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출간한 <노르웨이의 숲> 표지 그림이 거장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두 한 권은 읽어봤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미지 하나로 이루어진 표지는 언뜻 단출해 보이지만, 그 표지엔 이유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 이우환 <선으로부터>

<노르웨이의 숲> 표지


1989년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노르웨이의 숲>은 흔들리는 청춘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민음사는 이 소설이 고전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2013년 원제를 살려 새로이 출간했다. 이때 쓰인 표지 작품이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1974). 신입생의 어설픔, 연애와 섹스 등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도 내내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이 소설은 이우환 화백의 그림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끝없이 나열된 푸른 빛 선은 북유럽에 빽빽이 자라난 침엽수를 떠오르게 하며, 많은 이의 내면에 똬리를 튼 나약함과 고독을 건드린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 마우리츠 에셔 <그리는 손>

<픽션들> 표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름만큼 그의 작품 역시 이해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픽션들>은 총 17편이 실린 보르헤스의 단편집. 읽다 보면 이게 꿈 이야기인지 실재를 서술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결국 너무나 낯선 세계에 들어온 자신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으로 보르헤스가 말하려는 건 인생은 미궁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 <그리는 손>(1948, Drawing Hands)이 표지에 삽입된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회화와 건축을 함께 공부한 마우리츠 에셔는 지중해를 여행하며 수학적 요소를 반영한 그림에 심취한다. <그리는 손>은 평면과 입체, 차원을 오가는 그의 스타일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작품. 어떤 손이 무얼 그리고 있는지, 손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그림은 보르헤스 소설과 어울리는 짝이다.

마우리츠 에셔, <그리는 손>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 니콜라스 드 스타엘 <누워 있는 여자>

<모래의 여자> 표지


아베 코보가 쓴 <모래의 여자>는 제목처럼 메마르고 숨이 턱 막히는 소설이다. 모래에 파묻혀 죽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필사적으로 모래를 퍼내며 살아야 하는 여자와 졸지에 그와 같이 지내게 된 남자의 이야기. 그들의 삶을 답답하게 들여다보다가 종내 마주하게 되는 건 놀랍게도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표지를 장식한 작품은 러시아 출신의 화가 니콜라스 드 스타엘(Nicolas De Stael)이 그린 <누워 있는 여자>(1955, Reclining Nude). 진득한 물감은 캔버스의 작은 틈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빼곡히 채워졌고, 여기저기 덧칠한 듯한 붓질은 거칠다. 검붉은 하늘과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일상에 매몰되는 소설 속 인물과 닮았다.

니콜라스 드 스타엘, <누워 있는 여자>

 

 

외젠 다비 <북호텔> / 에드워드 호퍼 <선로 옆 호텔>

<북호텔> 표지


프랑스 작가 외젠 다비의 소설 <북호텔>. 책(Book)이 있는 호텔 말고, 북쪽(North)에 있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외젠 다비는 귀족적 취미에 반대하며 민중의 실제 삶과 가까운 장면을 담는 작가였다. <북호텔>은 이러한 사조가 정확히 드러나는 작품. 주인공은 무너져가는 호텔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하고 그 안엔 별별 사람이 모여든다. 술 취해 주정하고,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병들어 지친 몸을 누이려 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담담히 그린 이 책의 표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선로 옆 호텔>(1952, Hotel by a railroad). 에드워드 호퍼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국 화가로 미국인의 일상을 무심하게 그렸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 역설적으로 보는 이에게 끝없는 여지를 남긴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드 호퍼와 외젠 다비는 닮았고, 그래서 <선로 옆 호텔> 속 인물이 <북호텔>의 주인공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다. 평범한 사람을 담은 소설과 그림, 우리 삶도 들여다보면 예술일지 모르겠다.

에드워드 호퍼, <선로 옆 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이외에도 마르크 샤갈, 에곤 쉴레, 앙리 마티스 등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화가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소설과 표지 그림 사이 접점을 찾아보는 것도 책에서 얻는 새로운 기쁨이겠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표지 그림 마르크 샤갈 ‘생일’(1915, Birthday)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표지 그림 앙리 마티스 ‘춤’(1910, Dance)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표지 그림 에곤 쉴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 Self Portrait with Physalis)

 

크리스타 볼프 <나누어진 하늘>
표지 그림 훈데르트바서 ‘It Hurts to Wait With Love’(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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