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반, 가족 행사에 참석 중인 엠마

2009년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스토리뿐 아니라 패션, 음식, 인테리어, 풍경 등 모든 요소가 보는 사람을 매혹하는 아름다운 영화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역을 주로 맡았던 틸다 스윈튼의 새로운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도 이 영화에서 놓쳐선 안 되는 볼거리. 이탈리아의 유명한 ‘House Museum(Villa Necchi Campiglio)’이자 Necchi 가족 소유의 건물에서 촬영된 주인공의 집은 겉으로는 부르주아의 한없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로 보인다. 하지만 이 집은 주인공 ‘엠마’(틸다 스윈튼)에게는 폐쇄적이고 닫힌 공간이며 그를 길들인 공간이기도 하다. 외국인(러시아인)으로서 이탈리아 상류층 남자를 만나 원래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남편이 지어준 ‘엠마’라는 이름만으로 살아온 주인공. 자상한 듯 권위적인 남편, 자신의 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 이유 모를 우월감에 찬 시부모.

늘 정돈돼 있어야 했던 상류사회에서의 삶

시아버지가 자신의 생일에 후계자로 엠마의 남편인 ‘탄크레디’와 아들인 ‘에두아르도’를 동시에 지명하면서 집안의 균열이 서서히 시작된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던 엠마는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를 만나면서부터 차츰 달라진다. 그와 만나면서 생에 대한 기쁨과 활력을 맛보게 된 엠마는 자신의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완전히 잊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런 엠마의 심리상태는 외모의 변화로도 드러난다. 안토니오를 만나기 전의 엠마는 고급 브랜드의 단정한 원피스를 입곤 했다. 헤어스타일 역시 마찬가지, 어깨까지 오는 머리칼은 언제나 머리띠나 핀으로 고정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하지만 안토니오를 만난 후 엠마는 절제되지 않고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바뀌며 숏 커트 헤어스타일과 캐주얼한 바지에도 도전하기 시작한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는 그를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난 느낌을 준다. 원래 러시아 출신이지만 자기 자신과 과거를 잊고 살았던 엠마에게 안토니오의 존재는 그것을 일깨워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 요리사인 안토니오는 엠마의 주특기 요리인 러시아식 수프를 행사에서 완벽하게 선보임으로써 다시 한 번 엠마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며 원래 이름 ‘키티쉬’도 되찾게 해준다.

안토니오가 엠마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장면
안토니오의 식당에서 그의 요리를 먹으면서 음미하는 엠마
산레모(San Remo)에 있는 안토니오를 찾아간 엠마

엄마의 외도를 눈치챈 큰아들과 언쟁하던 중 아들이 실수로 죽게 되고, 장례식을 하면서 엠마는 점점 레키 가문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엠마가 남편에게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사랑한다고 실토한 후, 남편이 하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당신이 알던 나는 이제 없어요”라는 엠마에게 남편은 “넌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어”라고 말한 것.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고 이탈리아 상류 가문에 흡수되려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를 러시아에서 데려온 자신의 부속품 같은 여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다.

레키 가문의 호스트로서 마지막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엠마

얼핏 보기에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통속적이며 자주 다뤄지는 주제인 상류사회의 삶에 공허함을 느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매료되어 그 육체를 탐하고 가정을 버리는 이야기가 다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 엠 러브>는 통속적인 스토리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연출이 뛰어나다. 감독의 영상에 대한 이해와 카메라 앵글, 색감 대비, 음악 등 감각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출 덕분에 이 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느껴진다. 거기에는 엠마의 사랑 외에 무너져가는 중산층의 모습과 그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와 긴장감을 제대로 그린 이유도 한 몫하고 있다. 물론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훌륭하다. 구아다니노 감독과 제작자 겸 주인공인 틸다 스윈튼이 11년에 걸쳐 논의하고 대본까지 만든 영화이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오른쪽), 틸다 스윈튼(가운데) 그리고 안토니오 역의 배우 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왼쪽)
<I Am Love>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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