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또 뭘 해 먹지….’라고 생각하며 오늘의 식단을 고민해본다. 한국인들에게 한식은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지만,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된 요즘 시대에 삼시 세끼 한식만 먹으라고 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힘든 일이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음식들과 그와 관련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엮어낸 음식 관련 만화들을 읽으며, 오늘 저녁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야마자키 마리 <식사는 하셨어요?>

야마자키 마리 <식사는 하셨어요?> 중에서

만화가 야마자키 마리의 인생은 흥미로운 사건들로 가득한 꾸러미 같다. 그는 열네 살에 혼자 떠난 유럽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도예가이자 친절한 할아버지였던 마르코와의 만남으로 생긴 인연 덕분에, 고등학교부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마르코의 손자이자 이탈리아 고고학자 베피노와의 결혼으로 그 뒤에도 중동,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30여 개국 다양한 나라를 유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자신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소재로 <맹렬! 이탈리아 가족>, <세상의 끝에서도 만화가> 등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코믹하게 풀어낸 에세이 만화들을 다수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식사는 하셨어요?>는 야마자키 마리가 자신의 다양한 경험담들을 만화로 이야기하면서, 그와 관련된 요리와 레시피를 함께 소개해주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실용적인 면이 돋보이는 만화다. 유학 생활을 하며 생활고에 쪼들리던 당시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값싸면서도 배부를 만한 야채들을 잔뜩 사서 만든 따끈한 이탈리아식 야채 스프, 미네스트로네에 관한 에피소드라거나 나폴리식 피자와 시칠리아식 피자의 도우 두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친구들 사이의 다툼, 올리브 오일이나 누텔라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 같은 현지에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야마모토 아리 <역시 빵이 좋아!>

야마모토 아리 <역시 빵이 좋아!> 중에서

‘자칭 타칭 빵 마니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만화가 야마모토 아리는 <역시 빵이 좋아!> 및 후속작으로 발표한 <북유럽 빵빠라빵 여행>을 통해 자신의 빵에 대한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의 만화를 읽다 보면 ‘세상에 빵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어?’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순히 빵 종류만을 나열하지 않고, 실제로 도쿄에 있는 빵집들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개발해 팔고 있는 메밀가루가 든 참깨 햄버거, 버터와 간장을 바른 옥수수가 들어간 바게트, 포크커틀릿 카레 빵 등 일본식 풍미가 자연스레 배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을 소개한다. 이 책에 나오는 도쿄 빵집들을 직접 돌아다니는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또한 ‘빵이 좋아 독일에 가다’라는 특별편을 함께 수록해, 빵의 종류가 세상에서 제일 많다는 독일에서 맛본 브레첼과 흰 소시지와 맥주를 곁들여 먹은 이야기 및 독일인들이 주식으로 즐겨 먹는 검은 호밀빵과 달콤한 디저트로 즐길 만한 코티지 치즈를 넣은 데니시 소개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빵의 끝없는 매력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다.

 

시베리카코 <맛있는 러시아>

시베리카코 <맛있는 러시아> 중에서

길 안내를 해준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나게 된 러시아인 P씨와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된 만화 속 주인공이자 작가인 리카코. 그는 1년 만이라도 러시아에서 살아보지 않겠냐는 남편의 권유로 러시아어를 공부할 겸 남편의 고향을 경험해 볼 겸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년간 생활하게 된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고, 짧은 일조 시간 때문에 유달리 더 혹독하게 느껴지는 러시아의 추운 날씨 속에서, 러시아 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서서히 이국의 땅에 적응하게 된다.

서양식 빨간 무라고도 불리는 비트를 가득 썰어 넣고, 양배추와 소고기 등 다양한 야채와 고기를 넣고 푹 끓인 새빨간 러시아식 스프 ‘보르쉬’, 일본에도 있고 러시아에도 있는 양배추롤 ‘골룹지’, 샤워크림만큼 산미가 강하지 않으면서 생크림처럼 적당히 부드러워 디저트나 스프 등 다양한 곳에 활용 가능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크림 ‘스메타나’,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으로 쇠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들을 숯불로 고루 익혀 먹는 ‘샤슬릭’ 등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러시아의 다양한 음식들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러시아 현지가 아니라면 구하기 힘든 재료들을 다른 재료로 대체한다거나 하는 식의 실용적이고 꼼꼼한 레시피들이 가득한 흥미로운 책이다. 작가 시베리카코의 데뷔작이다.

 

히데 요시코 <수다는 아침 식사 후에 1,2>

히데 요시코 <수다는 아침 식사 후에 1> 중에서

수많은 창작자들이 그러하듯, 만화가 히데 요시코의 생활 역시도 전형적인 올빼미 스타일에 맞춰져 있었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아침도 점심도 아닌 이상한 시간에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때우기의 연속. 이런 아침 식사는 더 이상 싫다고 편집자에게 불평하다 보니, 정신을 차린 순간, 어느새 은둔형 외톨이 만화가가 맛있는 아침을 먹으러 여기저기 쏘다니는 옴니버스 형식의 에세이 만화 기획안이 탄생해버렸다. 그것도 무려 사비를 들여(!) 돌아다녀야만 하는 극악한 조건까지 얹혀진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데 요시코의 만화는 무척이나 귀엽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가득하며,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음식 평가들 역시도 자연스럽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제1화부터 무작정 파리로 떠나게 된 그는 프렌치토스트와 마카롱이 유명한 프랑스의 ‘라뒤레’에서 익스펜시브한 모닝 세트를 먹고 감탄하고, 루브르미술관에 있는 ‘카페 마를리’에서도 호화로운 아침 식사를 즐긴다. 그밖에 교토의 고급 요릿집 ‘효테이’에서 먹은 어른스러운 죽 세트, 오키나와의 첫 팬케이크 전문점 ‘야케부스’에서 먹은 달콤한 팬케이크와 짭짤한 고기류의 조화가 멋진 미트 러버 팬케이크 등 다양한 지역의 다채로운 요리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사비로 돌아다니다 보니 독자들의 응원과 동정의 목소리를 한 번에 받게 된 그는, 1, 2권의 단행본 마지막 편에서 각각 하와이와 뉴욕을 편집부의 지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다양한 미국 음식을 즐기는 에피소드들 역시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진 유유 eueu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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