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력만 출중한 스타강사 대신, 외모와 끼로 팬덤을 모으는 ‘아이돌 강사’가 대세다. 이는 수능뿐 아니라 공무원 시험, 토익·토플, PEET(약대 입시) 등 시험 전반의 현상이다. 아이돌 강사의 세계를 더 들여다보자.

 

인강강사라는 판타지

이지영 쌤 스티커 굿즈 (이미지 출처= 이지영 블로그)(좌), 조정식 쌤 팬무비 스틸(우)

요즘 수험생들은 강사의 얼굴이 그려진 옷과 에코백, 노트, 머그잔 등 ‘인강강사 굿즈’를 모은다. 강사 움짤, 팬 무비 등을 제작해 직접 운영하는 SNS 팬 계정에 올린다. 분필을 어떤 손가락으로 쥐는지, 칠판을 얼마나 깔끔히 지우는지, 자음 ‘ㄹ’만 크게 쓰는 판서 습관, 손가락 모양과 추위를 타는 정도까지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강사끼리 연인으로 어울리는가를 투표한다. 강사들의 과거 사진과 성형 및 결혼 여부, 키순서가 ‘찌라시’로 나돌며, 강사 애칭을 문신으로 새겼다는 경험담까지 있을 정도다.

이지영 쌤 팬 인스타(좌), 정승제 쌤 팬 유튜브(우)

인강강사 ‘덕질’ 코스도 있다. 좋아하는 강사의 인강을 섭렵하고, 유독 멋있었던 의상이나 매력적인 표정이 많았던 강의는 수십 번 반복해 본다. 그래도 부족하면 경쟁률이 치열한 현장강의 ‘티켓팅’에 성공해 ‘실물영접’을 하거나, 아예 조교가 되어 강사와 친분을 쌓는다(끝판왕은 강사와 연애하기다). 이런 ‘팬질’은 수험생활이 끝나도 계속되기도 한다.

아이돌 팬덤에서도 인강강사는 인기 있는 판타지다. 예전에 스타강사를 유사 연예인이라고 했다면, 이제 역으로 아이돌이 ‘인강강사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이돌이 정장 차림에 뿔테안경을 쓰거나, 검지를 내미는 등의 모습을 ‘인강강사적 모멘트(인강강사 같은 순간)’라며 설레한다. 아예 아이돌을 인강강사처럼 연출한 팬아트를 만들기도 한다. ‘넘사벽’ 외모의 아이돌에, 넘사벽 스펙의 지성미가 더해지는 효과 덕분이다.

 

스타강사 지고, 아이돌 강사 뜬다

강사 프로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댄리(‘영단기’), 심민호(‘오르’), 그웬(‘영단기’), 김소라(‘파고다’)

아이돌 강사는 외모부터가 스타강사와 다르다. 탈색과 형형색색의 염색은 기본, 마릴린 먼로가 그려진 황금색 재킷을 입고 스냅백을 쓰며, 호피 무늬에 징이 박힌 로퍼를 신는다. 영어 강사 조정식 씨는 강의 첫 멘트가 ‘튀는 스타일, 뛰어난 패션 감각’이며, 사회문화 강사 이지영 씨는 옷방이 5개라고 밝힐 정도로 외모를 적극적으로 계발·활용한다. 또 ‘한국의 스탠딩 코미디의 미래는 인강강사에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사들의 입담은 수준급이다. 스쿼트 영상(문동균)처럼 강의와 상관없는 특기를 보여주는 등 ‘끼’도 많다. 팬 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수강 후기 전체 답변은 기본이고 호텔에서 팬 미팅을 열어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스티커, 노트를 친필사인과 함께 선물한다. 스토킹을 당했다는 일화(이지영)마저 아이돌스럽다.

방송계에서는 일찍이 강사들의 끼를 알아봤다. JTBC <비정상회담>이 섭외한 중국어 강사 장위안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사 강사 문동균 씨는 SBS <짝>에, 공신 강성태 씨는 SBS <양세형 숏터뷰> 등 방송에 다수 출연했다. 방송 제의를 받았으나 출연하지 않았다고 밝힌 강사들도 수두룩하다. 아예 아이돌(안미정)과 개그맨(권필)이 인강강사로 ‘역진출’하기도 한다.

 

인강강사 아이돌화 배경: 엔터테이너 역할 + 플랫폼 확장

강사 팬 미팅 마케팅, 이장규(‘이투스’)(좌), 문정아(‘문정아중국어’)(우)

인강강사의 아이돌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장 강사와 달리 오직 청각과 시각 정보로만 수강생의 눈과 귀를 잡아두려면, 엔터테이너 자질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확장은 이러한 자질을 극대화했다. 영상효과와 편집기술의 발전은 ‘신비화’를, 유튜브나 아프리카 BJ 등 각종 영상 플랫폼의 등장은 ‘팬덤 규모’를 극대화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이 ‘스타강사’를 낳았다면, 플랫폼의 질적·양적 확장은 ‘아이돌 강사’를 키운 셈이다. 이러다 보니 학원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수익도 인강강사가 좌우하게 됐다. 그래서 학원은 기존 강사의 매력을 강화하거나, 신인 강사를 키우는 등 마치 엔터테인먼트사처럼 강사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강사 프로필 사진을 아이돌처럼 연출하거나, 이모티콘 등 각종 인강강사 관련 굿즈를 제작·판매한다. 이런 경향의 극단적 사건이 ‘강사 성 상품화 프로필’ 논란이었다.

 

인강강사 아이돌화, 심화될 트렌드

최근에는 굳이 학원을 통하지 않고 유튜브에 수업을 올리는 강사들이 늘고 있다. 또 아프리카BJ 영어 강사 제시카 씨의 ‘섹시 비키니 패션쇼’처럼 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강사도 많아졌다. 심지어 EBS 인강 캐릭터인 ‘수학술사 세미’가 큰 인기를 끌어 성우 인터뷰 기사가 나오고, 피규어까지 판매됐다.

앞으로 인강강사의 아이돌화는 더욱 심화 과정을 밟을 것이다. 영상 플랫폼이 발전되고, 시험 합격의 문이 계속 좁아지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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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하게 써 왔고,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이미지들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미술 비평처럼 각 잡고 찍어낸 것이 아닌, 그 각이 잘라낸 이미지들에 대해. 어릴 적 앨범에 붙이기 전 오려냈던 현상 필름 자투리, 인스타그램 사진 편집 프레임이 잘라내는 변두리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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