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청춘 로맨스물에는 유독 '소녀'라는 키워드가 두드러진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 같은 흥행한 영화들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론 손과 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함을 동반하지만, 이것 또한 대만 로맨스를 찾아보게 하는 묘미다.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매력으로 오래 사랑받는 대만 로맨스 영화 속, 하나의 계보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소녀 캐릭터'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모아봤다.

 

1. 계륜미

<남색대문>(2002)

<남색 대문>이 여타 대만 청춘물들에 비해 유독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 이유는,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깊은 연기와 신선한 매력을 보여준 배우 계륜미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대만 뉴웨이브 2세대 감독 이치엔의 작품으로, 소년, 소녀들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터치해 결국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청춘 영화로 회자된다. 계륜미는 중성적인 분위기를 지닌 소녀 '몽크루' 역을 맡아 청춘만의 달뜬 싱그러움부터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통까지 백지처럼 말간 얼굴에 다채롭게 담아낸다.

<남색대문> 예고편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계륜미가 본격적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작품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주걸륜이 감독 겸 배우로 나선 이 영화에서 계륜미는 대만 '국민 첫사랑'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피아노 천재 소년 '상륜'(주걸륜)과 비밀을 품은 소녀 '샤오위'(계륜미)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첫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물로, 국내에서는 수입 및 개봉 사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포털 사이트의 영화부문을 점령하며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단정한 단발머리, 깨끗한 마스크와 단아한 매력의 계륜미는 풋풋한 청춘들의 로맨스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소환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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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옌시

<청설>(2009)

<청설>은 인물들의 맑고 꾸밈없는 눈빛과 손짓을 통해 장애의 난관보다는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할 언니 '샤오펑'(천옌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던 '양양'(진의함)과 그를 사랑하게 된 '티엔커'(펑위옌 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연애 못지않게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샤오펑과 양양 자매의 애틋한 관계에 대한 묘사이다. 아직 대만의 국민 첫사랑이 되기 전인 천옌시는, 양양의 언니 '샤오펑'으로 분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뭉클한 감정을 훌륭히 연기했다. 대사의 대부분이 수화이기에 생기는 고요함은 인물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청설> 예고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무엇보다 대만 청춘 멜로의 핵심인 복고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빼놓을 수 없다. 구파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본인의 경험담을 적은 책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받으며 대만 금마장 영화제, 판타지아 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 시절 '커징텅'(가진동)을 포함한 모든 남학생이 동경했던 '션자이'라는 캐릭터에 진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힘은 단연 배우 천옌시다. 그는 작품 출연 당시 실제 나이보다 11살이나 어린 17살의 여학생을 앳된 얼굴과 청순한 이미지로 차분하게 소화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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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운화

<나의 소녀시대>(2015)

송운화는 이러한 '소녀'들의 계보를 이어받아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 같은 대만 청춘 로맨스물에서 당찬 여주인공의 역할로 활약해 나간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여주인공 버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나의 소녀시대>는 복고 키워드에 녹여낸 청춘 로맨스물의 공식을 완벽하게 따라간다. 관객은 알고 주인공들만 모르는 첫사랑 밀어주기의 결말은 유치하리만큼 뻔하지만, 여지없이 사랑스럽다. 여주인공이 안경을 벗자마자 예뻐질 거란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보게 하는 것이 곧 이 영화의 매력.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2014)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송운화는 이 영화에서 사랑의 설렘에 달뜬 여고생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며 전에 없던 활기로 대만영화계를 사로잡았다.

<나의 소녀시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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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녀>(2017)

2018년 국내 개봉해 11만 관객을 모은 <안녕, 나의 소녀>는 어쩌다 1997년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정샹'(류이호)이 첫사랑 '은페이'(송운화)를 다시 만나 그의 운명을 바꾸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1997년 대만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들의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을 다룸과 동시에, 음악이라는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10대들의 꿈을 진지하게 조명해낸 작품이다. 전작 <나의 소녀시대>에서 평범한 여고생 캐릭터를 발랄하고 귀엽게 소화해낸 송운화는 그 수더분한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똑 부러진 성격과 반짝이는 끼로 무장한 교내 스타 ‘은페이’로 완벽하게 얼굴을 바꾼다.

<안녕, 나의 소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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