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실력자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지난 한 해에도 새소년, 신해경, 예서, 오프온오프, 우원재 등 많은 핫하고 ‘힙’한 이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허나 그러한 초신성의 그늘에 가려져 아쉽게 주목을 덜 받은 이름도 분명 있었을 터. 지난번 소개한 ‘2017년의 숨은 명반’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2017년의 숨은 신인들을 살펴본다.


* 음반 발표 순으로 작성.

 

세우 인 윤훼이 <2226>(2016.12.14)

매년 12월 발표되는 음악들은 연말 결산 리스트에서 늘 찬밥 신세다. 물론 그다음 해가 있기는 하지만 1년을 꼬박 지나야 하는 만큼 더욱 꼼꼼히 체크해야만 잊혀지지 않는다. 2016년 마지막 달 데뷔작을 발매한 세우 인 윤훼이 역시 그러한 까닭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언급해야 할 이름이다.

세우 인 윤훼이 <2226> 타이틀곡 ‘$.E.D’ MV

세우 인 윤훼이의 음악은 프로듀서 세우(sAewoo)와 싱어 윤훼이(YUNHWAY)의 이름에서 딴 이들의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좋은 개성을 갖췄다. 2010년대 중반 미국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행한 맥주 브랜드, 팹스트 블루 리본(Pabst Blue Ribbon)의 팹스트와 블루를 차용해 명명한 PBR&B 음악을 지향해, 일렉트로닉 음악의 몽환적이고 기계적인 사운드를 알앤비 그루브와 정서 속에 녹여내면서도, 윤훼이의 서늘한 농염이 짙게 스민 보컬이 시종일관 그들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과 소음 <Irregular>(2017.01.19)

4인조 록밴드 빛과 소음은 2009년 결성해 2015년 ‘헬로루키’, 2016년 ‘광주음악창작소 뮤지션 인큐베이팅’ 1위에 선정된 검증된 신인이다. 2012년 일렉트릭 뮤즈의 5주년 컴필레이션 음반에 ‘박제과 된 사슴의 마지막 두마디’를, 2015년 <라이브 클럽 빵 컴필레이션>에 ‘헤이 강릉’을 수록하며 그 존재를 서서히 알려오다 마침내 2017년 1월 첫 번째 EP앨범을 발표하였다.

빛과 소음 <Irregular> 타이틀곡 ‘무당’ MV

빛과 소음의 음악, 특히 앨범의 타이틀 곡 ‘무당’은 거친 노이즈와 신기 들린 듯한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음반명 ‘Irregular’라는 표현에 적합할 만치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앨범 내에는 ‘무당’ 같은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월미도 바이킹’처럼 개러지와 펑크를 뒤섞기도 하고, ‘영아다방’과 같은 아련한 모던록을 표방하기도 한다. ‘에어플레인’은 서정적인 기타팝이 어수선한 포스트록으로 전이한다. 그야말로 빛과 소음 사이를 오가는 인상적인 음악이 아닐 수 없다.

 

데카당 <ㅔ>(2017.05.04)

2016년 결성한 따끈따끈한 신인 밴드 데카당은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경향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주의의 서막을 알렸던 ‘데카당(décadent)’ 운동처럼 공식적인 규정이나 계보, 대표적인 장르로부터 벗어난 한껏 자의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데카당의 음악을 제일 간편하고 적절히 소개할 수 있는 언어 중 하나다.

데카당 <ㅔ> 수록곡 ‘A’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

이들의 첫 앨범 <ㅔ>에는 저위도에서 끓어오르는 나른한 네오소울의 그루브와 고위도에서 내려치는 날카롭고 실험적인 포스트펑크의 기운이 공존한다. 물론 데카당의 특성상 이들의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갖가지 장르와 레퍼런스를 열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결성 이래 저돌적인 라이브 활동을 펼치고, 데뷔 EP 발매 후 몇 달 만에 신곡 3곡을 수록한 싱글앨범 <우주형제 / 너와 나>를 연이어 발매하는 등 이들이 부지런히 써 내려간 ‘혁신’과 ‘탐미’의 역사를 직접 감상하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분홍7 <빨강보라의 근원>(2017.05.29)

분홍7은 앞서 소개한 그 어떤 팀보다도 과거 지향적이고 노골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새소년이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토대 위에 섰다면, 분홍7은 개러지 록과 사이키델릭 펑크를 중요한 자양분으로 삼는다. 물론 가까운 전통 저 너머의 원시성 충만한 정서와 현대적인 감각도 분홍7 음악의 두드러지는 일면이다. 이들의 노스탤지어는 지난 어제의 록음악 역사와 인디신 역사의 요체이기도 하고, 엊그제 고대 한민족의 한과 흥이기도 하며, 오늘 2017, 2018년의 발전상이기도 하다.

분홍7 <빨강보라의 근원> 타이틀곡 ‘사랑해요 단비씨’ MV

분홍7의 흥취는 저속한 뽕끼가 가득하며 그 광기는 소름 끼치는 무녀의 신기(神氣)와도 같다. 쟁글쟁글한 기타 톤으로 걸쭉한 리프를 내뱉을 땐 여지없는 영미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다가도 그 위로 전통 음정, 박자 적당히 무시해가며 하이톤의 카랑카랑한 생목으로 민속판의 소리꾼 같은 보컬을 내지를 때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대한민국스러운 짜릿함이 몸을 휘감는다. 이 와중에도 마냥 개그나 풍자를 무기 삼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적당히 쿨하기까지 한 밴드이다.

 

김도연, Chase Morrin <GaPi>(2017.08.14)

신진 가야금 연주자 김도연은,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악인 최초로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교 중 하나인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 즉흥연주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대표연주자로 선정된 바 있는 재원이다. 그런 그가 하버드대학교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Chase Morrin(체이스 모린)과 함께 약 2년 동안 작업한 앨범 <GaPi>는 ‘가야금’과 ‘피아노’의 첫음절을 결합한 앨범명만큼이나 조화로운 합을 들려주며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게 했다.

김도연, Chase Morrin <GaPi>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Croak’ MV

김도연의 연주는 상상할 수 있는 가야금과 재즈 피아노의 적당한 타협, 곧 재즈의 반주 위에 가야금 연주를 얹는 방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민속악과 정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표현과 두 악기와 간헐적인 보컬이 주도권을 자유롭게 오가는 즉흥적인 방식,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소리를 얹는 현대음악의 시도 등 우리 음악의 색채와 신선한 풍경이 모두 담긴 음악을 펼쳐내며 크로스오버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확실히 기대하게 한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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