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스타일리스트, 말 그대로 음식을 스타일링하는 사람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광고나 영화 등 영상과 지면에 담기는 음식을 더욱 먹음직하게 연출할 뿐 아니라, 음식에 관한 한 기획부터 사소한 제안까지 모든 단계를 도맡는다. 이이지마 나미(飯島奈美)는 수많은 팬을 가진 푸드 스타일리스트다. 그는 영화 <카모메 식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드라마 <심야식당> 등 한국에 잘 알려진 작품에도 참여했다. 이이지마 나미가 연출한 음식은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그 맛을 꿈꾸게 만든다. 그의 푸드 스타일링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에 가깝게

이이지마 나미가 담당한 영화 속 요리는 화려하지 않다. 아무렇게나 툭툭 자른 감자와 당근은 크림 스튜 재료가 되어 무르게 익어간다. 쌀밥에 버터 한 조각 올린 버터라이스, 달걀에 마요네즈 풀어 섞은 샌드위치 소는 누구나 먹어보았을 ‘그 맛’을 상상하게 해 더욱 맛깔난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는 시나몬롤 만드는 신이 있다. 달걀 풀고, 설탕과 밀가루를 붓고 거품기로 젓고 밀개로 민다. 이이지마 나미가 연출한 시나몬롤 레서피는 거창하지 않아 맘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카모메 식당> 시나몬롤 만드는 장면

이이지마 나미는 요리가 두드러지도록 일부러 기름이나 소스를 덧바르는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 예쁜 비주얼을 가진 소품으로서의 요리가 아니라 ‘정말 맛있는 요리’가 카메라 안에서도 먹음직스럽다는 걸 알았다고. 이이지마 나미는 평범해서 익숙한 음식, 언젠가 먹어보았던 것 같아 그리워지는 요리를 선보인다. 그래서 그가 손댄 요리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드라마 <심야식당>(2009) ‘빨간 소시지와 달걀말이’ 중에서

 

자연스레 ‘놓인’ 요리

이이지마 나미는 작품 흐름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요리를 놓는다. 그는 정말 작품 속 인물이 요리한 것처럼 연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한 예로 그가 참여한 영화 <카모메 식당>과 <안경>에는 모두 가정식이 나오는데, 작품 설정에 따라 스타일링은 사뭇 다르다.

사치에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 핀란드 손님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의 가정식은 기본에 충실하다. 흰쌀밥, 달걀말이, 연어구이 등의 메뉴는 일본에서 아주 먼 핀란드에도 어울릴 만큼 무난하다. 더불어 사치에는 아기자기한 그림이 수 놓인 원색 옷을 자주 입는 캐릭터. 사치에 손에 들린 민무늬 흰 접시는 인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동시에, 식당의 분위기를 단정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접시를 든 사치에

<안경> 속 ‘유지’(미츠이시 켄)가 만드는 가정식에서는 ‘외딴 마을 민박집 주인’이라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달걀 프라이, 잘 구운 식빵, 잡곡밥, 신선한 채소 샐러드 등 산뜻한 메뉴 구성은 영화 속 마을 풍경과 참 어울린다. 식기는 어떠한가, 밋밋한 듯해도 들여다보면 발랄한 포인트가 콕 박힌 그릇과 접시는 유지의 민박집을 더욱 흥미로운 장소로 만든다.

유지가 운영하는 민박 아침 식사

위에서 소개한 작품 이외에, 이이지마 나미가 참여한 다른 작품을 세 편 추려보았다.

 

영화 <수영장>

プール | 2009 | 연출 오오모리 미카 |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세 료, 카나, 시티차이 콩필라
<수영장> 속 바나나 튀김

일본이 아니라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사요’(카나)는 가족을 떠나 치앙마이에서 4년째 일하는 엄마 ‘쿄코’(고바야시 사토미)를 만나러 간다. 훌쩍 떠나버린 엄마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딸, 둘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이지마 나미는 이 영화에서 이국적인 요리를 맛깔나게 선보인다. 문양이 화려한 접시 위 푸팟퐁커리,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파파야 샐러드를 보기만 해도 태국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상상하게 될 거다.

<수영장> 스틸컷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パンとスープとネコ日和 | 2013 | 연출 마츠모토 카나 |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나, 모타이 마사코
아키코 식당 메뉴, 매일 달라지는 샌드위치와 수프

제목에 이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겼다. 회사를 그만두고 샌드위치와 수프를 파는 가게를 연 ‘아키코’(고바야시 사토미)가 재료 준비하고 가게 열고 손님 맞고 일 끝나면 쉬는 이야기다. 이토록 단조로운 플롯이 도리어 편안함을 안긴다. 아키코의 식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 만큼 요리 신이 자주 등장한다. 이이지마 나미의 손길이 닿은 커다란 치아바타, 큰 그릇에 담긴 푸짐한 채소 수프는 수수하고 아늑한 아키코의 식당에 부족하지 않은 메뉴다.

아키코의 주방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海街diary | 2015 | 연출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카호, 히로세 스즈
영화에 등장하는 매실

작은 바닷가 마을 가마쿠라에 사는 자매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난다. 이 영화는 네 자매가 된 이들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는데, 가족의 일상을 그리는 영화에서 식사 장면이 빠질 수 없다. 이이지마 나미는 잔멸치 덮밥, 단출한 국수, 밑반찬 등 일상 요리를 정갈하게 담아낸다. 특히 매실을 수확해 매실주를 담그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바구니에 담긴 초록색 과실은 울퉁불퉁해 사랑스럽고, 이 열매로 담근 매실주는 빨간 뚜껑으로 덮은 플라스틱병에서 정겹게 익어간다. 일상 속 소박한 요리를 보여주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이이지마 나미의 고요한 힘을 느껴보자.

자매의 일상적인 식사

 

 

메인 이미지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스틸컷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