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즐길 수 있다’고 했을 때, 여기서 ‘가볍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다. 비싸지 않아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일 수도 있고, 와인의 바디감 자체가 가벼운 와인일 수도 있으며, 굳이 와인바나 레스토랑에 찾아가지 않아도 주위 마트나 백화점, 와인 숍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와인일 수도 있다. 여기에 큰맘 먹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잔할 수 있는 와인이란 의미까지 더해진다면 좋겠다. 사실 와인이란 그리 거리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술이니까.

아래에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들을 추천한다. 모두 5만 원 이하의 가성비 좋은 와인들이자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와인으로 골랐다. 오늘 저녁 와인 한잔 어떤가?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런던 제임스 스트리트에 자리한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와인숍


런던의 제임스 스트리트에는 300여 년 역사를 가진 와인 매장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양한 고급 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영국의 유서 깊은 와인 유통 회사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Berry Bros. & Rudd)다. 전 세계 유명 와인생산자들의 와인을 영국에 유통하고 있는 이 회사가 지난 11월 홈플러스와 손잡고 한국에 런칭했다. 한국에 소개한 와인은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의 자사 PB제품들인 ‘더 와인 머천트(The Wine Merchant)’ 레인지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와인들이 위주다.
스페인의 레드, 화이트, 로제 3가지가 가장 저렴한 가격대인 12900원에 출시됐고, 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49900원에 출시되며 현재까지 소개된 전체 라인업이 모두 5만 원 미만의 가격. 하지만 퀄리티는 놀랍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인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트래디셔널 클라렛(Berry Bros. & Rudd, Traditional Claret)은 런칭 당시 시음행사에서 와인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와인이고,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프로방스 로제(Berry Bros. & Rudd, Provence Rose) 또한 좋은 반응을 얻은 와인이다. 이는 모두 와인전문가 중에서도 최고 권위로 인정받는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W)들의 선택이다.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에는 여섯 명의 마스터 오브 와인이 와인 개발과 교육을 맡고 있는데 이는 세계 와인회사 중 가장 많은 숫자다. 한국 런칭 이후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의 와인들은 모두 홈플러스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디스 리미티드 셀러 릴리즈

하디스 리미티드 셀러 릴리즈 샤도네이(좌)와 피노 누아(우)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호주 와인 브랜드로 꼽히는 하디스(Hardys)에서 출시한 프리미엄 와인. 하디스가 좋은 품질의 포도를 찾기 위해 야라 밸리와 태즈매니아, 라임스톤 코스트 등 호주의 세분화된 지역에 투자해 생산해낸 훌륭한 결과물이다. 한국에서 쉬라즈, 까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샤도네이 4종을 선보였는데 런칭 후 가격 대비 뛰어난 퀄리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와인은 리미티드 셀러 릴리즈 피노 누아(Limited Cellar Release Pinot Noir).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는 지역인 야라 밸리에서 생산한 포도를 사용했고 딸기, 체리 향의 아로마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인상을 남기는 와인이다. 호주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인 라임스톤 코스트에서 생산한 샤도네이로 만든 리미티드 셀러 릴리즈 샤도네이(Limited Cellar Release Chardonnay)도 훌륭하다. 복숭아와 배의 아로마와 오크 향이 잘 어우러지는 와인. 맛보고 나면 모두 가격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18900원으로 홈플러스에서 구입할 수 있다.

