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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맨 좌측)과 릴 하딘 암스트롱(맨 우측)


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타를 단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을 선택할 정도로 그는 재즈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태생으로 미시시피강의 유람선 상에서 코넷 연주를 하던 그는, 먼저 북부 대도시로 진출한 고향 선배 조 ‘킹’ 올리버(Joe ‘King’ Oliver)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시카고로 간다. 이때가 1922년, 지방 음악이었던 재즈가 대중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전국구 스타가 탄생하는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루이 암스트롱은 조 ‘킹’ 올리버의 크레올 밴드에서 차츰 명성을 쌓으며 밴드 동료였던 피아니스트 릴 하딘(Lil Hardin)과 사랑에 빠져 1924년 결혼에 이른다. 그녀가 루이 암스트롱의 둘째 부인 릴 하딘 암스트롱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솔로로 유명한 초기 히트곡 ‘Struttin’ With Some Barbecue’
릴 하딘이 작곡했다


루이 암스트롱이 최초의 재즈 스타로 부상한 데는 릴 하딘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남편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았으나, 그에게 쇼비즈니스 감각과 야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카고와 뉴욕에서의 밴드 연주자로서 얻은 괜찮은 수입과 욕실이 있는 아파트 생활에 만족하던 그에게, 릴 하딘은 더 나은 수입과 명성을 위해 모험을 감행할 것을 종용한다. 루이 암스트롱은 조언에 따라 당시 인기를 누리던 시카고의 조 ‘킹’ 올리버 악단과 뉴욕의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뛰쳐나와, 부인과 함께 독자적인 밴드를 구성한다. 재즈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스타 밴드 Hot Five 또는 Hot Seven이 탄생한 것이다.

Hot Five의 히트곡 ‘West End Blues’(1928)
암스트롱의 초기 솔로 연주와 최초의 스캣(Scat) 녹음으로 유명하여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곡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처음 시카고로 올라왔을 때 암스트롱은 남부의 시골뜨기였고 전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옷 입는 법, 머리 자르는 법, 대화하는 법, 그리고 행사나 공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친 이가 릴 하딘이었다. 그에게서 ‘촌스러움’을 들어낸 것이었다. 처음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미 이혼 경험이 있던 그녀는 별거 중이던 암스트롱이 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도록 도왔고, 밴드의 이인자에서 벗어나 함께 그들만의 밴드를 구성했다. 함께 공연할 때는 ‘가장 위대한 트럼펫 연주자(The World’s Greatest Trumpet Player)’라는 대형 플래카드로 재즈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NBC의 시카고 재즈 프로그램(1961)에 출연한 릴 하딘
그는 1920년대부터 자신의 밴드를 구성하여 시카고의 스윙재즈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7분경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7년 차인 1931년부터 별거에 들어가 1938년 공식 이혼한다. 하지만 헤어진 후에도 두 사람은 각자 밴드를 이끌며 평생을 친구 사이로 남았다. 헤어진 후에도 그녀는 자신을 ‘Mrs. Louis Armstrong’으로 불렀으며 그의 성을 계속 사용했다. 은퇴 후 재단 기술을 배웠을 때 가장 먼저 만든 옷이 암스트롱을 위한 턱시도였으며 그 또한 기쁘게 입고 다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1971년 암스트롱이 사망하였을 때 그녀는 상실감에 많이 괴로워했고, 장례식이 끝난 지 몇 달 후 그에 대한 TV 추모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무대에 오르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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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 부부가 화목했던 당시의 유명한 사진(1930)


릴 하딘 암스트롱은 스윙이 최고조로 유행하던 시카고의 선구적인 재즈 스타였다. 쿨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녀는 암스트롱과 헤어질 무렵 여성으로만 구성된 ‘All Girl Orchestra’를 최초로 구성하기도 했고, “나는 스윙을 위해 태어났다(I was born to swing)”란 모토를 달고 다니던 밴드 리더였다. 5년 전 GM이 자동차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썼다가 아시아 비하 가사로 곤욕을 치렀던 파로브 스텔라(Parov Stellar)의 인기 일렉트로 스윙곡 ‘Booty Swing’은 그녀의 솔로 자작곡 중 ‘Oriental Swing’을 70여 년 만에 리바이벌한 곡이다.

CaptionLil Hardin Armstrong의 ‘Oriental Swing’(1938)
Parov Stellar의 ‘Booty Swing’(2010)


릴 하딘은 음악 활동 중단 후 자서전을 준비하다가 혹시 암스트롱에게 누가 될까 봐 잠정 중단했다. 그러나 그녀는 암스트롱 사망 후 중단되었던 자서전 출간을 다시 준비하던 중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사망하였고 그녀가 쓰던 원고 또한 사라지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 중 내밀한 부분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