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내로라하는 최고의 배우들도 평생 한 번 수상하기 힘든 미국 아카데미상을 3회 수상한 단 여섯 명 중 한 명. 여성 중 가장 많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이름. 골든 글로브상의 경우 30회로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이 후보로 지명되었고 수상만 8회를 기록한 그 이름. 바로 메릴 스트립이다. 다양한 배역들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연기력과 모범적인 사회활동 경력 덕에 현대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그의 작품과 중요한 순간들을 둘러본다.

<철의 여인> 스틸컷>

 

<더 포스트>

The Post | 2017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배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앨리슨 브리, 밥 오든커크, 세라 폴슨, 캐리 쿤, 잭 우즈, 매튜 리즈, 브루스 그린우드
<더 포스트> 스틸컷

<더 포스트>는 2018년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자 메릴 스트립이 전미 비평가 위원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71년 보도된 역사적 실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언론인의 신념과 본분을 돌아보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여러모로, 메릴 스트립이 전년도 골든 글로브 공로상 수상 소감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하고 언론의 바른 역할을 강조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 있는 여러분과 우리 모두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는 분야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바로 헐리우드와 외국인들, 그리고 언론 종사자들.
(…)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언론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네요. 우리는 원칙 있는 언론이 필요해요. 격분이 일어날 때 권력자를 끌어내릴 힘을 가진 언론들이요.
(You and all of us in this room really belong to the most vilified segments in American society right now. Think about it: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This brings me to the press. We need the principal press to hold power to account to call them on the carpet for every outrage.)”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은 <워싱턴 포스트>의 첫 여성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역을 맡아, 참혹한 전쟁에 대한 정부 개입의 진실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정부 탄압의 위협으로부터 용기 있게 맞서 세상에 알리는 모습을 그린다. 1970년대 당대 남성 위주 사회에서 드문 여성 리더로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고 신념을 관철하면서도 우아한 품격을 지키는 그의 연기는 실존 인물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도 마치 역사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감상을 전한다.

영화 <더 포스트> 예고편

 

<맘마 미아!>

Mamma Mia! | 2008 | 감독 필리다 로이드 | 출연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줄리 월터스, 도미닉 쿠퍼, 아만다 사이프리드, 크리스틴 바란스키
<맘마 미아!> 스틸컷

<맘마 미아!>(2007)에서는 예순 가까운 나이에 40대 즈음으로 설정된 주인공 ‘도나’ 역을 맡아 실제 나이를 거스른 정열적인 캐릭터와 에너지 넘치는 노래, 안무를 소화해낸다. 특히나 이미 세계적으로 히트한 바 있는 뮤지컬 <맘마 미아!> 속 기존 도나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뒤덮는 메릴 스트립 표 도나의 강인한 인상은 뮤지컬 작품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영화 <맘마 미아!> 예고편

무엇보다 미혼모와 그 딸의 결혼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스토리, 곧 이전 시대에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부각되기 어려웠던 중년 여성의 삶을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맘마 미아!>의 이야기는 시대를 앞서간다. 이후 메릴 스트립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의 영화 <서프러제트>(2015)에 출연하였으며,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휴머니스트이다.”라고 답변해 논란을 빚었던 데에 대해서도 “나를 페미니즘에 대한 자기 정체화(self-identification)가 아닌 페미니즘적 행동으로 평가해달라.”고 이후 덧붙이며 자신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를 일부 거두게 했다.

 

<소피의 선택>

Sophie’s Choice | 1982 | 감독 앨런 J. 파큘라 | 출연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피터 맥니콜, 리타 카린, 스티븐 D. 뉴먼, 그레타 터큰, 조쉬 모스텔
<소피의 선택> 포스터

<소피의 선택>은 메릴 스트립에게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더 포스트> 속 워싱턴 포스트 최초 여성 발행인, 아카데미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안긴 <철의 여인>(2011)의 ‘마거릿 대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속 카리스마 넘치는 편집장 ‘미란다’ 역 등 강인한 리더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그는 이 영화에서 누구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연약한 개인의 고통을 연기한다.

<소피의 선택> 스틸컷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스타이런의 대표작 <소피의 선택>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2년 후 1인칭 화자 ‘스팅고’(피터 맥니콜)가 뉴욕에 정착한 폴란드 여성 ‘소피’를 관찰하며 그의 과거를 알아가는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붙잡혀 수용소로 보내지고 인종 대학살을 직접 경험하면서 인간으로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어야만 했던 소피의 괴로움과 그로 인한 정신적 붕괴가, 메릴 스트립의 다른 영화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결과 온도로 묘사된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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