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히고 얼룩진 상처가 불규칙하게 드러난 선이 주는 친근감과 필름 촬영으로만 얻을 수 있는 고유의 입자감과 질감은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여전히 필름을 동경하는 이유가 된다. 에디터가 토마스 소빈(Thomas Sauvin)의 사진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말 열린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 ‘더 스크랩’을 통해서였다. 컬렉터이자 작가인 토마스 소빈이 모은 50만 장이 넘는 익명의 필름들은 1985년부터 2005년에 걸쳐있으며 중국에서의 아날로그 사진 유행의 역사를 설명하고 재구성한다.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전, 개혁개방으로 인한 급격한 세계화와 경제발전을 겪으며 격변의 시기를 보낸 중국인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아래의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자.


토마스 소빈은 중국에서 생활한 지 14년이 넘는 프랑스인이다. 2006년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AMC(Archive of Modern Conflict)의 고문으로 일하며 중국의 오래된 사진과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버려진 네거티브 필름을 모으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뾰족한 수는 없었고 인터넷에 무작정 ‘옛날 사진 회수(老照片回收)’라는 키워드를 쳐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베이징 끝자락에 위치한 곧 철거 예정이었던 재활용 단지를 알아낸다. 재활용 단지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는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종이를 담당하는 직원이 각각 따로 있는데 토마스 소빈이 컨택한 사람은 질산은(silver nitrate)을 추출할 수 있는 품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원이었다. 쉽게 말해 CD나 병원에서 나오는 엑스레이 사진, 네거티브 필름 같은 것들이 그 품목에 해당하는데, 그곳에서 토마스 소빈은 네거티브 필름만을 골라 쌀포대에 kg 단위로 구매했다. 그렇게 모인 필름들은 지속적으로 셀렉되고, 디지털화되고, 분류되어 오늘날 ‘베이징 실버마인(Beijing Silvermine, 北京银矿)’이라는 방대한 사진 시리즈를 이뤘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은 경제발전의 황금기를 맞았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가 확대되었으며 해외여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정마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보급됐고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 미제 브랜드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의 의식처럼 냉장고와 텔레비전에 손을 올리고 어색하게 연출된 사진을 찍었으며, 아이들은 누구나 ‘맥도날드 아저씨’ 옆에서 사진을 남기려 했다. 무엇보다 지금 30, 40년 전의 사진을 다시 들춰보는 일은 무척 낯설고도 흥미로운 감상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격변을 겪었던 인물들의 당시와 그들이 늘어놓은 시대적 부산물들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묘한 향수와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2015년 제작한 사진집 <Until Death Do Us Part(双喜)>
같은 해 11월 베이징 카파 아트 뮤지엄(CAFA Art Museum)에 열린 토마스 소빈의 전시


토마스 소빈의 ‘베이징 실버마인’ 시리즈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평단의 관심과 주목을 동시에 끌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미국, 호주, 중국 등에서 큰 전시를 열었다. 50만 장이 넘는 실로 방대한 양의 필름들은 토마스 소빈에 의해 여러 신선하고 독특한 테마로 묶이고 분류되어 5권의 사진집 형태로 발간되었다. 그중 중국 광둥성의 고급 담배 쐉시(双喜)를 모티프로 제작한 동명의 사진집 <Until Death Do Us Part(双喜)>는 1980~90년대 중국의 결혼식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만 따로 수집한 책이다. 108 페이지, 하드커버로 제작된 이 책의 케이스는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닌, 실제 쐉시의 담뱃갑이다. 한 권당 한 갑의 담배를 구매해 케이스로 이용하고 안에 들어있는 담배는 인쇄소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 사진집 구매는 토마스 소빈의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 가능하다.)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진화하는 토마스 소빈의 아카이브는 우리들에게 네거티브들 필름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오래되고, 버려진 것들로 부지런히 과거와 현재의 맞닿음을 이뤄내는 그의 작업을 죽 주목하자.

토마스 소빈이 네거티브 필름을 구하고 현상하고 재분류하는 과정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

 

Thomas Sauvin 홈페이지
Thomas Sauvin 인스타그램
Beijing Silvermine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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