각적이고 신선하다. 첫 번째 이슈는 ‘군대’였다. 최근 ‘군대 내 동성애 색출 사건’ 등에서 보였던 군대 안의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이야기하려는 듯 보인다. 그들은 시대 흐름 상 중대한 주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군대 내에서 있었던 로맨틱한 퀴어 서사에도 귀를 기울이는 등 거대 집단이 묵살한 개개인의 이야기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이야기한다.

<뒤로> 두 번째 이슈 ‘혼인’, 출처 - 뒤로 인스타그램

<뒤로>가 다루는 이야기의 핵심은 분명 확고하다. 그들은 진중한 주제들을 거대한 담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서사에 힘을 실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맷은 인터뷰, 화보, 소설, 대담, 칼럼, 에세이, 만화 및 동화 등으로 하나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다채롭다.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출처 - 펢 페이스북

퀴어페미니스트 매거진 <펢>은 ‘언니네트워크’가 만들고 있다. 현재 4호(통권 5호)까지 발행되었다. 언니네트워크는 단순히 페미니즘의 주제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의 경계를 확장하거나, 특이하고 새로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위해 ‘퀴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펢>은 영화배우 김혜수나 개그맨 김숙, 가수 엠버 등 대중문화 속 인물들을 ‘퀴어’와 ‘페미니즘’에 맞게 집중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펢>이 인터뷰한 사회적‧정치적 인물들이 말하는 ‘퀴어페미니즘’은 피상적이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다. 언니네트워크의 시도는 남‧여를 축으로 만들어지는 억압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장애, 계급 등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서점 <햇빛서점>

햇빛서점, 출처 - 햇빛서점 트위터 

<햇빛서점>은 퀴어 전문 서점이다. 이태원 우사단로길에 있었지만, 현재는 이사를 준비로 잠시 휴업 중이다(2018년 12월 기준). <햇빛서점>에는 국내에서 나온 책들보다 해외에서 가져온 책들이 많다. 국내 퀴어 도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사 아들 게이>, 출처 - 서점 오혜 인스타그램
<남창 일기>, 출처 - 서점 오혜 인스타그램

그 때문일까, <햇빛서점>은 직접 책을 출간했다. 그것이 햇빛 총서1 <목사 아들 게이>와 햇빛 총서 2 <남창 일기>다. 이들은 과감하고 또 아주 민감한 퀴어 서사를 다룬다. 그 속에서 짧지만 아주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햇빛서점>은 이후 커뮤니티 공간 FRECKLES로 이전이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단행본들

퀴어 문학은 2018년 주목받은 페미니즘 서사 만큼이나 ‘폭발하다시피 증가했다(이 문장은 문학동네 신인상 평론 당선작 「2018, 퀴어전사 ―前史·戰史·戰士」에서 발췌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 평론 당선작인 「2018, 퀴어전사 ―前史·戰史·戰士」에 따르면, 과거 단순히 문학 내 소재 거리 정도였던 퀴어 서사가 이제는 정면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작품 몇 편을 소개한다.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출처 - 박상영 인스타그램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단연 빛나는 작품은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였다. 곧이어 그의 단편들을 묶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평범하다. 어리석은 짓만 벌이고 형편없어 보인다. 모두 ‘사랑’ 앞에서 이렇다. 그러나 박상영의 매력은 그의 이야기가 자기 연민의 측면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의 행보는 2018년 문학계의 큰 수확일 것이다.

우리는 그 많은 추잡한 일들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긴 채 다른 것들을 욕망하며 사는 우리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일반적이고도 정상적인 커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 「부산국제영화제」 중에서

김현 <입술을 열면>, 출처 - 창비 인스타그램

김현 시인은 첫 시집 <글로리 홀>(2014)에서 이미 하위주체와 대중문화, 퀴어와 SF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2018)에서는 악과 위악이 연속되는 사회현실을 그만의 방식으로 기록해냈다. 시집에서는 그런 사회현실을 이겨내고 저항하기 위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엿보인다. 그가 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퀴어 서사뿐만은 아니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오가며 마주한 소수자들, 약자들의 이야기로 시집은 가득 차 있다.

시집 가장 첫 시의 제목은 「불온서적」이다. 그는 어떤 것에도 꺾이지 않고 입술을 열고 노래하는 한 권의 ‘불온서적’을 만들어냈다.



대학시절

청년노동자

우리들의 하느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 「불온서적」

김혜진 <딸에 대하여>, 출처 - 민음사 인스타그램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에 대한 서사다. 엄마와 딸은 경제적 이유로 동거하게 되지만, 이 동거에는 딸의 동성 연인이 포함되어 있다. 퀴어 서사의 현실적인 측면을 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파고들어 마주친 작품임이 틀림없다. 또한 그는 성소수자, 무연고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사유와 사회 메커니즘에 대한 문제를 통찰력 있게 풀어냈다. 읽고 나면 묵직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 p.107, <딸에 대하여> 중에서

2018년 문학과 출판의 흐름은 보다 ‘소수자 중심’으로 흘렀다. 퀴어 서사를 소재 거리로만 여겼다면 ‘대상화’의 측면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론된 현재의 젊은 작가들과 적재적소에서 쏟아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주 투명하고 내밀한 그들만의 목소리다.

혹자는 퀴어 서사가 ‘사랑’에만 해당한다면 한계에 빠질지 모른다고 깊은 우려를 표할지 모른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그저 진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고, 이것은 한계에 빠지지 않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어떤 한계에도 묶이지 않는 ‘존재성’ 같은 것 말이다.

 

 

메인 이미지 출처 ‘큐큐’ 인스타그램 

 

Writer

나아가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