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음악은 한동안 미국 대중음악의 대세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며 디스코와 록이 대세를 차지하고 이어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열풍이 불어닥치며 이제는 소수의 열성적인 팬으로 유지되는 마이너 장르가 되었다. 물론 많은 음악 장르가 유행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기 마련이지만, 재즈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 즉흥연주(Improvisation)에도 한 원인이 있다. 같은 스탠더드 곡을 연주자 혹은 연주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리 연주하게 되는데, 이는 연주자나 청중을 매료시키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양쪽 모두를 힘들고 피곤하게 하기도 한다. 다음 음을 언제 어떻게 짚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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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버튼의 임프로비제이션 소개 영상
그의 버클리 음대 <Jazz Improvisation> 강의는 재즈 학생이 듣고 싶어 하는 명강의로 유명하다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해 악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계층에서 유럽의 악기를 받아들이면서, 즉흥성은 재즈 장르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되었다. 정상의 재즈 트럼페터 윈튼 마살리스가 프랑스 마르시악 재즈 페스티벌(Jazz in Marciac)의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잘 알려진 생일 축하곡 ‘Happy Birthday’로 즉흥연주 시범을 보여준다. 동반한 색소포니스트와 함께 전반에는 한쪽이 임프로비제이션을, 다른 쪽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이어서 후반에는 두 사람 모두 임프로비제이션을 하는 ‘결합 임프로비제이션(Connected Improvisation)’을 선보인다.

마르시악 재즈 페스티벌 마스터클래스(2007)

통상 첫 소절은 오리지널 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하고, 두 번째 소절부터는 연주자들이 차례로 솔로로 나서 독창적인 즉흥연주를 펼치는 것이 재즈 연주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어떤 이는 음을 올리거나 내리고, 또 어떤 이는 박자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하고, 또 어떤 이는 완전히 색다른 장식음을 선보이기도 한다. 재즈 연주에서는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친 해석으로 청중이 오리지널 곡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엇나가게 되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윈튼 마살리스와 그의 딸 오니(Oni), 그리고 재즈 밴드가 함께 연주한 ‘징글 벨’을 들어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곡을 어떻게 변주하는지 느낄 수 있다.

Wynton & Oni Marsalis with the Brooks Brothers (2017)

연주에 즉흥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연주 기술보다 판단력과 순발력 또는 감각적인 창의력이 더 중요하며, 악기는 그야말로 도구일 뿐이다. 배우들이 대본에 따르지 않고 ‘애드립’ 연기를 하듯이, 재즈 연주자들은 악보 없이 즉흥연주를 펼친다. 머릿속에서 다음 음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면 연주 기술로 물리적인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고도의 음감과 순간적인 집중력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재즈의 쇼팽이라 불리며 단정한 차림새로 유명한 빌 에반스의 연주 영상을 보면, 첫 소절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연주하다가 두 번째 소절에서 즉흥연주를 시작하며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쉽고 편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Bill Evans ‘Beautiful Love’ a Jazz Piano Workshop Berlin 1965’

현대 즉흥 피아노 연주의 거장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은 가장 극단적인 경우다. 미리 정해진 오리지널 곡을 따르지 않고, 첫 음을 정하고는 길게는 한 시간 정도 악보 없는 즉흥연주를 하기도 한다. “몸에서 흩어져 있는 음표들을 꺼낸다”는 그의 표현대로, 연주 중에 과격한 몸동작을 선보이거나 괴성을 지른다. 이 모습에 경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피아니스트와 다를 바 없어, 클래식과 재즈 연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키스 자렛은 한동안 만성피로증후군에 걸려 집 밖으로 나오기도 어려웠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Keith Jarrett Solo (1967)
Keith Jarrett & Chick Corea (1985)
두 재즈 피아니스트가 일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식을 연주하는 모습

재즈 연주자들은 창의력과 즉흥성을 살리기 위해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리허설 없이 조화로운 연주가 나올 수 있을까? 유튜브에 즉흥 연주를 실감할 수 있는 색다른 영상이 올라와 있다. 파리의 한 길거리 피아노 연주자와 그 옆을 지나가던 행인이 즉석에서 피아노 듀엣 연주를 펼친다. 사전에 연출한 영상이 아니라면 서로 만난 적도 없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멜로디에 맞춰 자신의 즉흥연주를 펼친다. 두 사람은 환한 미소로 즉흥연주를 즐기지만, 직업적인 임프로바이저(Improviser) 라면 즐겁지만은 않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유랑 피아노 연주자(Dotan Negrin)의 유튜브 채널(Piano Around the World) 영상(2015)

19세기의 천재 음악가 모짜르트에 관한 영화 <아마데우스>(1984)를 보면 그의 천재적인 즉흥성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궁정 음악가 살리에르(Salieri)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곡을 한번 듣고 똑같이 복기하여 연주하면서 이를 즉흥적으로 더 훌륭한 방식으로 연주하는 모짜르트의 천재성은 지금 보아도 놀랍다. 만약 그가 지금 태어났다면 재즈계를 평정하는 최고의 임프로바이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명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