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전 세계의 시청자도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드는 시즌, 바야흐로 올림픽이다. 선수들뿐 아니라 마케팅을 하는 이들에게도 올림픽은 4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이자 최고의 무대. 그리하여 올림픽에는 각국의 선수들과 함께 마케팅 좀 한다 하는 선수급 마케팅 전문가들이 올림픽을 겨냥한 광고를 가지고 모여든다. 수억의 세계 인구들을 사로잡기 위해 펼치는 그들의 경쟁은 올림픽을 흥미롭게 만드는 일종의 번외 경기랄까.

평창 올림픽이 막을 올린 지금, 그동안 주목받았던 올림픽 광고들을 모아봤다. 물론 평창 올림픽을 겨냥한 광고도 준비되어있다. 수억의 돈과 영상미, 감동적인 메시지를 무기로 승부를 펼치는 이 번외 경기를 놓치지 말자. 올림픽의 명장면을 놓치는 것만큼이나 이 광고들을 놓치는 것도 두고두고 아까운 일이 될 테니까.

 

BBC Sports의 올림픽 광고들

BBC Sports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광고 ‘The Fearless are Here’

BBC 스포츠의 평창 올림픽 광고가 지난 1월 20일 공개되었다. 올림픽 중계를 맡은 영국의 BBC 스포츠 채널에서는 행여나 사람들이 올림픽에 대한 흥미를 잃을까 봐 광고를 만들어 올림픽 기간 내내 방영을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는 흔한 올림픽 광고와는 다르게 BBC 스포츠의 올림픽 광고는 나름의 색다른 전통이 있다. 개최국의 특성이 반영된 매력적인 스토리의 애니메이션과 그 애니메이션 안에 절묘하게 녹아있는 각 스포츠 종목들이 바로 그것. 수십 년 동안 쌓여온 이 전통은 BBC 스포츠만의 전통을 넘어 나름 세계 광고제에서도 인정받는 전통이 되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 광고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광고로 꼽히는 혼다의 ‘Grrr’를 제작했던 Smith & Foulkes 듀오가 감독을 맡아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선수들이 자신 안의 두려움과 싸운다는 다소 추상적인 스토리의 애니메이션은 VR 영화 촬영 소프트웨어로 구현해낸 선수들의 입체적인 움직임으로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거기에 검은색, 흰색, 빨간색 세 가지 색을 기반으로 한 심플한 이미지에 한국의 전통악기인 북소리가 가미된 BGM까지. 과연 긴 시간 쌓여온 그 연륜과 전통은 무시할 수 없구나 싶다.

BBC Sports의 2016 리우 올림픽 광고 ‘The Greatest Show on Earth’

혹시 평창 올림픽 광고만으로는 긴가민가한 사람들이 있을까 봐 2016년 리우 올림픽 광고까지 준비해보았다. 아마존을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 속 열대우림은 얼마나 생생한지, 동물들에 비유한 선수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절묘한지, 미드 ‘워킹데드’와 ‘왕좌의 게임’ 등의 수록곡을 만든 영국 아티스트 Jamie N Commons의 곡 ‘Not Gonna Break Me’는 또 얼마나 BGM으로 잘 어울리는지, 하나하나 곱씹으며 감상하다 보면 아마 BBC 스포츠의 올림픽 광고가 가진 전통의 매력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BBC Sports의 뱅쿠버 동계올림픽 광고

이눅슈크(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로고)의 일부분을 가져간 괴수를 쫓는 과정을 동계 올림픽 종목으로 구현한 밴쿠버 동계 올림픽 광고는 또 어떤가. BBC 스포츠의 역대 올림픽 광고 영상들을 보다 보면, 다음 올림픽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게 된다.

 

Channel 4의 2012 런던 패럴림픽 광고 ‘Meet the Superhumans’

때는 2010년. 영국 공영방송 Channel 4는 런던 패럴림픽의 중계권을 가져오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한다. BBC가 중계했던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보다 방영시간을 더 늘리겠다고. 그래서 패럴림픽이 올림픽의 곁다리 이벤트가 아닌 메인 이벤트가 되도록 하겠다고. 그리고 2년 뒤, Channel 4는 그 약속을 지키긴 지켰다. 예상했던 것보다 좀 과하고 멋지게.

