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수자들에게 아직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봄을 일구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수’보다 특별하거나 특이하지 않은, 평범한 ‘소수’의 일상을 담는 퀴어 유튜버. 이들은 똑같이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며 ‘별다르지 않은 삶’을 투영한다. 본래 ‘기묘한, 이상한’의 뜻을 가지고 있는 ‘퀴어(Queer)’는 어원 자체에 혐오가 농축되어 있다. ‘보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이것이 평범하다는 타이틀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디어를 통해 소수자의 삶이 대중에게 노출될수록 화면 건너편의 누군가는 용기를 얻으리라 믿는다. 뚜렷한 존재감으로 평범함의 낭만을 선사할 퀴어 유튜버 3인을 만나보자.

 

기무상

유튜버 기무상은 성소수자 인권 신장에 있어서 최전방에 서있는 인물이다. 애인 가제루상과 결혼식을 올리고, 책 <커밍아웃북>과 <나의 동성애자 친구>를 출판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어 발음으로 표기된 닉네임을 보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유튜브 채널 소개글의 ‘한국 사람입니다’라는 시니컬한 문장처럼 기무상과 가제루상 모두 한국인 레즈비언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김 씨성을 뜻하는 기무상, 가젤과 흡사한 뜀박질이 특징인 가제루상. 이들은 주로 잔잔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Vlog)와 뜬금없는 전자기기 리뷰, 영어 강습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전개한다. 영상 목록만 보면 다소 일관성 없는 톤 앤드 매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상을 보면 이들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제 직업은 유튜버구요. 제 이야기는 평범합니다.” - 기무상

기무상은 여타 유튜버랑 다를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순간을 포착한다. 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번화가에서 데이트하고, 야식을 먹으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기무상이 찍은 가제루상 영상은 관찰자의 애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영상 속 따뜻한 울림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안녕을 묻고 있는 듯하다.

 

미사장

미사장 데이트 브이로그 영상

퀴어 유튜버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버 미사장. 특유의 유쾌한 화법과 목이 따끔할 정도의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초반에는 메이크업 루틴을 주로 선보였지만 지난 7월, 앞으로 뷰티 콘텐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현재는 연인과 함께 하는 브이로그, 전국 퀴어 문화 축제 관련 콘텐츠 등 퀴어의 시선으로 삶을 조명하며, 여성의 삶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주 목요일마다 생방송을 통해 시청자와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은 그간 말하지 못해 공중에 부유하던 많은 고민과 이야기들을 꺼내 보였다. 미사장만의 다정하면서도 호쾌한 조언이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 아닐까?

미사장 2018 서울 퀴어문화축제 브이로그 영상

“여성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가 필요합니다.” -미사장

미사장의 유튜브 채널은 취향이 잘 전시된 방과 같다. 비건 푸드를 만들고, 퀴어 댄스 팀과 함께 춤을 추고, 때로는 아이돌 그룹 NCT127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상을 보면 그의 다양하고 풍부한 매력에 넋을 잃고 빠져들게 된다. 보다 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향유하고 싶다면 미사장의 영상을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수낫수

규정폭력 경험담 편집 영상

수낫수(SOO NOT SUE)는 소수와 다수의 경계를 허무는 데 앞장선다. 양성애, 다성애, 범성애, 무성애, 트랜스젠더. 그동안 알려진 적 없던 소수자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전하며 다수의 무지를 일깨운다. 편안한 어조로 퀴어로서 소수자를 대변하며 소수자 사이에서도 만연한 편견을 격파해가며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중 한국의 꼿꼿한 젠더 고정관념에 물음을 던지는 콘텐츠는 시사성과 적시성 모두 갖췄다. ‘우리는 여기 있다’라는 메시지가 날카롭게 꽂혀 여운을 남기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단편 <찰나: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

“나는 바이섹슈얼 여성 ‘수’라고 해.” -수낫수

수낫수는 퀴어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드라마를 선보이다 2019년에는 단편영화 <찰나: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을 공개했다. 기획, 감독, 제작, 편집 모두 수낫수가 직접 진행했다. 기분이 몽글해지는 영상의 따뜻한 색감과 배우들의 섬세한 눈빛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차별보다 더 악독한 행위는 존재 자체를 지우는 행동과 인식이 아닐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의 인식 속에 퀴어의 이름은 철저히 지워져 있었다.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가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미약하지만 더욱 선명해진 존재감으로 최전방에 서 있는 이들은 계속 들끓는 혐오와 맞서 싸워야 한다. 추위에 웅크린 소수자들이 하루빨리 기지개를 켜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메인이미지 수낫수 유튜브 페이지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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