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과 베아트릭스 포터

베아트릭스 포터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피터 래빗이라는 이름엔 익숙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피터 래빗은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중상류층 출신 여성인 베아트릭스 포터가 자연, 동물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자신이 기르던 토끼를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어떻게 이런 천진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과 인생을 살펴보자.

 

1. 어린시절

영국 런던 켄싱턴에서 법률가이자 사업가인 부모를 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베아트릭스는 당시의 관습대로 학교에 가지않고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배우게 된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던 베아트릭스는 토끼, 다람쥐, 고슴도치 등 동물을 키우며 그들의 습성과 버릇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게 된다. 또한 자연과 가까이 지내던 그는 식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과 연구로 말미암아 학회에서 발표할 수준에 이르게 되지만 당시 여성이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고, 결국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상심한 그는 어린 시절 자주 놀러 갔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거주지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동물과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여러 그림과 이야기를 조금씩 만든다.
베아트릭스가 27살이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가정교사의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위로 차원에서 그림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 편지에 등장한 캐릭터가 피터 래빗이다.

<피터 래빗> 작품들

 

2. 사랑과 이별

그로부터 몇 년 후, 베아트릭스는 피터 래빗 이야기를 모아 출판하려고 했으나 흑백으로 그려졌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한다. 고심 끝에 자비로 출판하기로 한 베아트릭스는 1901년 12월에 250부라는 적은 부수로 책을 낸다. 다행히 초판은 금방 품절되고 이듬해 프레드릭 워렌 사와 계약하게 된다. 프레드릭 워렌 사의 편집자 노만 워렌은 곧 베아트릭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 싹텄고 곧 결혼하려고 했으나 둘의 신분이 달랐기에 부모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베아트릭스는 노만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감행하려던 와중에 노만이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실제 노만과 베아트릭스
영화 <미스 포터>의 노만과 베아트릭스

 

3.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의 본격적인 삶과 자연보호

노만이 죽은 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힐탑으로 이사한 베아트릭스는 동화책 쓰기에 전념하며 살게 된다. 계속되는 성공으로 모은 돈과 상속받은 유산으로 그는 개발업자들에 의해 파헤쳐질 위기에 놓인 근처 땅들을 사들여 자연보호에 앞장선다. 무려 4000에이커 (500만 평)에 가까운 땅을 사들여 자연훼손을 막은 베아트릭스는 유언으로 자신의 집과 땅을 모두 내셔널 트러스트(The National Trust)에 기부하고 절대 개발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오늘날 이 일대는 영국에서도 잘 보존된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베아트릭스가 죽기 7여 년 전엔 월트 디즈니로부터 피터 래빗을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받지만 거절하고 동화책 쓰기와 자연보호에 매진하였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집
피터래빗 숍
영화 <미스 포터> 포스터

 

 

타샤 튜더

타샤 튜더는 베아트릭스 포터보다는 좀 더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했고 일찍 시작한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하였으며 자녀 넷을 홀로 키우며 대부분의 생활을 자급자족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힘든 삶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책들을 만들어 냈으며, 타사 튜더의 그림은 지금도 많은 어린이에게 사랑받아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사용되기도 했다.

1. 어린 시절, 그리고 결혼과 이혼

타샤는 보스턴 사교계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1915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1830년대에서 환생했다고 굳게 믿고,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옷을 입고 다녀서 가족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타샤는 9살 되던 해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져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본인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타샤는 사랑하진 않았지만 자신에게 청혼한 남자와 결혼해버린다. 뉴햄프셔로 이주한 타샤는 자연에서 동물과 더불어 살기를 원했지만 그와 생활 방식이 달랐던 남편과는 맞지 않았다. 결국 둘은 이혼하고 타샤 혼자 네 아이를 키우게 된다.

 

2. 동화작가로서의 삶

초상화 화가였던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타샤는 어린이를 위한 삽화를 그리고 동화책을 쓰는 동화작가가 된다. 처음 쓴 동화책의 제목은 <호박달빛>. 이 책의 성공으로 그는 동화책을 쓰고 삽화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호박달빛>

 

3. 버몬트로의 이주와 염원하던 삶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후, 타샤의 나이 56세에 <코기빌 마을축제>라는 그림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랜 염원이었던 버몬트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타샤는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에 살면서 30만 평의 땅을 가꾸고 옷, 양초, 바구니, 비누, 치즈 등 거의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자급자족하며 생활한다. 실로 직물을 짜서 리넨을 만드는 일부터 염색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대부분의 음식도 집 근처에서 딴 채소와 과일로 만들어 먹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생계를 위한 목적도 무시할 수 없었던 타샤는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한 취미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인형 만들기였다. 인형 옷과 인형 집 그리고 마리오네트 인형까지 직접 만들어 공연하며 손자 손녀나 어린이들이 방문하면 놀아주고 인형을 선물해주곤 하였다. 얼마나 제대로 된 인형과 공연이었던지 차츰 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버지니아까지 출장 공연을 가곤 하였다.

<코기빌 마을축제>
타샤의 정원
타샤와 인형놀이

 

4. 타샤 사후의 잡음

케이트 그린웨이나 베아트릭스 포터 같은 삽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 타샤는 평생 100권이 넘는 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미국의 권위 있는 칼데곳 상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였다. 타샤의 마지막 책은 2003년에 출간된 <코기빌 크리스마스>다. 생전 그의 아름다운 전원생활과 달리 그의 사후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타샤가 대부분의 유산을 큰아들 세스 튜더에게 남기고 죽자 남은 세 자녀는 법정소송을 감행하였다. 심지어 타샤의 시신을 화장한 재까지도 둘로 나누어 큰아들이 반을 가지고 나머지 반을 세 자녀가 가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크리스마스 관련 책에 있는 삽화
타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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