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캐나다 CBC가 합작 제작한 드라마 <빨간 머리 앤(Anne with an E)>(2017)은 애니메이션과 소설로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왈가닥 삐삐 머리의 캐릭터가 현실로 구현되며, 원작에 없는 에피소드를 더해 10대 여자아이의 100% 성장 드라마로 돌아왔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게 한 비결을 짚어봤다.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예고편

 

책 속에서 뛰쳐나온 ‘앤 셜리’, 배우 에이미베스 맥널티

캐스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극의 흥미가 떨어질 터. 삐삐 머리에 주근깨가 있고, 이마가 볼록 튀어나온 앤의 외모가 온전히 담긴 배우 에이미베스 맥널티는 캐스팅부터 애니메이션의 인물을 그대로 조각해낸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에이미베스 맥널티는 아일랜드계 캐나다인으로 2014년에 연기를 시작해, 2017년 방영한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신예이다. 앤 셜리 역을 따내려는 배우들 사이에서 1800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끊임없이 말하고 상상으로 쉽게 빠져드는 앤 셜리의 캐릭터가 실사로 재현되었을 때 자칫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를 깨뜨리며, 앤 셜리를 씩씩하고 사랑스럽게 소화해냈다.

 

원작에 없는 에피소드를 더한, 여자아이의 100% 성장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은 앤 셜리의 ‘고아, 가난, 여자, 아이’라는 캐릭터로서의 특성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며 그가 부딪힐 수 있는 편견과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앤 셜리가 첫 생리를 ‘본인이 큰 병에 걸린 줄 알고 오열하는 장면’은 누구나 겪지만, 그다지 여성의 몸에 대해 입 밖으로 말하지 않던 시대적 배경을 재치있게 그려냈다. ‘길버트’(루카스 제이드 주먼)에 대해 호감을 느끼면서, 신부는 되고 싶지만, 아내는 되고 싶지 않아 고민하는 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체적으로 살아온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점차 성장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며 겪는 혼란을 담아냈다. 이 과정에서 앤은 멘토로서 비혼 여성 ‘조세핀’과의 대화, ‘커스버트’ 남매의 애정 어린 보살핌, ‘다이애나’와의 깊은 우정을 지나며, 점차 자기 가치관을 정립하고 성장해간다.

‘길버트’ 역을 맡은 배우 루카스 제이드 주먼. 영화 <우리의 20세기>(2017)에서 사춘기 아들 ‘제이미’를 연기하며 신선한 눈도장을 찍었다

 

일상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페미니즘의 물결

‘앤 셜리’와 ‘마릴라’

<빨간 머리 앤>에서 또 하나의 극적인 캐릭터는 ‘마릴라’(제라르딘 제임스)를 꼽을 수 있다. 마릴라는 평생 가사를 하며 살았지만, 앤을 키우게 되면서 앤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여성의 교육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한다. 당대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서프러제트 운동’의 영향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고민과 변화의 흐름이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의 배경으로 온전히 담겼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당대의 시대적 문화

<빨간 머리 앤>의 눈부신 자연경관 또한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린게이블의 풍경이 실사로 구현되며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특히, 앤이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에 나오는 반짝이는 호수와 하얀 꽃길은 앤의 설레는 마음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담겼다. 실제 <빨간 머리 앤> 소설 속 배경이었던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일부를 촬영해 원작의 배경을 살리고, 그 외 세부 장면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촬영했다. 앤, 길버트, 다이애나의 집에서 등장하는 원목 식탁, 찻잔, 노란 양초가 꽂힌 촛대 등의 소품도 인상적이다. 무쇠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화덕에 스콘과 빵을 굽는 모습이나 학교 앞 냇가에 우유를 담가놓는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은 당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요소다.

+Tip. <빨간 머리 앤>과 함께 보면 좋은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2010)과 <빨간 머리 앤: 네버엔딩스토리>(2009)를 꼽을 수 있다. <빨간 머리 앤: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2010년작으로 일손이 필요한 그린게이블에 실수로 오게 된 ‘앤’이 역에서 그린게이블로 가 함께 살게 되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담아냈다. <빨간 머리 앤: 네버엔딩스토리>는 2009년 작으로, 착오로 그린게이블에 오게 된 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앤과 다이애나와의 우정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앤이 겪는 대학교 진학에 대한 고민과 그린 게이블의 위기 에피소드까지도 담겨있다. 드라마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며 실사로 구현되었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풍경이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졌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Writer

좋아하는 것들 언저리에서 담 넘어 구경하는 걸 즐기다가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다. 똑같은 매일을 반복해야만 갈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