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9일 저명한 소설가 마이클 피터슨의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그의 부인 캐슬린이 사망했다. 술에 취한 채 계단에서 넘어졌다며 남편이 긴급하게 신고하였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낙상 사고가 아니라 폭행에 의한 살인 혐의를 두고 수사에 들어간다. 외부로부터의 침입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자 유일하게 집에 함께 있던 남편을 1급 살인혐의로 기소한다.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이때부터 피고 측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사건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계단 살인’(The Staircase Murder)으로 대서특필한 이 사건은 유죄협상으로 최종 종결될 때까지 무려 16년이 걸린다.

다큐멘터리 <The Staircase> 예고편

기소 후 2년이 걸린 재판 결과 배심원 12명 전원은 마이클 피터슨에 대한 유죄 평결을 내렸고 이어 종신형에 처했다. 재판 과정을 담은 영상은 미니시리즈 <Death on the Staircase>로 편집되어 TV에서 방영되었고 이듬해 피바디상(Peabody Award)을 받았다. 수감 후에도 재심이 계속 이어져 8년의 복역 끝에 가택연금 형식의 석방이 결정되었고, 재판을 재개할지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면서 유죄협상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추가로 제작된 후속 2편과 넷플릭스가 추가로 제작한 3편을 포함, 총 13편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계단: 아내가 죽었다>가 완성됐다.

 

다큐멘터리 감독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

프랑스 다큐멘터리 감독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 (Jean-Xavier de Lestrade)는 아홉 번째 장편 <머더 온 어 선데이 모닝>(2001)으로 오스카를 수상할 무렵 이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법과 언론을 전공한 후 사회 현상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을 가졌다. 2002년부터 시작한 <계단 살인> 프로젝트의 경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미국의 재판 과정을 면밀히 화면에 담아 이를 잘 모르는 일반인을 위한 교육 차원에 더 중점을 두기로 했다.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 감독

 

The Owl Theory(올빼미 이론)

캐슬린 피터슨의 죽음에 대해 검찰이나 피고 측 모두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특히 두피의 깊은 상처는 피고 측의 낙상 사고란 해명을 곤혹스럽게 하였고, 검찰 또한 범행 흉기나 동기에 대한 설명이 궁핍했다. 재판이 장기간 공전되던 중 한 변호사의 또 다른 설명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힘을 얻었다. 올빼미가 피살자의 두부를 공격하여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논리다. 그 지역에서 올빼미에 의한 피해 사례가 다수 있었고, 실제 피살자의 손에서 작은 깃털 조각이 발견되는 바람에 인터넷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원고나 피고 모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올빼미 이론(The Owl Theory) 관련 영상

 

앨포드 플리(Alford Plea)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재판이 시작되자 원고와 피고 간 반대 심문을 진행하며 상대를 이기기 위한 끝없는 전투가 시작된다.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상대를 이기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재판 과정 끝에 피고는 재산과 명예를 다 잃어버리고 8년을 복역한 끝에 다시 재판을 시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명예를 얻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지만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16년간 피고의 변호인을 맡은 데이비드 루돌프 변호사는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앨포드 플리 방식의 유죄협상을 도출해 낸다.

피고 변호인 데이비드 루돌프 변호사의 인터뷰

이 다큐멘터리는 어설프게 진실을 규명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 피고나 가족, 변호인, 판사 그리고 배심원의 표정이나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마치 16년의 재판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면 다시 심각한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마이크 피터슨은 우발적인 살인자인가, 아니면 미국 사법제도의 피해자인가? 판단은 오로지 시청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