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광고는 심플하다. 하지만 힘이 세다. 몇몇 광고는 5년,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우리의 머릿속에 또렷하다. 심플하면서도 강력하다는 건 모든 요소가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200% 이상 해내고 있다는 것. 애플 광고 속 음악이 특히나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아니, 보이지 않기에 보이는 그 어떤 요소 이상으로 광고의 분위기를, 감성을 지배한다.
2003년부터 애플이 선택했던 음악들을 모아봤다. 어떤 음악들이 애플의 선택을 받았는지, 그 선택 받은 음악들은 어떻게 애플의 광고를 빛냈는지 그 상부상조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아마 이 기사를 다 읽을 때쯤이면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할 음악들이 조금 더 늘어나 있을 것이다. 

 

iPod, 블랙 아이드 피스 ‘Hey Mama’(2003)

iPod 실루엣 캠페인의 첫 TV 광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없던 그 시절, 우리에겐 아이팟이 있었다. 심플한 디자인에 사용법마저 심플했던 그 시절 우리의 고막을 책임졌던 바로 그 아이팟. 잠시 추억에 잠기다 보면 분명 아이팟의 실루엣 광고도 기억날 것이다. 원색의 배경에 하얀색으로 표현된 아이팟을 들고 검은색 실루엣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전부인 이 광고. 긴 카피도, 기능 설명도 없다. 스티브 잡스마저도 아이팟의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처음에 반대했을 정도로 무모하리만치 심플한 광고. 그리고 그 심플함 위로 도드라지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Hey Mama’. 그 덕분이었을까. 블랙 아이드 피스는 이 광고 하나로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한다. ‘Hey Mama’가 수록되어 있던 그들의 세 번째 앨범인 <Elephunk>는 4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북미는 물론 유럽까지 강타, 그래미 시상식에서 힙합상을 받기에 이른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Hey Mama’가 아이팟 광고를 살리고, 아이팟 광고가 블랙 아이드 피스를 알리고. 이쯤 되면 Win-Win이라는 용어의 가장 적절한 사례이지 않을까.

블랙 아이드 피스의 ‘Hey Mama’

 

 

맥북에어, Yael Naim ‘New Soul’(2008)

2008년 1월 15일 맥월드 컨퍼런스&엑스포에서 맥북에어를 처음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을 가장 잘 설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노란색 서류봉투에서 쓱 하고 노트북을 꺼내는 것. 무심한 듯 시크하게 스티브 잡스가 서류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처음 꺼내던 그 순간 탄성이 쏟아졌던 건 그보다 더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의 등장을 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좋은 아이디어를 프리젠테이션장에 참석한 소수만 즐기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는 맥북 에어의 첫 광고도 자신이 했던 퍼포먼스 그대로를 살려 만든다. 배경음악까지 자신이 직접 골라서.

Yael Naim ‘New Soul’

덕분에 배경음악의 주인공이었던 Yael Naim은 프랑스-이스라엘 출신의 인디 가수에서 스타 싱어송라이터로 하루아침에 신분 상승을 하게 된다. 빌보드 핫100 7위까지 오르는 한편 고국인 프랑스와 이스라엘에서는 엄청난 스타가 된 것이다. 레이블도 없이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두 번째 앨범을 녹음했던 Yael Naim은 애플 광고 덕분에 단숨에 스타로서의 ‘New Soul’을 갖게 된 셈이니 제목 한번 잘 짓고 볼 일이다.

“나는 새로운 영혼 / 나는 이 이상한 세상에 왔다 / 어떤 것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알 수 있기를 기대하며”(“I’m a new soul / I came to this strange world / Hoping I could learn a bit ’bout how to give and take,”)라는 광고 속 ‘New Soul’의 가사 또한 새로운 맥북 에어의 등장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걸 보면 맥북에어 광고와 Yael Naim의 ‘New Soul’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iPad, Chilly Gonzales ‘Never Stop’ (2010)

2013년 Electronic Beats Festival에서 랩과 함께 라이브로 ‘Never Stop’을 연주하는 Chilly Gonzales

칠리 곤잘레스를 설명할 수식어는 너무도 많다.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노련한 프로듀서, 마이너코드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랩 실력까지 출중한 캐나다 출신의 천재 뮤지션. (실제로 본인 스스로를 Musical Genius라고 부른다) 27시간의 피아노 솔로 콘서트 기록을 가진 괴짜 아티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잘 알려진 수식어 한가지. 애플 아이패드 광고 속 바로 그 음악의 연주가이자 작곡가.

