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모처럼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관람한 재즈 무대는 여름 록 페스티벌과 다른 낭만을 전했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재즈가 있지만 분명 가을의 재즈는 특별하다. 이번 가을 나온 재즈 앨범을 통해 그들이 ‘재즈’한 방식을 살펴본다.
지난해 그래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름있는 베테랑 재즈 색소포니스트였지만, 나이 63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진 보컬 앨범을 발매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이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함께 한 영화 <The Sandpiper>. 정작 영화는 크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오리지널 음악은 그래미와 오스카를 수상하며 팝과 재즈 부문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아마 그가 남긴 명곡 ‘Stolen Moment’가 그의 이름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테너 색소폰 연주보다 창의적인 작곡을 하고 싶어 뉴욕에서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지만, 너무나 많은 일에 둘러싸이며 일찍 생을 마감하였다.
듀크 엘링턴은 반 세기 동안 빅밴드를 운영하면서 무수한 명곡을 남겼으며, 자신의 솔로이스트들을 형제처럼 대했다. 특히 알토의 자니 호지스, 테너의 폴 곤살브스, 바리톤의 해리 카니는 듀크 엘링턴과 평생 함께하며 역사를 만들었다.
1940년대 중반의 인기 빅밴드 우디 허먼 오케스트라에는 네 명의 걸출한 색소포니스트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맞춤곡인 ‘Four Brothers’는 재즈 스탠더드로 널리 퍼졌고, 그 위에 가사를 얹은 맨하탄 트랜스퍼의 아카펠라로도 유명하다.
그는 두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어릴 때부터 클럽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었다. 커서는 대여섯 개의 관악기를 목에 걸고 여러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였다. 뇌졸중으로 신체 반쪽이 마비가 되어서도 그렇게 연주했다.
그는 15번의 그래미 수상자로 록과 재즈 연주계의 거장이었으나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 2년을 기다리며 골수 이식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레스터 영의 뒤를 잇는 인기 테너 색소포니스트였고 쿨, 비밥, 보사노바에 걸친 명연주로 유명했다. 평생 술과 마약을 즐겼으나 음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유명한 이혼 판례의 당사자가 된 원인을 제공했다.
독창성을 중시하는 재즈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니 스팃은 뛰어난 색소폰 연주 실력을 보유하고도 찰리 파커 모방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1962년 L.A. 인근의 산 쿠엔틴 교도소. 두 명의 수감자가 앙상블을 이뤄 뛰어난 재즈 색소폰 연주를 들려준다. 재즈 신의 훌륭한 연주자로 인정받던 아트 페퍼와 프랭크 모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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