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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장르가 전체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매년 발표되는 뮤지션 수입 순위에서 상위권은 대부분 팝, 소울, 힙합 뮤지션들이 차지하며, 재즈 뮤지션의 이름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드물게 재즈와 팝의 경계를 오가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아티스트도 있다. 7천 5백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여 팝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차지한 케니 지(Kenny G)가 있었고, 그보다는 한참 못 미치지만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이 2천 1백만 장을 판매하여 재즈 뮤지션 중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근소한 차이지만, 팻 매스니의 기록(2천만 장)보다도 앞서니 다이애나 크롤이 얼마나 성공한 재즈 뮤지션인지를 알 수 있다.

TV에 출연하여 ‘Fly to the Moon’을 부르는 크롤

 

캐나다의 항구 도시 나나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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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섬의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나나이모

1999년에 처음으로 내한한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이 공연 도중 관객을 향해서 자신의 고향 나나이모(Nanaimo)를 가본 사람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고향은 캐나다 북서부에 위치한 밴쿠버섬 남단에 있는 항구 도시다. 인구 1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조용하고 아름답다. 다이애나 크롤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명사가 되었는데, 실제로 도심에 자리한 한 쇼핑몰이 이름을 ‘다이애나 크롤 플라자(Diana Krall Plaza)’로 바꾸었을 정도다. 이 도시 사람들의 재즈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져 지난해 이곳에선 처음으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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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이모 재즈 페스티벌 홍보 이미지

 

재즈와 팝, 우디 앨런을 좋아한 수줍음 많은 소녀

교사였던 아버지는 수많은 음반을 소장한 열렬한 재즈 애호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딸 다이애나 크롤이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재즈를 듣고 자란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엘튼 존, 밥 딜런, 빌리 조엘의 음악에 심취하며 재즈와 팝 음악 모두에 열광했다. 감성이 풍부했던 그는 우디 앨런의 로맨틱 영화 팬이기도 했다. 다이애나 크롤은 열다섯이 되던 해부터 나나이모의 레스토랑과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를 리바이벌한 곡

 

스타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학금을 받으며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다이애나 크롤은 고향으로 돌아와 클럽에서 재즈 트리오 연주를 시작했다. 우연히 클럽을 찾은 재즈 레전드 레이 브라운(Ray Brown)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미 라울즈(Jimmy Rowles)에게 소개했다. 지미 라울즈는 사라 본, 카르맨 맥레이, 엘라 피츠제럴드와 함께 일하며 여성 재즈 싱어와의 콜라보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크롤을 로스앤젤레스로 불러 3년간 함께 연주했고, 이 시간 동안 다이애나 크롤은 지미 라울즈의 조언을 들으며 가창력을 키웠다. 이어 그는 팝/재즈 크로스오버 스타메이커로 유명한 토미 리푸마(Tommy Lipuma)를 만나게 된다. 1950년대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던 리푸마는 조지 벤슨, 나탈리 콜과 같은 재즈 아티스트를 인기 스타로 만든 유명 프로듀서였다. 자그마한 항구도시의 수줍음 많던 피아니스트는, 명 프로듀서들을 필요한 시점에 제대로 만나면서 연주와 가창력을 갈고닦게 되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When I Look in Your Eyes>(1999)에 수록한 ‘Let’s Face the Music and Dance’

 

일찍 찾아온 성공의 길

다이애나 크롤은 세 번째 앨범 <All for You: A Dedication to the Nat King Cole Trio>(1996)이 뜨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When I Look in Your Eyes>(1999), <The Look of Love>(2001), <Live in Paris>(2002)이 연이어 그래미상을 받으며 스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When I Look in Your Eyes>는 재즈 음반 최초로 그래미 ‘Album of the Year’ 후보로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다이애나 크롤은 지금까지 8장의 앨범을 재즈차트 1위에 올렸고, 그래미 5회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2천 1백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며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성 재즈 아티스트가 되었다.

<Live in Paris>(2002)에 수록한 ‘Cry Me a River’

 

엘비스 코스텔로와의 결혼

2003년에는 영국 서리얼(Surreal)에 있는 엘튼 존의 성에서 록스타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와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는 발표를 하며 화제가 되었다. 결혼식에는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150여 명의 하객만 초대되었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영화 <노팅힐>의 주제곡 ‘She’를 부른 영국의 정상급 싱어송라이터. 두 사람이 맺어진 데는 엘튼 존이 중개자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마련한 자리에서 함께 노래하다가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엘비스 코스텔로가 무대에서 떨어지며 급격히 친해졌다고 한다.

엘톤 존 쇼에 초대된 다이애나 크롤

두 사람은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고 있다. 다이애나 크롤은 수년 전 급성 폐렴으로 음악 활동을 잠시 중단했고, 지난해에는 20여 년을 함께 한 프로듀서 토미 리푸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딛고 13번째 앨범 <Turn Up the Quiet>(2017)을 발표하며 공연 투어를 재개했다.

데뷔 초에는 몇 보수 재즈 팬들이 그를 아니꼽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이애나 크롤은 타고난 매력과 잇따른 인복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쌓은 실력을 더하며 마침내 재즈 신 최정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