처음 애플 측에서 칠리 곤잘레스의 ’Never Stop’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을 때 사실상 이 곡은 제대로 된 mp3 버전조차 없는 상태였다. LP로만 나와 있었기 때문에, 시중에는 LP를 컴퓨터에 불법 복제한 버전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 애플은 아는 사람만 아는, 들어본 사람만 들어본 그 음악 한 곡을 신제품 광고에 쓰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사례 하나만 봐도 애플이 자신들의 광고에 쓰일 음악에 대해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다.

2010년 애플의 iPad 광고 시리즈 중 ‘Electric’ 편

 

 

iPhone5, Rob Simonsen ‘blue’ ‘red’ ‘green’ (2013)

iPhone5 광고 중 Rob Simonsen이 작업한 ‘Red’가 쓰인 ‘Music everyday’ 편
iPhone5 광고 중 Rob Simonsen이 작업한 ‘Blue가 쓰인 ‘Photo everyday’ 편
iPhone5 광고 중 Rob Simonsen이 작업한 ‘Green’이 쓰인 ‘Facetime everyday’ 편

2013년 아이폰5를 출시하면서 애플은 광고에 적합한 배경음악을 찾기 위해 집요함을 발휘하는 대신, 뛰어난 작곡가를 섭외한다. 그리고 아이폰5 광고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 작곡가는 다름 아닌 롭 시몬센(Rob Simonsen). 이름은 낯설지만 그가 한 작업들은 아마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500일의 썸머> <라이프 오브 파이> <세상의 끝까지 21일> <머니볼> 등의 영화 음악을 작업한 롭 시몬센은 할리우드 리포트의 ‘A리스트에 자리 잡은 15명의 작곡가’에 선정되기도 한 유명한 아티스트.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맥을 사용한 데다 이미 2개의 아이패드, 2개의 맥북프로, 4개의 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애플 광팬인 롭 시몬센은 애플을 향한 그 무한한 애정을 아이폰5 광고 음악에 모조리 쏟아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만들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애플은 좋겠다. 이런 멋진 재능을 가진 광팬이 있어서 말이다.

 

 

iPhoneX, Sofi Tukker ‘Best Friend’ (Feat. Nervo, The Knocks and Alisa Ueno) (2017)

iPhoneX 소개 영상

소피(Sophie Hawley-Weld)와 투커(Tucker Halpern)는 브라운 대학 졸업반일 때 처음 만났는데, 둘 다 아트 갤러리에서 앞뒤 순서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소피는 어쿠스틱 보사노바 곡을 연주했고, 투커는 그날 밤 공연의 DJ였던 것. 우연히 일찍 와서 소피의 공연을 본 투커는 그 자리에서 소피의 노래 중 하나를 리믹스했고, 그 노래가 마음에 쏙 들었던 소피는 그 이후로 쭉 투커와 함께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탄생한 그룹이 바로 소피 투커(Sofi Tukker). 2016년 7월 첫 앨범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Drinkee’라는 노래로 2017년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로 주목받는 그룹이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그룹은 아니었다. 아이폰X의 소개 영상에 소피 투커의 음악이 쓰이기 전까지는. 2017년 아이폰X가 소개되자마자 소개 영상의 배경음악이었던 소피 투커의 ‘Best Friend’는 유투브에서 조회수 800만을 기록한다.

Sofi Tukker ‘Best Friend’ (Feat. Nervo, The Knocks and Alisa Ueno)

이 그룹에게 애플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하지만 우리에게도 애플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애플의 선택 덕분에 이토록 매력적인 그룹을 알게 되다니. 애플의 높은 안목을 감사히 여기며 이국적이면서도 중독적인 멜로디를 가진 이들의 또 다른 노래도 한번 들어보자. 아마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Sofi Tukker ‘Drinkee’

 

메인 이미지 via ‘AdStasher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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