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거나 넓게, 비틀거나 뒤집어서 보는 사람들은 올해도 무언가 만들어냈다. 그것들이 쏟아진 밭에서도 두드러지는 건 당연히 있다. 인디포스트 에디터의 취향으로 짚은 2018의 인상적인 무엇들. 먼저 영화다.

 

올해의 로맨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획 단계부터 많은 사람의 기대와 호기심을 받았던 이 영화는 공개 후 극장과 각종 영화제에서 승승장구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뒀다. 사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에 의외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실감나는 크리처 연출과 그의 페르소나 더그 존스의 독보적인 크리처 연기,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시너지를 발휘해 세상에 둘도 없는 따스한 로맨스로 완성되었다. 제목이 뜻하는 ‘물의 모양’처럼, 물처럼 유유히 움직이는 영화의 카메라 워크처럼, 진정한 로맨스는 형태나 존재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흘러가는 법 아닐까? |에디터 정병욱

 

올해의 쾌감 <오션스8>

앞뒤 재지 않고 내달리는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클리셰 좀 있으면 어때, ‘이다음엔 그 장면 나오겠구나’ 생각하자마자 시원하게 터져주는 영화가 주는 쾌감도 분명히 있다. 이런 영화는 꽤 많은데, 출연하는 배우는 늘 거기서 거기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오션스8>은 에디터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에겐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할 영화다.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민디 캘링, 사라 폴슨, 아콰피나, 리아나, 헬레나 본햄 카터…. 그 이름만으로 설레게 하는 배우들이 딱 바라던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니까. 이 영화를 또 보고 싶고, 이런 영화를 더 보고 싶다. |에디터 김유영

 

올해의 조연 <아이, 토냐> 앨리슨 제니

올해 3월 개봉한 영화 <아이, 토냐>는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며 언론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피겨 스케이트 선수 토냐 하딩이 언론에 의해 하루아침에 희대의 악녀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넘치는 에너지로 그렸다. 기구한 운명에 놓인 피겨 스케이트 선수 ‘토냐 하딩’을 악착같이 표현해낸 마고 로비의 연기도 연기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실존 인물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만들어낸 앨리슨 제니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완성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 토냐>의 각본가 스티븐 로저스는 영화 제작 이전부터 토냐 하딩의 어머니 ‘라보나 골든’ 역으로 배우 앨리슨 제니를 점찍어 두었고, 그는 온갖 인터뷰 자료들을 통해 실존인물의 억양, 버릇과 특징들을 찾아내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이 역할을 통해 생애 첫 골든글로브 수상 쾌거를 이룩했다. |에디터 최은제

 

올해의 질문 <버닝>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포착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서사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는 이창동 감독. 기구한 운명과 현실에서 처절하게 허우적대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영화가 극적 연출을 가미한 허구임을 고려해도 마치 우리 주변 어딘가 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이창동은 <시>(2010) 이후 8년 만에 발표한 이 작품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그렸다. 전작들과 달리 전개가 난해하고 상징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틈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청춘과 현대인들 내면에 자리한 분노에 대해 스스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는 점에서 올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에디터 정병욱

 

올해의 다큐멘터리 <메이플쏘프>

올해에도 예술가들의 삶의 자취를 밟은 다큐멘터리들이 여럿 개봉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본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휘트니 휴스턴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휘트니> 등이다. 올해 6월 개봉한 <메이플쏘프>는 흑인 남성 누드, 동성애, 에이즈 같은 주제를 적나라하게 담은 작품들로 예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예술 생애를 비춘다. 평생을 예술에 천착했고, 완벽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예술가. 결국 43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하였으나 생전에 원하는 부와 명예를 모두 일궈냈던 메이플소프의 삶을 생생히 그렸다. “누구든 꿈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적어도 우리는 메이플소프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꿈의 실현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디터 최은제

 

올해의 그리움, 김주혁

해가 갈수록 그리움의 대상은 점차 늘어만 간다. 올해 영화계에도 많은 이별이 있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국민 어머니’ 키키 키린이 세상을 떠났고 할리우드는 오늘의 마블 시네마를 있게 한 스탠 리의 별세를 추모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건 김주혁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가 따뜻한 미소와 마음씨로 훈훈한 일화들을 워낙 많이 남겼고, 배우로서 이제 막 궤도에 오르던 앞길 창창한 나이에 당한 사고였기에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제는 유작 <독전>으로 김주혁에게 남우조연상을 수여하며 조금이나마 슬픔을 달랬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뜨거운 눈물은 당분간 사그라들기 어려울 것이다. |에디터 정병욱

