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말할 때 음악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술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하루키 본인이 술을 사랑해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술이 끊임없이 나온다. 술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편이지만 크게 두 가지를 뽑아보자면 맥주와 위스키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맥주보다는 위스키를 들고 있는 주인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점점 맥주를 내려놓고 위스키를 손에 든다. 어쩌면 하루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로 다짐한 후 체력을 위해서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면서 양(맥주)보다 질(위스키)로의 전환을 한 것은 아닐까.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도 종종 위스키를 마신다. 혼자 기숙사에 처박혀 ‘나오코’를 생각하며 홀짝이거나, ‘미도리’와 야한 영화를 보고 위스키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주인공을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같은 하루키의 초기작 정도다.

하루키가 위스키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루키와 그의 부인 요코는 위스키를 무척 사랑하는 듯 보인다.

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에서 그 유명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실컷 맛본 다음, 아일랜드에 가서 도시와 시골 마음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리시 위스키를 음미할 작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물론 모두 술꾼들이지만) 거참 멋진 생각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12p

 

하루키가 어떤 위스키를 특별히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는 ‘조니 워커’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위스키 조니 워커를 의인화하여 베일에 싸인 무서운 인물로 탈바꿈해 등장시킨다.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텐데, 하여간 좋아. 내 이름은 조니 워커야. 조니 워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알고 있지. 내 자랑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이콘(ikon, 성화상, 특히 그리스정교에서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만큼 유명하다고 해도 좋을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진짜 조니 워커는 아니지. 영국의 주조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냥 라벨에 있는 모습과 이름을 무단으로 차용해서 쓰고 있을 뿐이지. 모습과 이름이라는 것은 누가 뭐래도 필요하니까 말이야.” - 문학사상, <해변의 카프카> 상권 225p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조니 워커(Johmmie Walker).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유통되는 블렌딩 스카치 위스키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연간 1억 2천만 병 이상 판매되고 있다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선호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1Q84>에서는 ‘아오마메’가 살인을 저지르고 ‘쿨한 살인자’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택시를 잡아타고 아카사카의 호텔로 가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그곳에서 아오마메는 기분을 달랠 헌팅을 시도하며, 한 남자의 위스키 취향을 보고 그 남자에게 더욱 호감을 품는다.

바텐더가 메뉴와 물수건을 들고 오자 남자는 메뉴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스카치 하이볼을 주문했다. “원하시는 브랜드가 있습니까?” 바텐더가 물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아무거나 괜찮아요.” 남자는 말했다.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간사이 사투리가 슬쩍 잡힌다. 그러더니 남자는 문득 생각난 듯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나쁘지 않아,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게 시바스 리걸이나 까다로운 싱글 몰트가 아닌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에서 필요 이상으로 술의 종류에 집착하는 인간은 대개의 경우 성적으로 덤덤하다는 게 아오마메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 문학동네, <1Q84> 1권 123p

커티 삭(Cutty Sark). 1923년 스코틀랜드의 ‘Berry Bros. & Rudd’ 사에서 개발한 위스키로, 선원 출신의 유명한 화가 제임스 맥베이의 의견에 따라 당시 가장 빠른 범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는 당시 선원들의 도전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J&B와 함께 밝은색을 띠는 라이트 위스키를 대표하고 있다

 

위스키는 붕 뜬 마음을 달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아키가와 마리에’를 만나기 위해 ‘멘시키’가 주인공의 집으로 온 후 긴장을 풀기 위해 위스키를 요청한다.

“댁에 위스키가 있습니까?”
“싱글 몰트가 반병쯤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뻔뻔한 부탁이지만,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온더록스로.”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차를 가지고 오셨는데……”
“택시를 부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도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를 당하기는 싫으니까요.”

나는 부엌에서 위스키병과 얼음을 담은 도자기 그릇, 잔 두 개를 가져왔다. 그사이 멘시키는 내가 아까까지 듣고 있던 <장미의 기사>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우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무르익은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를 마셨다.

“싱글 몰트를 좋아하십니까?” 멘시키가 물었다.
“아뇨, 이건 선물받은 거예요. 친구가 집에 오면서 가져다줬죠. 맛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스코틀랜드에 사는 지인이 얼마 전 아일레이 섬의 꽤 귀한 싱글몰트를 보내줬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그 증류소를 방문했을 때 직접 망치를 들고 뚜껑의 못을 박았던 오크통에서 나온 술이라고 해요. 혹 관심 있으시면 다음에 가져오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마음 써줄 것은 없다고 나는 말했다.
“아일레이 섬 근처에 주라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인구도 적고, 거의 아무것도 없는 섬입니다. 사람보다 사슴이 훨씬 많은 곳이지요. 토끼나 꿩, 바다표범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증류소가 하나 있습니다. 근처에 아주 맑은 샘이 있는데 그 물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더군요. 주라의 싱글 몰트를 그 샘에서 막 길어온 차가운 물에 섞어 마시면 매우 훌륭한 맛이 납니다. 그야말로 그 섬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맛이죠.”

듣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 문학동네 <1Q84 2권>, 150 ~ 151p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 싹을 틔운 곡물, 그중에서도 보통은 맥아(보리)를 원료로 하여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를 말한다. 그 자체로서도 개성적인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은 물론이며, 블렌디드 위스키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원료다. 이때 사용되는 몰트 위스키들을 키 몰드(Key Malt)라고 하며 이들은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지역 단위의 독특한 맛과 향,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오래된 친구와 마시는 술처럼 편안한 것은 없을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아마다 마사히코’는 주인공을 만나러 시바스 리갈을 들고 찾아온다. 그리고 전에 함께 미술 대학을 다녔을 때처럼 느긋하게 술을 마신다. 오래된 추억을 하나씩 꺼내면서.

아마다는 종이가방에서 시바스 리갈을 꺼내 뚜껑을 땄다. 나는 잔을 두 개 챙기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위스키를 잔에 따르니 무척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시며 음식 준비를 했다.

“둘이 이렇게 느긋하게 마시는 건 꽤 오랜만이다.” 아마다가 말했다.
“그러게. 옛날엔 많이 마셨던 것 같은데.”
“아니, 많이 마신 건 나였지.” 그는 말했다. “넌 옛날부터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어.”

내가 웃었다. “네 눈에는 그럴지 모르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것도 꽤 과음한 거야.” - 문학동네, <기기사단장 죽이기> 2권 187p

시바스 리갈(Chivas Regal). 1901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창립된 위스키 제조사인 시바스 브라더스(Chivas Brothers) 사에서 제조한 프리미엄급 블랜디드 위스키. 프리미엄 브랜드이므로 최소 프리미엄급인 12년 이상 묵은 원액만을 사용하여 생산하고 있다. 12, 18, 25년의 세 종류만 생산되고 있으며, 스탠더드급은 패스포트 브랜드로 생산되고 있다

소설가에게 언어라는 것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그런 언어를 위스키로 바꾼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하루키는 특별한 위치에 놓고 있다. 언젠가 편안한 바의 구석에서 좋아하는 위스키를 앞에 놓고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문학사상, <무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16p

 

위스키 정보 <참고문헌=위키백과>

 

Writer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쓴다. 때때로 움직임 작업을 한다. 그 다음에는?
김비키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