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Cool’은 특히 젊은 세대가 가장 흔하게 쓰는 단어 중 하나다. 서늘하다는 의미의 단어 ‘Cool’은 원래 ‘냉담하게’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세련된 무언가를 봤을 때 마음에 든다는 긍정 신호로 “Cool”을 외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단어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30~40년대 스윙재즈 시절의 인기 색소포니스트 레스터 영(Lester Young, 1909~1959)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 1944년에 제작한 유명 재즈 다큐멘터리 <Jammin’ the Blues>에서 그를 볼 수 있다. 둥근 모자의 실루엣으로 등장해 의자에 앉아 삐딱하게 든 색소폰을 연주하는 신사가 그다.

재즈 다큐멘터리 <Jammin' the Blues>의 한 장면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다른 재즈 연주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특이한 포크파이 모자(Pork Pie Hat)에 똑 떨어진 핏의 양복, 화려한 문양의 넥타이를 하고 색소폰을 비스듬히 들고 있는 자태를 보면, 그가 패션에 무척 신경을 쓰고 남달라 보이려 애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색소폰 연주자들이 빠르고 강하게 불기 위해 애를 썼다면, 그의 색소폰 음색은 느리고 가늘고 여유가 있다. 느긋한 ‘릴랙스(Relax)’를 중시했던 그의 연주를 후일 평론가들은 ‘Cool Jazz의 원조’라고 평가한다. 항상 우아한 태도를 유지해 그는 ‘대통령(President)’, 줄여서 ‘Prez’ 또는 ‘Pres’라 불렸고, 포크파이 모자와 색소폰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레스터 영 트리오의 앨범 자켓. 비스듬하게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스타일과 포크파이 모자는 그의 상징이었다
 스윙시대 최고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과 함께 스윙 스탠더드 6곡을 연주해 수록한 명반 <Pres and Teddy>(1956)

그에게 ‘Prez’란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였고, 그는 홀리데이에게 유명한 ‘Lady Day’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두 사람은 카운트 베시 악단 시절의 동료로 평생을 가까이 지낸 사이지만, 홀리데이는 그와의 관계가 정신적인 것임을 늘 강조했다. 그의 연주에 대한 홀리데이의 평가는 항상 최고였다. “나는 그의 음악을 사랑했어요. 그와 같이 만든 음반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죠. 레스터는 악기로 노래를 불러요.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가사를 느낄 수 있어요.”

레스터 영은 홀리데이의 가족이 사는 뉴욕 아파트에 얹혀살 정도로 둘은 가까운 사이였다

그 때문인지 레스터 영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의 여성스러운 품성과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는 습관 등이 소문을 더욱 부채질했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상처받기 쉬운 예민한 성격과 지나친 음주로 인한 음악적 퇴보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고, 서로 위안을 주는 친구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1959년 레스터 영이 사망했을 때 장례식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홀리데이는 “다음은 내 차례”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4개월 후 그 역시 생을 마감한다.

Billie Holiday & Lester Young ‘All of Me’

세계대전의 발발로 1944년 군대에 징집된 그는 술과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1년간 영창 생활을 하면서 교도관에게 심한 학대를 받는다. 예민한 성격의 그는 영창에서 얻은 정신적 트라우마로 불명예제대 후 음주벽이 더욱 심해졌으며, 연주는 갈수록 전성기 시절의 창의력을 잃어 갔다. 1950년대에 Verve 레이블과의 계약으로 많은 음반을 냈지만, 아무래도 그의 전성기는 스윙시대인 1930년대라 할 수 있다. 특히 카운트 베시(Count Basie)와 함께 한 The Kansas City Sessions 활동을 통해 그의 빠르고 경쾌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레스터 영의 시그너처 곡 'Lester Leaps In'(1939)

음악적 측면에서 레스터 영은 찰리 파커(Charlie Parker)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만큼 유명하다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그들보다 영향력이 컸다. 남성성을 강조하던 당시 흐름 속에서 그만은 유니섹스적인 부드러운 스타일을 추구했고, 패션은 늘 앞서 나갔다. 언어에 대한 영향력도 컸다. 공연 후 얼마나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할 때면 그는 늘 “How does the bread smell?(빵 냄새는 어떠냐?)”고 물었다고 한다. 오늘날 ‘Bread(빵)’을 ‘돈’으로 부르는 힙스터 언어의 시초인 셈이다. ‘Dig(땅을 파다)’를 ‘알다’, ‘이해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도 그의 영향이라고 알려진다.

럿거스대학 재즈연구소에 보관된 레스터 영의 테너 색소폰

1940년대 처음 등장한 ‘힙스터(Hipster)’라는 용어는 흑인 재즈음악과 그들의 문화를 광적으로 따르던 백인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레스터 영의 음악, 패션, 언어는 그를 당시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요즘 말마따나 그는 ‘대세’였다.

밍거스의 'Goodbye Pork Pie Hat'은 레스터 영에 대한 헌정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