 

 

두르뜨 뉘메로 엥

두르뜨 뉘메로 엥 루즈(좌)와 블랑(우)


역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와인 중에서 가성비 좋은 보르도 와인으로는 두르뜨 뉘메로 엥(Dourthe, Numero 1)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겠다. 두르뜨는 세계적 와인전문지 디캔터가 ‘보르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라 표현한 바 있다. 선택의 폭이 매우 넓은 보르도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와이너리로 자리 잡은 것은 믿을 수 있는 퀄리티로 다양한 와인을 선보인 덕분. 특히 합리적인 가격대의 두르뜨 뉘메로 엥은 두르뜨의 대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메를로 60%, 까베르네 소비뇽 35%, 쁘띠 베르도 5%를 블렌딩한 두르뜨 뉘메로 엥 루즈(Dourthe, Numero 1 Rouge)는 보르도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레드 와인이며, 소비뇽 블랑 100%인 두르뜨 뉘메로 엥 블랑(Dourthe, Numero 1 Blanc)은 산뜻하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다. 지난 2016년 타계한 화이트 와인의 거장 드니 뒤부르디유가 함께 연구개발한 와인이기도 하다. 와인숍 비노솔, 와인스아울렛, 그리고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일부 지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레자망 드 몽페라 화이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한 이후 십수 년간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샤토 몽페라는 보르도 앙트르 뒤 메르(Entre-Deux-Mers) 지역의 와이너리. 와인의 맛과 향의 농도를 높이고 건강한 포도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세계적 와인양조 컨설턴트 미쉘 롤랑과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샤토 몽페라의 세컨드 와인인 레자망 드 몽페라(Les Amants de Mont-Perat)는 프랑스어로 ‘몽페라의 연인들’이란 의미로, 깔끔한 레이블에는 두 사람을 묘사한 조각 작품이 있다. 샤토 몽페라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에 세미용을 블렌딩한데 비해, 레자망 드 몽페라 화이트(Les Amants de Mont-Perat Blanc)는 소비뇽 블랑 50%에 뮈스카델 50%를 블렌딩해 보다 산뜻한 느낌으로 편하게 마시기 좋다. 풋풋한 사과 향과 시트러스 향이 느껴지며 샐러드나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샤토 몽페라와 레자망 드 몽페라 모두 이마트와 와인앤모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판티니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쪼


와인을 자주 마시는 와인애호가들, 혹은 와인이 직업인 이들에게는 각자 일상 속에서 믿고 마시는 브랜드가 있다. 그런 와인은 때론 박스째 사두기도 한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buy it by the car load”라며, 한마디로 ‘트럭째 살 만한 와인’이란 식으로 극찬한 와인이 바로 판티니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쪼(Fantini Montepulciano D’Abruzzo)다. 어떤 와인이길래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평론가가 그런 표현을 했을까? 판티니는 2017년 ‘베스트 이탈리아 와이너리’로 선정된 아브루쪼 지역의 파네세 그룹에 소속된 브랜드. 이탈리아 토착품종인 몬테풀치아노를 100% 사용했고, 집중도 높은 과실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적당한 바디감과 깔끔한 타닌으로 여운을 남기는 와인이다. 이 와인에게 찬사를 보낸 이는 로버트 파커만이 아닌 모양. 영국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에서 금메달, 와인전문지 디캔터에서 은메달, 소믈리에 와인 어워즈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와인앤모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퀘르치올리 람브루스코 레지아노 드라이


스파클링 와인도 빠질 수 없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지역에 자리한 메디치 에르메테(Medici Ermete)에서 생산하는 와인. 메디치 에르메테는 19세기에 설립된 와이너리로 전체 생산량의 80%가 람브루스코 품종이며, 세계에서 최초로 람브루스코 와인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화이트나 로제 스파클링뿐 아니라 레드 스파클링을 생산한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바로 퀘르치올리 람브루스코 레지아노가 검붉은 루비빛의 레드 스파클링 와인이다. 레이블의 무늬가 초록색이면 드라이하고, 레드 무늬면 스위트하다. 특히 퀘르치올리 람브루스코 레지아노 드라이(Quercioli Lambrusco Reggiano Dry)는 산뜻한 산도와 크리미한 버블이 어우러져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기에 좋고, 낮에 스낵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에도 적당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와인과 음식 전문 매체인 감베로로쏘로부터 ‘2 Glasses’를 수상한 바 있는 이 와인은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일부 지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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