런던 패럴림픽의 공식 방송사로 Channel 4가 선정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영국 국민의 14%만이 패럴림픽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던 것과 다르게 패럴림픽 개막식을 지켜본 건 무려 1,180만 명의 시청자들이었다. 이건 10년 만에 가장 많은 시청자 수였다. 모든 것은 Channel 4가 작정하고 준비한 한 편의 광고로 가능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끝날 무렵, Channel 4는 올림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Meet the Superhumans’라는 제목의 광고를 온에어한다. 패럴림픽 선수들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 Superhuman, 즉 초인간으로 규정한 이 광고는 동정심과 연민에 기대던 기존의 패럴림픽 관련 광고들에게 보기 좋게 한 방을 날린다.
물론 모든 성공 캠페인이 그렇듯 쉽게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의 훈련시간 때문에 16일 동안 정해진 시간만 전국의 패럴림픽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였던 로리 프라이(Rory Fry)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카메라 각도를 찾기 위해 팬텀(Phantom), 알렉사(Alexa) 및 캐논(Canon) 5D를 포함하여 10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는가 하면, 굴착 장치를 새롭게 발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촬영 영상만으로 부족해 자료 화면도 넣어야 했는데 이 두 가지 영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선수들이 장애를 가지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에 해당하는 플래시백 장면을 어느 부분에 넣어야 할지도 편집에서는 굉장한 고민이었다. 그러한 비하인드에 연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감 나게 와 닿게 하는 그 편집점. 영상을 보다 보면 깊이 고민할 가치는 충분했던 듯하다. 그들이 목표했던 바가 확실히 느껴지니 말이다.

Channel 4의 2016 리우 올림픽 패럴림픽 광고 ‘We’re the Superhumans’

2012년 런던 패럴림픽의 성공에 힘입어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도 Superhumans 캠페인은 멈추지 않는다.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2012년의 광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엔 더 넓은 범위의 장애인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패럴림픽 선수 39명은 물론 장애를 가진 여러 국가에서 온 140명의 사람이 출연하는 이 광고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휠체어 스턴트맨은 물론, 장애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빅 밴드 앙상블, 폴란드의 팔 없는 카레이서, 발로 조종하는 파일럿, 발로 연주하는 드러머까지. Sammy Davis Jr.의 ‘Yes I Can’을 흥겹게 따라 부르며 영상을 보고 나면 어느새 평창 패럴림픽도 평창 올림픽만큼이나 기대하게 된다. 편견도 연민도 없는 또 하나의 축제 그 자체로서의 패럴림픽. 몇 분짜리 영상이 이렇게나 힘이 있다.

 

언더 아머(Under Armour)의 마이클 펠프스 헌정 광고 ‘Rule Yourself’

Under Armour 'Rule Yourself' for Michael Phelps

스포츠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먹히는 스토리’ 몇 가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접전 끝에 다윗이 이긴다)과 라이벌의 피할 수 없는 승부, 그리고 왕의 귀환. 은퇴한 영웅이 방황 끝에 돌아와 다시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면 이 기막힌 스토리를 놓칠 광고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언더 아머(Under Armour)도 마찬가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4번의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만 22개.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이룰 것은 다 이루었다며 은퇴한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 은퇴 후 각종 스캔들과 음주운전으로 방황하던 펠프스가 리우 올림픽을 통해 국가대표 복귀를 선언하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언더 아머는 펠프스에게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The Kills의 ‘The Last Goodbye’를 배경으로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고독하고 치열한 훈련을 하는 그의 모습을 담은 펠프스 복귀 기념 광고를 만든다. 리우 올림픽에서의 펠프스가 낼 성과에 언더 아머가 쏟아부은 마케팅 비용의 운명이 걸려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결과는? 물론 예상했다시피 대성공.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다섯 개와 은메달 한 개를 거머쥔 펠프스 덕분에 언더 아머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둬들였고, 올림픽 공식 스폰서가 아님에도 올림픽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1위인 나이키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덤. 이 모든 걸 펠프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펠프스의 복귀 성공을 내다봤던 언더 아머의 예지력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심지어 이 광고는 2016년 칸 광고제 필름 크래프트 부문 그랑프리까지 수상한다. ‘It’s what you do in the dark, that puts you in the light’(어둠 속에서의 노력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라는 광고 속 카피는 펠프스 뿐만 아니라 언더 아머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셈. 그렇게 언더 아머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에게 올림픽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올림픽 광고로서 성공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P&G의 ‘Thank you, Mom’ 캠페인

세상에는 1분 안에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엄마’. 그래서 어렸을 적 수련회 교관들이 그렇게도 밤마다 촛불을 들고 엄마를 떠올리라고 했나 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사춘기 아이들을 한순간에 조용히 눈물짓게 만드는 법을 일찌감치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패기’나 ‘열정’, ‘노력’과 ‘기적’과 같은 수많은 올림픽용 단어들에 질릴 때쯤, 올림픽 공식 스폰서 P&G는 슬그머니 ‘엄마’라는 단어를 들고나온다. 이 마법의 단어 ‘엄마’에 집중한 P&G의 올림픽 캠페인은 마침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선을 보인다. 올림픽 광고로는 처음으로 선수의 열정도, 선수의 실력도 아닌 선수의 엄마에게 시선을 돌린 이 광고는 런던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 선수 입장 직전에 미국에서 방영되어 수많은 시청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물론, 2012년 칸 광고제 필름 부문에서 골드를 수상하는 등 175년 P&G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으로 거듭난다. 캠페인 제목 ‘Thank you Mom’처럼 이 모든 영광은 엄마들에게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빛낼 광고는 과연 무엇일까. 오늘부터 경기 결과나 메달 개수만큼이나 광고도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혹시 모르지 않나, 올림픽보다 더 흥미로운 올림픽 광고를 접하게 될지도.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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