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캐럴 음악으로 온 거리가 흥겨워진다. 크리스마스 카드의 표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캐릭터가 TV 만화 <피너츠>의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듯, 빈스 과랄디 트리오(Vince Guaraldi Trio)의 재즈 스타일의 캐럴 음반 <A Charlie Brown Christmas> 또한 지난 반세기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아왔다. 이 음반은 1965년 12월 9일 CBS에 방송된 30분 길이의 특집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애니메이션은 피바디상과 에미상을 받았고 OST 음반은 그래미 명예의 전당과 국회 도서관에 영구 소장되었다.

CBS 애니메이션 <A Charlie Brown Christmas>(1965)

당시 방송 시간 열흘 전에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본 담당자들은 걱정이 가득했다. 미국 코미디의 특징인 래프 트랙(Laugh track: 의도적으로 삽입한 관객의 웃음소리)이 아예 없었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느린 페이스에 너무 간단한 스토리라는 평이 우세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에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전례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1천 5백만이 넘는 가구가 시청했고, 평단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단 하루 만에 녹음된 음악 역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4백만 장의 음반이 팔렸고, 1988년부터 2003년까지 15년 연속 크리스마스 앨범판매 순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의 크리스마스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OST 음반 <A Charlie Brown Christmas> 전곡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 1928~1976)는 카이저수염으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다. 1950년대 후반부터 라틴 재즈의 거장 칼 제이더(Carl Tjader)과 함께 활동하다가, 자신의 트리오 활동 3년 만에 <Jazz Impressions of Black Orpheus>(1962)로 올라섰다. 이 앨범 B면에 수록된 ‘Cast Your Fate to the Wind’가 의외로 라디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래미 오리지널 재즈 작곡상을 탄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이 곡을 들은 <Charlie Brown Christmas>의 제작자 리 멘델손(Lee Mendelson)이 그를 컨택했고, 이를 계기로 애니메이션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나서게 되었다.

빈스 과랄디 트리오 ‘Cast Your Fate to the Wind’(1962)

음반 <Charlie Brown Christmas>는 전통적인 캐럴을 재즈로 재해석한 곡과 그의 자작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자작곡 중에는 ‘Linus and Lucy’, ‘Christmas Time is Here’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피너츠>에 자주 수록되는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그 후에도 두 사람의 협업은 빈스 과랄디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1976년까지 십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인 47세에 동료들과 음악에 대해 협의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이는 사망 하루 전 함께 작업했던 <피너츠> 팀에게 그야말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장례식에는 <피너츠>의 OST가 울려 퍼졌다.

브라질 기타리스트 Bola Sete와 함께 연주하는 빈스 과랄디(1963)

2009년에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Anatomy of Vince Guaraldi>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2012년엔 전기 <Vince Guaraldi at the Piano>가 출간되면서 그의 삶과 음악이 조명되었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애니메이션 <피너츠>를 보며 그의 재즈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다. 많은 사람이 애니메이션 <피너츠>의 주제곡으로 그를 기억하지만, 그는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웨스트 코스트 재즈 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Anatomy of Vince Guaraldi>(2009)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