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구스타프 요한슨이 누구야?’라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 기사를 읽고 있을 당신이 부럽다. 그의 영상을 처음 접할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니!

스웨덴 출신의 광고감독 구스타프 요한슨(Gustav Johansson)은 볼보, 벤츠, 나이키, H&M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광고영상을 제작하며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영상을 쉽게 접하기 힘든 탓에 그리 잘 알려진 감독이 아니다. 게다가 좀처럼 발음하기 쉽지 않은 그 일곱 글자의 이름이란…! 하지만 그가 만든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어렵기만 했던 그의 이름은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마 머리보다 손이 먼저 그의 이름을 비메오나 유투브에서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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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의 광고 감독 구스타프 요한슨


얼굴도 낯선, 이름은 더 낯선 스웨덴 출신의 이 핫한 광고감독을 더욱 잘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해보았다. 하지만 키워드는 거들 뿐. 영상을 보다 보면 ‘아’하는 외마디 탄성과 각자가 느끼는 이미지가 따로 생길 것이라 장담한다.

 

1. 자연스럽게 (EF의 ‘Live the Language’ 캠페인)

구스타프 요한슨이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광고가 바로 EF의 ‘Live the Language’ 캠페인. 54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450개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국제적인 어학원 EF(Education First)의 광고로 제작된 이 영상은 파리, 런던, 베이징, 바르셀로나 편이 한달 만에 4000번 이상 리트윗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였던 2011년에는 그 인기에 힘입어 밴쿠버, LA, 시드니 세 편을 추가로 제작했을 정도. 국내의 몇 안 되는 구스타프 요한슨의 팬들도 아마 이 광고영상을 접하면서 팬으로 입문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가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해외의 좋은 광고 사례로 이 작품들이 올라오기도 하는 걸 보면 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이 캠페인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EF ‘Live the Language’ 파리 편
EF ‘Live the Language’ 바르셀로나 편


어학연수를 가도 언어가 일취월장하는 기적은 물론 그 어떤 낭만도 절대 없다는 것을 이미 다 아는 나이임에도 영상을 보다 보면 기꺼이 모든 것을 접고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어진다. 영상을 보는 순간만큼은 미세먼지와 최강한파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잊은 채 파리를, 베이징을, 바르셀로나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비결이 대체 뭘까. 아마도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해 자연광으로만 이루어진 촬영과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배우들의 연기 같지 않은 연기, 그리고 현장 속에 또 다른 배우처럼 자리한 카메라의 시선 덕분일 것이다.

구스타프 요한슨은 이렇게 빛부터 연기까지 모든 것이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워진 것은 예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세트를 짓거나 조명을 세팅하는 것도, 거리를 막고 촬영허가를 받는 것도 적은 예산 때문에 모두 불가능했던 것. 게다가 찍어야 할 로케이션이 한두 군데인가. 그러다 보니 각 도시에 배우들을 풀어놓고 조명이나 장비의 구애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한 뒤 캐논 5D로 그들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촬영을 하는 것이 그가 택한 최선의 방법. 그리고 바로 이런 촬영 방식이 배우들과 함께 현장에 들어가 있는 듯한 사실적인 느낌, 자연스러운 매력을 완성한 것이다. 이 모든 게 예산이 적기 때문이었다니, 예산을 적게 쥐여준 EF에게 감사할 따름. 어쨌든 이런 작업 방식에 만족한 구스타프 요한슨은 후에 찍는 영상에서도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예산이 적든 많든 영상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방식을 “카메라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자 배우”가 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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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the Language’ 캠페인 속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구스타프 요한슨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아니지만 EF의 각 영상에서 매력적으로 변주되는 타이포그래피 이야기를 빼놓고 가면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알빈 옴비스트(Albin Holmqvist)가 섭섭해할 것 같다. 음악은 또 어떤가. 전체 캠페인의 영상이 일곱 개나 되는데도 그 특유의 감성을 이어나가는 데는 음악 감독 매그너스 리데알(Magnus Lidehäll)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의 가장 큰 재능은 홀로 빛나는 것보다도 재능 있는 자들과 빛나는 협업을 이루어내는 것. 그마저도 구스타프 요한슨은 해낸다. 1986년생의 젊은 감독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던 2010년부터 말이다.

 

2. 스웨덴스럽게
(Nokia의 <Everyday>와 Volvo의 ‘Vintersaga’ 캠페인)

EF ‘Live the Language’ 캠페인으로 세계 곳곳을 훑고 돌아온 구스타프 요한슨은 2013년 노키아의 제안을 받고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든다. 제목은 Everyday. 노키아의 제안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Everyday Adventures에 관한 단편영화를 만들어주세요. 끝.” 구스타프 요한슨은 무한대로 열린 가능성에 끌려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일주일에 새로운 요일이 하나 더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단편영화 제작에 들어간다.

