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avio Leoni, <Chalk portrait of Caravaggio>(1621 추정)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되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기독교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추구하는 화풍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카라바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이를 작품에서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지곤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교인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으므로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성화로 그들을 감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 본연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려 했던 카라바조는 가톨릭 교회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그는 심지어 16세기 뒷골목을 오가는 불량배, 거지, 매춘부 등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그들을 예수로, 성자로, 막달라 마리아로 둔갑시켰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을 초월한 신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The Calling of Saint Matthew>(1599~1600 추정)


<성 마태의 소명>이라는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걸작 중의 하나로 예수님이 마태에게 그를 따르도록 영감을 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이와 같은 시기에 그린 <성 마태의 순교(Martyrdom of Saint Matthew)>와 나란히 현재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San Luigi dei Francesi)에 전시되어 있다.

 

어린 시절과 화가의 길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후작의 집사 겸 건축가였던 페르모 메리시의 아들로 밀라노 근처 카라바조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풍습에 따라 이름에 아버지 고향 이름을 붙였다. 13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명암표현법의 창시자로 그림 대부분을 암흑에 가깝도록 어둡게 처리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에 빛이 떨어지도록 하는 기법을 처음 시도하였다. 이는 연극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대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이다. 이는 인물표현이 아닌 내면적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며 인간의 내면 표출에 대한 예술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탄생하게 된 기법이다. 후에 렘브란트는 카라바조에게 크게 감명받아 그의 작업에 빛을 주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로마에서의 삶

<Supper at Emmaus(엠마우스에서의 만찬)>(1601)
이 그림에서 부활하신 예수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엠마우스에서 누가(Luke)와 글로바 (Cleopas)로 추정되는 두 제자 앞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가운데 앉아 오른손을 들고 있는 인물이 예수이며, 조개껍데기가 달린 옷을 입고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글로바이, 팔꿈치가 해진 옷을 입고 있는 또 다른 제자는 루크, 그리고 왼쪽에 서 있는 젊은이는 카라바조 자신이다



<Madonna of Rosario(묵주기도의 성모)>(1605~1607 추정)
몬테 델라 미세리코르디아 대성당에 있는 그림으로 그의 후기 걸작이며 ‘은총’을 주제로 한 7개의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매우 감정적이고 성격이 불같아 사람들과 시비에 자주 휘말렸다. 로마 시내를 돌아다닐 땐 항상 장검을 차고 다녔으며 사람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곤 하였다. 그러다 로마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후 교황령으로 내려온 수배령을 피해 나폴리, 시라큐사, 시칠리아, 팔레르모, 몰타 등을 떠돌아다니며 곳곳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삶을 연명을 해나간다. 그의 인생은 폭행, 살인, 결투, 투옥, 도피 등으로 점철되었으며 이러한 삶의 궤적 덕분에(?) 우리는 여러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몰타와 나폴리로의 도주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1607)
<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세례 요한의 참수)>(1608)
<Judith beheading Holofernes(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1598~1599 추정)


로마에서 사람을 죽인 카라바조는 몰타섬으로 먼저 도망쳤다. 몰타에 있는 동안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그곳에 있는 교회를 위해 <세례요한의 참수>를 그린 것이었다. 1608년 카라바조는 몰타수도회에서 ‘정의의 기사’로 인정받지만 곧 로마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이와 관련된 논쟁으로 다시 죄를 저지른 후 투옥된다. 이번에도 탈출에 성공한 카라바조는 나폴리로 간다. 몰타에서 시작한 또 하나의 중요한 그림은 교황에게 죄를 사면받기 위해 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떠올린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으로, 나폴리에서 완성하였다.

카라바조가 그린 참수 관련 그림은 대략 6편이 되는데 이는 살인을 하고 도망친 카라바조에게 교황이 최고형인 ‘Banda capitale’, 즉 누구든 그를 보면 목을 베어서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명령을 들은 카라바조는 악몽을 꾸며 두려움에 떨었고, 그의 그림 속 참수된 얼굴들은 대부분 카라바조 자신이라고 한다. 그는 사면을 요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시 로마로 가는 길에 불행히도 열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 화폐 10만 리라의 앞면을 장식하는 문화적 영웅이다. 또한 그의 그림은 인기가 매우 높아 다빈치 코드의 첫 장면에서 언급되었고, 가출옥한 영국의 죄수 한 명이 석방조건을 어기고 2005년 2월 런던에서 열린 카라바조의 특별전시회를 보다가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외의 카라바조 걸작들

<Saint Francis of Assisi in Ecstacy(법열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1595)
<Medusa(메두사)>(1598 추정)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동침한 후 저주받은 메두사, 그녀의 얼굴을 보는 이는 모두 돌이 되었다. 메두사 얼굴의 모티브도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라고 한다
<Narcissus(나르시스)>(1587~1599 추정)
<A boy with a flower basket(꽃바구니를 든 소년)>(1593 추정)

 

카라바조 관련 영화들

영화 <카라바조>(1986) 포스터
영화 <카라바조>(2007) 포스터
영화 <I.M. Caravaggio>(2011) 포스터


카라바조는 두세 번 정도 영화화되었는데 많이 알려진 것은 영국에서 데릭 저먼 감독의 영화로 1986경에 제작된 버전이다. 또한 비교적 최근인 2007년에 이탈리아에서 안젤로 롱고니 감독 버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1986년 영화는 배우 숀 빈과 틸다 스윈튼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아래 트레일러를 통해 앳된 틸다 스윈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카라바조>(1986) 트레일러
영화 <카라바조>(2007) 트레일러, 로맨스 영화 같은 분위기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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