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뭇가지와 회색빛 구름, 착 가라앉은 듯한 겨울 날씨를 떠오르게 하는 데이브 맥킨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묘한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음산하고 기묘한 ‘맥킨 스타일’에 빠져들수록, 그가 공포 판타지 작가 닐 게이먼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데이브 맥킨과 닐 게이먼이 함께 작업한, 숨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살펴보자.

 

팔방미인 데이브 맥킨

<Anthropomorphik Calendar>(1996)
<Sleepy Hollow> Feature Film Promotinal Poster(1998)
<Kids on Drugs>. Penthouse magazine(1999)
『The Sandman』(1995)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영화……. 다양한 전공에서부터 알 수 있듯, 데이브 맥킨을 하나의 범주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수많은 책에 삽화를 그렸고, 영화 포스터와 앨범 커버를 제작했으며 직접 글과 그림을 맡은 그래픽노블도 출간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제작 디자인에도 참여했고, 스페인의 현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포토그래퍼로도 활동 중이다. 한 마디로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이 예술가는 다양한 분야를 자신만의 색깔로 물들여왔다.

 

그로테스크의 매력

<The Silver Snail>(2001)
<Blur Content>


분야에 상관없이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어두운 색채와 흐릿한 인물들, 기괴한 표정. 밤에 보기엔 다소 무서울 것 같은 분위기지만,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이러한 맥킨 스타일은 영국의 작가 닐 게이먼과 함께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환상과 공포를 해 질 녘의 노을처럼 부드럽게 뒤섞는 맥킨의 일러스트는 닐 게이먼이 만들어내는 기묘하고 우울한 판타지를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완벽하게 풀어낸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는 공통점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둘은 1986년부터 여러 작품을 만들어 왔다. <샌드맨> 등의 그래픽노블은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래픽노블 <Prometheus>(2015)
그래픽노블 <Cages>(1994)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탓에, 그들이 그림책과 동화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한 컷 두 컷 살펴보다 보면, ‘과연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과 그림책이 아이들만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벽 속에 늑대가 있어 (The Wolves In The Walls)>
루시는 벽 속에서 나는 소리가 늑대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The Day I Swapped My Dad For Two Goldfish)>
친구의 금붕어에 홀딱 반해 아빠와 교환했다가 엄마에게 들킨 ‘나’가 힘들게 아빠를 되찾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그림책 <벽 속에 늑대가 있어>와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은 벽 속에서 늑대가 튀어나온다거나 금붕어와 아빠를 맞바꾼다는 독특한 설정도 재미있지만 시각적으로 우리를 한눈에 사로잡는 작품이다. 그림과 사진을 엮은 콜라주 기법이나 여러 컷으로 나뉜 페이지, 말풍선은 그래픽노블을 연상시키고 인물들의 창백한 얼굴은 은근한 공포를 조성한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이 작품에서는 은근한 유머로 소소한 반전까지 끌어낸다


작품에 녹아 있는 블랙코미디도 인상적이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에서 가족들은 벽 속에 늑대가 있다는 루시의 말을 ‘말도 안 된다’며 넘겨버리지만, 늑대가 나타나자 사막이나 무인도, 우주로 도망칠지를 고민한다.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교환 사건’ 동안 정작 아빠는 신문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아빠를 되찾은 주인공에게 건넨 말이라곤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라’가 전부다. 숨은 뜻을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이 황당하고도 유쾌한 블랙코미디는 맥킨의 일러스트를 통해 형체를 갖추고, 어린이 독자를 넘어 성인 독자까지 끌어당긴다.

 

<코랄린>

<코랄린(Coraline)>
바쁜 부모님 때문에 외로운 코랄린 앞에 나타난 ‘다른 엄마’


동화책 <코랄린>은 위의 두 작품에 비해 압도적으로 글의 양이 많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작품이 늘 그렇듯, 한 번 매력에 빠지면 한 권을 다 읽는 건 시간문제다. 한밤중 새로 이사한 집에서 단추 눈을 단 사람들을 마주친다는, 설정부터 독특한 이 작품은 완벽하지만 어딘가 수상한 세계에서의 모험담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수많은 마니아층을 양성한 이 작품은 2009년에 헨리 셀릭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 <미러 마스크 (Mirror Mask)>
<미러 마스크> 예고편
두 사람은 스크린 위에 몽환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공포 판타지는 두 사람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사실 시그니처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거나 금세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예술가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맥킨과 게이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 같다. 그건 한 가지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하는 열정 덕분 아닐까. 콤비로서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도 빛나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두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데이브 맥킨 공식 홈페이지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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