Nokia의 <Everyday>


<Everyday>에도 앞서 이야기한 구스타프 요한슨의 ‘자연스러운’ 촬영기법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잘 살아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알게 모르게 보는 이의 마음에 스며드는 ‘북유럽 감성’도 있다. 꽁꽁 얼어붙은 듯한 배경과 최소한의 빛. 그리고 절제된 한 컷 한 컷. 하지만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따스함까지. 구스타프 요한슨은 이런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는지 스웨덴 북쪽 끝에 있는 도시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겨울의 낮은 무척이나 짧고, 여름에는 해가 절대 지지 않는 그곳은 자연광만으로 촬영하는 구스타프 요한슨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줄 기회의 땅이었다고. <Everyday>에서 느껴지는 그 ‘북유럽 감성’은 바로 ‘스웨덴의 땅’과 ‘스웨덴의 빛’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Volvo의 ‘Vintersaga’


구스타프 요한슨의 작품 중에 스웨덴의 감성이 잘 녹아있는 것은 이 단편영화뿐만이 아니다. 2015년 Volvo의 광고였던 ‘Vintersaga’에서는 아예 대놓고 스웨덴을 강조한다. 춥고 거칠기로 유명한 스웨덴의 겨울, 외국인들은 겨울을 피해 그곳을 찾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오히려 그 나라의 진짜 매력이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광고 제목인 ‘Vintersaga’도 스웨덴어로 ‘겨울 이야기’라는 뜻. 구스타프 요한슨은 거친 겨울이 만드는 스웨덴의 ‘Vemod’라는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Vemod는 굳이 해석하자면 멜랑콜리하고 우울한 감정이지만 우리나라의 ‘한(恨)’처럼 정확히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안 되는 그런 감성이라고 한다. 이 영상을 보고 우리가 느낀 그 알 수 없는 감정의 정체가 바로 Vemod인지도 모를 일이다.

 

3. ‘요한슨’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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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니클라스 요한슨


그가 작업한 영상들의 크레딧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늘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름은 니클라스 요한슨(Niklas Johansson). 요한슨이라는 성이 스웨덴에서 흔한 성이라곤 해도, 이 사람이 구스타프 요한슨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지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니클라스 요한슨은 84년생의 촬영감독으로 구스타프 요한슨의 형이다. 앞서 보았던 구스타프 요한슨의 모든 영상은 니클라스 요한슨이 촬영했다.

도대체 어떤 성장배경이 있었길래 이 형제는 이토록 훌륭한 감독과 촬영감독 콤비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일까? 정답은 바로 아버지에 있다. 요한슨 형제의 아버지도 감독이었던 것. 구스타프와 니클라스 형제는 어려서부터 집에 있는 아버지의 비디오카메라는 물론 편집 기계까지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아버지의 스튜디오나 촬영현장에 함께 할 기회 또한 많았다. 선행학습도 이런 선행학습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하키게임부터 디즈니 만화영화까지 모조리 녹화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편집을 해보기도 하고, 카메라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며 사진도 꽤 찍었다. 심지어 구스타프 요한슨은 ‘파이널 컷’과 같은 편집 프로그램을 ‘가지고 놀면서’ 독학으로 익혔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학원엘 가고 야자를 할 시간에 이 형제는 대자연과 함께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뛰놀며 자신들의 재능을 키워간 것이다. 창의성을 길러주는 스웨덴 교육 만세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다 보니 가수를 꿈꾸는 구스타프의 친구들이 요한슨 형제에게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맡기고 그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명성을 얻게 된 것도 크게 이상한 전개는 아니다. 커리어의 시작은 뮤직비디오였지만 구스타프 요한슨은 재능기부로 제작한 광고 ‘Stop the Street Violence’가 깐느 영 디렉터스 어워즈(Cannes Young Directors Award)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광고감독의 길을 가겠다 마음을 먹는다.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는 촬영감독이 된 형 니클라스와 함께 말이다.

스웨덴의 비영리 기구 Stop the Street Violence를 위한 광고


아버지 ‘요한슨’의 영향으로 영상과 친숙해졌고, 형 ‘요한슨’과의 작업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했으니, (조금 성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쯤 되면 그의 스타일을 ‘요한슨 스타일’이라고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

 

세 가지 키워드로 구스타프 요한슨을 설명해보려 이렇게 긴 글을 썼는데 이내 후회가 밀려든다. 아직 더 보여주지 못한 그의 작품이 너무 많이 남은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음악은 얼마나 매력적으로 잘 쓰는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지…. 세 키워드 안에 담을 수 없는 그의 재능을 다 어찌 설명 해야 하나 싶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 두 편을 덧붙이며 기사를 마무리해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식상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이번만큼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Karl X Johan ‘Flames’ MV
H&M 2016 Autumn Collection 광고

 

구스타프 요한슨 비메오 
구스타프 요한슨 인스타그램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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