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다가 과열된 머리를 잠시 식히고 싶을 땐 여유로운 시골 풍경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인지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농촌 생활을 기획한 ‘힐링’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런 콘텐츠 속에서 펼쳐지는 느리고 태평한 풍경은 때때론 내 일상과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만약 로망을 덜어낸 시골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보고 싶다면 일본 지방 곳곳을 배경으로 한 만화들을 보길 추천한다. 우리와 같이 웃고, 울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일상엔 ‘자연’의 풍경이 깃들어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주말은 숲에서>, <너의 곁에서>, <리틀 포레스트> 네 작품을 통해, 치열한 삶 속에 자연이 공존하는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살펴보자.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로도 유명한 원작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한집에 사는 세 자매가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 이복동생인 ‘스즈’를 집에 들이며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가마쿠라’는 실제 도쿄 인근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로, 오래된 집들 사이에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고즈넉한 동네다.

종종 바닷가를 바라보며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들

가마쿠라의 바닷가는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에 중요한 풍경으로 등장한다. 직장, 연애 등의 고민을 품고 바닷가에 오는 이들은 잠시 멈춰서서 밀물과 썰물이 밀려오는 파도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렇게 그들은 찬찬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번민의 시간을 가진 끝에 갈림길 앞에서 중요한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네 자매가 사는 가마쿠라의 오래된 가옥

가마쿠라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네 자매의 낡은 집 역시 특별한 정취를 풍긴다. 태어난 이후부터 부모와 조부모를 떠나보내기까지 쭉 함께 한 이 공간엔 네 자매가 버텨온 일상의 시간이 쌓여 있다. 할머니가 담근 매실주, 눅눅한 건물 냄새 등 집 곳곳에 묻어나는 오랜 삶의 흔적은 여느 자매처럼 매일 티격태격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을 더욱 반짝이게 만든다.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말엔 숲으로>는 어느 날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된 ‘하야카와’와 도심에 살지만 주말마다 하야카와 네로 놀러 오는 친구, ‘마유미’와 ‘세스코’의 일상을 다룬다. “한번 시골에서 살아보지, 뭐”라며 태연한 마음으로 시골로 내려온 하야카와는 그 누구의 의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는 매일 숲을 거닐며 벌레, 나무, 꽃 등 자연 속의 풍경을 샅샅이 관찰하고, 거기서 얻는 단상들을 삶의 철학과 연결해서 이야기한다.

시골로 내려온 마유미와 하야카와가 등산하다 나누는 대화 장면

마유미와 세스코는 매번 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주말만 되면 숲으로 놀러와 직장, 연애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한 아름 풀어놓고 간다. 도시로 돌아온 뒤 지친 일상이 반복될 때 두 사람은, 하야카와가 들려줬던 자연에 관한 감상을 떠올리며 앞에 겹겹이 낀 안개를 헤쳐나갈 삶의 단초를 찾곤 한다. 자연 속에서 조곤조곤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로 일상을 채워나가고, 흔들리는 삶에서 안정을 찾는 셋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나’만의 숲을 찾으러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너의 곁에서>

<주말엔 숲으로>의 속편인 <너의 곁에서>는 시간이 훌쩍 흘러 남편, 아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야카와와 여전히 주말마다 놀러 오는 친구들의 삶을 그린다. 하야카와는 초등학생인 아들 ‘타로’가 등교할 때마다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를!”이라 외치고, 숲을 걷다가 인생에 관한 명언을 툭 던지는 등 여전히 엉뚱함을 지니고 있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혼자서 여행을 떠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그는 ‘가족’이란 울타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키우며 살아간다.

하야카와의 아들인 타로 역시 엄마를 똑 닮아, 매일 숲을 거닐며 잎사귀나 벌레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그 속에서 작은 지혜를 얻어간다. 이 책에 새로 등장하는 타로의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자신에게 불안을 느끼지만 타로와 숲에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다 안정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숲과 자연이 펼치는 소소한 풍경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지혜를 귀띔해주기도 한다.

 

<리틀 포레스트 1, 2>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에 살던 주인공 ‘이치코’가 작은 산골 마을 코모리로 귀향해 혼자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그린다. 작가는 실제 시골에서 농촌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잔잔한 시골 풍경과 산지에서 바로 나온 채소, 과일 등의 요리 식재료를 생생하게 그린다. 특히 그림 속 수채화풍의 색감과 부드러운 흑백 선은 시골의 모습을 더욱 서정적이고 향토적으로 표현한다.

<리틀 포레스트> 1권 중

레시피별로 나뉘어 있는 각 챕터는 이치코가 식사를 차려 먹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이치코가 차린 소박한 밥상은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수확한 후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하는 등 치열한 노고 끝에 나온 결실이다. 그런 일상이 연속되는 사이에 이치코가 속마음을 읊조리는 독백도 계속해서 나온다. 도시의 삶에 녹아들지 못해 코모리로 도망치듯 내려온 이치코는 시골에서 한 끼씩 차려 먹는 나날을 반복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만화 내내 펼쳐지는 코모리의 평온한 모습은 이치코가 새로운 일상에 찬찬히 젖어 드는 데 중요한 전경이 되어준다.

<리틀 포레스트> 2권 중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