 

올해의 놀라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누벨바그의 거장, 다큐멘터리, 사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기 전엔 이 세 개의 키워드로 영화를 지레 판단했다. 그러나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가 제이알의 여정을 담은 영화를 보고 나면 앞서 언급한 키워드는 잊힌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힘주어 말해야 할 키워드는 결국 ‘인간’이다. 영화는 염소 목장 주인, 선착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등 살아가는 여러 인간을 비추고, 그들의 말을 들려준다. 아녜스 바르다는 모든 생(生)이 오래 남는 벽화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삶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이 영화엔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가장 놀라운 건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만든 거장, 아녜스 바르다! |에디터 김유영

 

올해의 수상소감 <쓰리 빌보드> 프란시스 맥도맨드

올해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은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돌아갔다. 영화를 집필하고 연출한 마틴 맥도나 감독은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고,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여성과 유색인종에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의 한복판에서 울거나 감정을 토로하는 대신 분노를 참지 않고 행동하는 엄마 ‘밀드레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더 뭉클한 순간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있었다. 앞서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나와 함께 후보에 오른 여배우들에게 테킬라를 쏘겠다”고 말했던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성들을 위한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한 손에 트로피를 쥐고 “차별 없는 환경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며 ‘포함 조항’(Inclusion ride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릴 스트립을 포함해 자리에 있던 여성 후보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던 그 순간을 필히 올해 아카데미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에디터 최은제

 

올해의 목소리 <풀잎들> 서영화

가늘고 여려서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지만, 뿌리를 굳세게 흙에 박고 자라는 풀잎들. 실처럼 잔 뿌리는 옆자리에서 자라는 풀의 뿌리와 엉키기 마련. 홍상수는 서로 부대끼긴 해도 명확히 다른 개체인 풀들이 모여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삶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는 영화 <풀잎들>에서 풀잎처럼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특히 배우 서영화가 연기한 ‘성화’라는 인물은 조용히, 그러나 야무지게 자란 들풀처럼 보인다. 성화의 집에 얹혀살면 안 되겠냐고 끈질기게 묻는 ‘창수’(기주봉)의 부탁을 거절하는 장면이 백미다. 우아하며 예의 바르지만 빈틈없고 단호한 화법을 보라. “제가 안 되는 건… 어떻게 되지가 않아서요”란 대사는 서영화를 만나 완벽해진다. 순식간에 영화의 공기를 기묘하게 비틀어버리는 그 목소리는 아주 오래 남는다. |에디터 김유영

 

올해의 반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는 좀비 영화를 찍는 현장을 그린다. 그런데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찍던 현장에 ‘진짜’ 좀비들이 들이닥친다. 흔한 스토리라인, 어설픈 카메라 워크, 낯선 데다 연기력도 그저 그런 배우들. 영화가 시작하고 30분까지는 이런 생각이 들 거다. 하지만 그 후엔? 속된 말로 ‘골때리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을 만큼 기막힌 장면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극장에선 조용히 영화를 봐야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음을 참기란 진짜 어려운 일이다. 굳이 참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모두 크게 웃고 있으니까. 팔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범벅인 장면이 나오는데도 사랑스러운 영화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올해의 반전, 혹은 올해의 귀여움으로 불러도 좋겠다. |에디터 김유영

 

올해의 주제가 <코코> OST ‘Remember Me’

2분 13초부터 미구엘 버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코코>가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백인 아닌 멕시코의 히스패닉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다. 가족의 사랑과 가치를 강조하는 다소 진부한 주제의식과 달리, 환상적인 비주얼과 줄거리 속에 녹아 든 신화적 상상력, 따뜻한 노래가 어우러져 긴 여운이 남는 따스함을 선사했다. 음악을 맡은 마이클 지아키노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마블 영화 등 최근 디즈니 작품을 두루 맡으며 떠오른 음악 감독이다. 영화 내내 울려 퍼진 흥겨운 라틴 팝 사운드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보고도 주제곡 ‘Remember Me’의 첫 구절과 선율에 마음이 녹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극중 ‘미구엘’이 금세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윤종신이 부른 ‘기억해줘’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에디터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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